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출근하는데 어머니가 신신 당부를 하십니다.
가족은 다 맞았고 조카들도 맞았으니
저도 백신 접종을 꼭 하라는 말씀이십니다.
회사 옆에 내과가 있으니 거기 가서 한대 놔달라 하면 되겠지 뭐
하고 안일하게 생각하고는 [알겠어유 어무니] 하고 집을 나섭니다.
출근해서 간단한 업무 및 눈도장을 찍고, 주위에 이야기를 하고 잠깐 병원에 들릅니다.
그런데... 입구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유료 백신 품절]
하얗디 하얀 A4용지에 어울리는 창백한 분위기가 10월 환절기 날씨보다 쌀쌀하게 저를 맞이합니다.
몸도 싸하고 마음도 싸해집니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망했다는 신호가 요란하게 울립니다.
그래도 이왕 길을 나선거, 확인이라도 해보고자 병원에 들어갑니다.
접수원 분들이 용무를 묻자 저는 최대한 친절하게 용건을 말합니다.
'앞에 백신 품절 보긴했습니다만, 문의드릴게 있어서요. 혹시 재 입고 예정이 있나요?'
접수원 분들도 정중하고 친절하게 기약이 없다고 답변을 주십니다.
병원 밖으로 나선 제 입에선 어벤저스 인피니티워의 명대사들이 주옥같이 흘러나옵니다.
어머니..(닉 퓨리)
이제 방법이 없어..(닥터 스트레인지)
그러나 저 대사들은 번역이 잘못된 것.
머릿속 번역가를 해고하고 맞은편 새로 지어진 멋진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크고 멋진 빌딩의 병원에 들어가니 남자 접수원분이 용건을 묻습니다.
이번에도 친절하게 용건을 말하자 남자 접수원분은 서류를 뒤적이더니 고개를 젓습니다.
백신은 있으나 예약이 가득 찼다고 합니다.
이제 개인의 면역력을 믿고 신체를 강화해야하나 하는 고민을 하고 있는데
접수원 분이 제 번호를 달라고 합니다.
왜 전 남자에게만 인기가 있는걸까요...
해서 번호를 드렸더니 이후 애프터 신청이 옵니다.
[금요일 오후 ㅁㅁ시까지 오세요. 님을 위해 백신을 남겨놨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백신을 맞으러 갑니다.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