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은 최후의 돌격을 앞두고 잠시 회상에 빠졌습니다.
'지금의 싸움을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와 시간이 필요했던가..'
10년을 끌어온 긴 신경전이었습니다.
철통 같은 방비의 무패신화를 자랑하는 백은으로 빛나던 무쇠방벽도 지금은 부식되어 푸석한 잿빛을 띄고 있었습니다.
그간 인내심을 가지고 뒷공작을 벌인 것이 드디어 결실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10년간 온갖 뒷공작을 펼치며 찬란한 성벽이 안팍에서 좀먹어가도록 했으며, 요 근래에는 완전히 방심을 한 것인지 도시의 사절이 직접 나와 손을 맞잡는 등 관계는 점차 무르익어 갔습니다.
외교전을 펼치면서도 장군은 군의 훈련 역시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요 1년사이의 훈련이 결실을 맺기 시작해, 이웃나라 장군이 찾아와 장군의 군을 보고 이전과는 몰라볼 정도로 달라졌다며 감탄할 정도였으니까요.
성에서는 매일같이 친교의 연락이 왔으며, 장군의 군은 매주 한 번 성 근처를 행군해도 아무런 공격을 받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적은 완전히 마음을 놓고 있는게 분명했고, 이제 목숨을 건 단 한번의 공격으로 결판을 낼 차례였습니다.
거의 다 무너져가는 성벽을 앞두고 장군은 잠시 고민했습니다.
'이대로 지내는 것도 나쁘진 않다.'
성의 사람들은 이제 장군을 성 사람과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고, 친교를 다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성에 접근해도 반갑게 맞이해줍니다.
서로 희생없이 이렇게 지내도 될 것 같은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장군은 마음을 다잡습니다.
아무리 절친하게 지내봐야 성안에 들어가 살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일생동안 패배만 맛봤던 그에게 필요한건 단 한번의 승리 뿐이었습니다.
여기서 머물러도 패배뿐인건 마찬가지.
돌격해도 패배가 추가되는 것 또한 마찬가지.
무얼하건 패배라면, 불가능하게나마 승리의 가능성을 향해 걸어보는게 당연한 일입니다.
이제 병사들은 장군의 입에서 떨어질 명령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군은 주저했습니다.
그동안 성 사람들과 너무 친해져버렸습니다.
잘못되면 멀어질 성 사람들의 모습이 그의 선택을 주저하게 했습니다.
이번 공격이 실패하면 다시 그는 공격할 성을 찾아 떠돌이 생활을 해야만 할 것이었습니다.
점차 성이 멀어지는 것만 같은 환상까지 보며, 장군은 회군의 유혹에 시달렸습니다.
이번 주가 아니라 다음 주에 공격하면 되지 않을까...
아직 조금 더 작전이 필요한게 아닐까...
평생을 수 없이 싸워왔고, 싸운 수 만큼 패배를 맛봐 이제 무덤덤해질 때가 됐다고 했지만, 장군은 여전히 패배가 두려웠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장군은 힘을 냈습니다.
공격 소리조차 못내고 패배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가까스로 군대를 모아서 갔더니 다른 군대에게 성이 함락당한 모습도 숱하게 봐왔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공격해야만 할 때입니다.
참모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만류했지만, 장군은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명령했습니다.
장군의 명령과 동시에 군대는 돌격을 개시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장군의 군대는 또다시 전멸을 맛봤습니다.
성 사람들은 무릎끓은 장군의 손을 맡잡고 말했습니다.
"장군이 좋은 사람인건 알지만, 성 안으로 들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다른 민족과 교류한 준비가 아직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전처럼 성 밖에서 친교를 다지는건 괜찮지 않겠습니까? 그대와 사이가 틀어지고 싶지는 않소."
장군은 알겠다고 하고 힘 없이 일어났습니다.
성 사람들은 머물러도 좋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장군은 새로운 도전지를 찾아 떠날 예정입니다.
후회없는 돌격은 없습니다.
후련해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몇번이고 패배를 맛봤기에 무덤덤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병사들의 죽음은 여전히 가슴이 아팠으며, 성 사람들과 헤어져야한다는 것은 역시 슬픈 일입니다.
그래도 장군은 또 싸울 예정입니다.
그는 죽을때까지 전쟁을 계속하는 전쟁광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