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신문 쪽 일을 하십니다.
한때는 기아자동차 생산직 직장으로 계시며 남부럽지 않은 한때를 보내시던 적도 있었지만, 금융위기가 오고 기아자동차가 도산하고 연이어 IMF가 오면서 정리해고를 겪게 되셨습니다.
그래도 30년 근속으로 나름 큰 퇴직금을 만지기도 하셨지만, 주식에 투자를 잘못하시는 바람에 '있었는데 없었습니다'가 되어버렸죠. (그래서 제가 주식을 거들떠도 안보는 이유입니다.)
안좋은 일이 설상가상으로 연거푸 덮친 정도라고 말하는 것도 부족한 상황이었을 겁니다.
평생을 일해온 회사에서 나오고,
평생을 일한 대가를 한 순간에 잃어버리고,
평범한 정신이라면 버티기 어려운 위기였겠지만, 아버지는 수레를 끌고 청계천에 나가 시계 장사를 하시면서 견뎌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밑천으로 트럭을 사서 신문 배급 일을 맡아서 하기 시작하셨죠.
아이러니하게도 그 신문사가 조선 일보였습니다.
뭐든지 무너지지 않으려면 최고의 회사에 가서 일해야한다는 생각에 최고의 신문사에서 일하시는 선택을 하신것이었겠죠.
그렇게 아버지는 다시 일어나셨고, 가족들을 부양하셨습니다.
단 한번의 결근이나 지각도 없이 성실한 모습 그대로 무사고 운전을 하셔서 주변의 다른 기사분들이 바뀌는 와중에도 아버지는 다른 라인까지 욕심내가며 밤샘운전도 하시고 그러셨기에 이제 70을 넘어가는 연세에도 여전히 계약하고 일하고 계십니다.
그런고로 아버지가 일하는 신문사는 정말 싫어하지만, 가족을 위한 선택이셨고 그로 인해 지금의 우리가 있어왔기 때문에 아버지의 일을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젠 연세가 있으니 가급적 그만하시라 권하곤 있지만요)
그러나 한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인쇄 대기 시간에는 휴게소에서 다른 기사분들과 시간을 보내시고, 신문을 보고 하시다보니 성향이 급격히 보수화가 되어버리셨다는 부분입니다.
그래도 아버지와 저는 서로의 정치성향에 대해 불가침을 선언하고 서로 존중하기로 합의가 된 상황이기 때문에 큰 트러블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만, 그래도 항상 평안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엊그제 밤이 그러했거든요.
11시 늦은 시간에 퇴근 하신 아버지는 어머니가 챙겨놓은 야참을 드시면서 평소와 같이 신문을 펼치시고 죽 읽으며 한탄을 하십니다.
오셨냐고 인사를 나간 제게도 그 한탄이 전달되어 오는게 아니겠습니까?
"아들아. 세상이 어떻게 되려는지 모르겠다. 경유값이 또 오르게 생겼다."
아버지는 1톤 트럭을 운행하시니 경유값에 민감하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당연하게도 차를 갖고 있다보니 기름값에는 민감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상합니다.
요 근래 계속 저유가 행진 중이고 중동엔 특별한 정황이 없으며 러시아도 사우디도 기름값을 올린다던가 하는 그런 얘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어디서 갑작스런 기름값 변동 요인이 국제적으로 발생한 것일까요?
촉각이 곤두서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있냐고 여쭤보니 아버지는 한숨을 쉬시며 신문의 한 대목을 짚으십니다.
[정부. 경유 차량 2035년까지 단계적 제한 계획]
"아주 나쁜 놈들이야. 경유차를 없애버리겠다지 뭐냐."
기사를 보고 머릿속에서 많은 내용들이 스쳐지나갑니다.
환경보호와 기후협약. 디젤차 감산은 세계적 추세. 협조하지 않을시 가해지는 국제적 불이익.
경유차 규제는 이미 박근혜때부터도 진행되던 정책 등등 많은 내용이 스쳐지나가지만 어느 하나도 아버지를 만족시키지 못할게 분명합니다.
또 설명을 드리려면 늦은밤에 수고를 들여야하고 언쟁으로 갈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숫자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걱정도 팔자슈. 봐요 2035년이잖아요. 그때 되면 아부지는 여든다섯이야. 그때까지도 운전대잡고 일하시려고 그럽니까?"
"내가 90까지는 돈을 벌건데?"
"그러면 주변에서 자식들 욕해. 일 좀 그만하시라니까 증말."
"신문일은 안해도 밭에 다닐라면 트럭은 써야지."
"밭? 아직도 밭일 하실 생각이에요? 안된다니까? 그 트럭은 내가 개조캠핑카로 만들어버릴거고 밭은 불지르고 내 캠핑장으로 만들어버릴거라니까??"
"미친놈이?"
마음 같아선 한달에 천씩 턱턱 벌어 2,300 용돈 드리며 지금이라도 일하지 말라고 하고 싶은데 그러지는 못하니 적어도 2035년까지는 부지런히 모아놔야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