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편지 / 유하
공부는 중국식으로 발음하면
쿵푸입니다
단순히 지식을 배우는 게 아니라
이연걸이가 심신 합일의 경지에서 무공에 정진하듯
몸과 마음을 함께 연마한다는 뜻이겠지요
공부 시간에, 그것도 국어 시간에
나는 자주 졸았습니다
이를테면, 교과서의 시가
창작 시를 멀리하게 만들던 시절이었죠
물론 졸지 않을 때도 있었어요
옆 학교 여학생이 보낸 편지를 읽던 날이었습니다
연인이란 말을 생각하면
들킨 새처럼 가슴이 떨려요
나는 그 편지의 행간 행간에 심신의 전부를 다 던져
그녀의 떨림에 감춰진 말들을 읽어내려 애썼지요
그나마 그 짧은 글 읽기도 선생에게 들켜
조각조각 찢기고 말았지만
그 후로도 눈으로 쫓아가는 독서는
공부 시간의 쏟아지던 졸음처럼 많았지만,
내 지금 학교로부터 멀리 떠나온 눈으로
학교 담장 안의 삶들을 아련히 바라보니
선생의 시선 밖에서, 온 몸과 마음을 다 던져
풋사랑의 편지를 읽던 그 순간이
내 인생의 유일한 쿵푸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