28세의 여름.
미루고 미뤘던 대학 졸업장을 품에 안고 멍하게 해운대 바다에 앉았다.
인턴은 정직원의 암울함을 핑계삼아 채용으로 전환하지 못했다.
학생과 인턴이라는 타이틀이 사라지자 백수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놀고 먹는 킹왕짱 갓수가 되었다.
28세의 가을.
혼자서 한라산을 오르며 내 인생을 멋대로 재단해보려고 마음먹었다.
한라산은 너무 높고 가파른지라 내 인생이고 나발이고 죽을 거 같았다.
어떻게 백록담을 찍고 쉬운 길로 내려오면서 생각했다.
어차피 뭘 해도 안 힘든 건 없으니, 하고 싶은 걸 택하고 남을 욕하지 말자.
내가 택한 길이니 나만 욕하면 된다. 짐 캐리 처럼.
28세의 겨울.
글을 쓰기 시작했다.
18세의 어린 나는 코앞에서 뒤엎어진 출판의 길에서 손을 멈췄다.
10년이 흐르고 쓰는 글은 흐리멍텅한 게 내 앞일 같았다.
감각을 회복하기 위해 군시절 망상만 해댔던 라자의 팬픽을 쓰기 시작했다.
에이포 1천장을 채웠다. 그리고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29세의 봄.
달맞이 고개의 어느 카페에서 신춘문예의 씁쓸함을 곱씹었다.
세상엔 길이 많았고 쓸 수 있는 글도 많았지만 받아주는 장소는 없었다.
설날 친척들의 위로는 자격지심 덩어리에겐 꽤 많이 아팠다.
뭐든 먹고 살 수 있는 길을 가자며, 시야를 넓혔다.
넓어진 세계도 여전히 나에겐 각박했다.
29세의 여름.
초록 모자의 공모전은 여러 어린 글쟁이들을 유혹했다.
스무살의 여대생은 일년만에 십억을 벌었어요 라며 웃었다.
세상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내 사정은 더 쉽지 않았다.
내가 바라는 내가 되기 위해서 나는 나를 버리기로 했다.
29세의 가을.
세상은 자신을 버리는 정도로, 나의 가치를 높여줄 만큼 녹록치 않았다.
초록 모자에 그 짧은 기간 동안 책 세 권 분량을 적어냈다.
주제에 경영학과라고 포트폴리오 투자방식을 차용해 다른 곳에도 다른 글을 적어냈다.
술 한 잔 기울일 친구조차 다 떠나버려서 아버지에게 속 마음을 털어놨다.
그만할까요, 아버지?
29세의 겨울.
시한부 인생을 감히 언급할 수 없겠지만, 서른은 나에게 마침표였다.
이상을 안고 익사하든 꿈을 먹고 헛배가 부르든 도전은 서른까지다.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시켜만 주세요. 발이라도 핥을까요.
그렇게라도 매달리고 싶었기에 불현듯 인턴시절이 떠올랐다.
이게 아닌데.
그러는 사이에 서른이 다가왔다.
30세의 봄.
휴지통 비우기를 누를 수가 없어서 usb에만 옮겨 놓았다.
3천장인가...... 4천장인가...... 내 시간이야 아깝지 않건만 꿈이 아쉬웠다.
고시도 취업도 출판도 어느 것도 나는 해내지 못하고 주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