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 중입니다.
컴퓨터를 켜고 업무 메일을 검토하며 오늘의 할 일을 정리하는데, 요란하게 전화가 울립니다.
확인해보니 12살난 조카애(여)의 전화입니다.
어제 덥다고 에어컨 켜달라고 호출한 일이 있기에 또 그 일인가 하고 전화를 받아보니 울먹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삼쪼온!! 삼촌!! 빨리 와줘!!"
급하게 부르는 소리에 목소리가 진지해집니다.
"뭔데? 무슨일인데?"
아이에게는 침착하게 상황을 말하라고 하면서 저는 이미 전화를 어깨에 끼고 츄리닝을 챙겨입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이의 말에 저는 일순간 동작을 멈출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바퀴벌레 바퀴벌레 나왔어! 빨리 와줘 삼촌!!"
생각했던 최악의 상황이 아니라서 허탈한 한편,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이내 다시 츄리닝을 신속히 챙겨입으며 조카를 안심시킵니다.
금방 갈테니까 도망가는지 잘 보고 있으라고 말하곤 신속히 밖으로 나가 차에 시동을 겁니다.
누나 부부가 모두 출근하고 애 혼자 원격 수업을 받고 있는데 바퀴벌레가 나와 기겁을 한 모양이었습니다.
왈가닥 개구쟁이지만, 이럴때는 또 어린애구나 여자애구나 하고 생각하며 5분정도 차를 몰고 조카의 아파트에 도착했습니다.
집에 들어가 조카애에게 위험요소의 위치를 묻자 조카애는 고개를 돌린채로 손가락을 뻗습니다.
그곳에는 바퀴벌레 대신 어지럽게 던져진 공책 여러권이 바닥에 널부러져있습니다.
조카애는 벌레를 보자마자 기겁을하고는 확실하고도 안전하게 처치하기 위해 원거리에서 갖고 있는 공책을 전부 투척한 모양이었습니다.
"저 안에 있어! 빨리 잡아!!"
조카애의 말에 조심스럽게 다가가 주변을 탐색합니다.
조카애의 솜씨로 바퀴벌레 같은 1등급 위험 생물을 처치했을 가능성은 0에 가깝습니다.
신발장에서 강력한 살상무기 슬리퍼를 꺼내 손에 쥔 채로 저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탐색하고는 바퀴벌레가 없는걸 확인하고 공책을 하나, 둘 뒤집어 깝니다.
조카애는 제 어깨 너머에 숨어 공책이 뒤집힐 때마다 두더지마냥 숨었다가 나왔다를 반복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공책이 뒤집혔을때.....바퀴벌레가 발견되었습니다.
융단폭격같은 공책의 무수한 공격에 압사당한 것인지, 아니면 첫 타격에 이미 숨이 끊어진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단 한가지만큼은 확실했습니다.
배를 까뒤집고 놈은 죽어있었습니다.
그 죽은 모습을 보고도 조카애는 벼락같은 소리를 내며 자기 방으로 달려가버리고 저는 휴지를 꺼내 놈의 시체를 움켜쥐고 확실하게 힘을 주어 으깨버렸습니다.
그리고 변기에 던져넣고 물을내려 확실한 마무리를 한 후, 다른 벌레가 있는지 추가 탐색까지 마치고 조카애를 보러갔더니, 조카애가 벌인 소동은 이미 수업으로 소문이 났는지 선생님은
"SOS 해주실 분 오셨어? 삼촌이 왔어?"
이러고 있고
다른 짖궂은 남자아이는 "바퀴벌레 난 손톱으로 잡는데!" 하고 허세를 부리고 있습니다.
상황을 모두 종료하고 조카애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뒤 다시 차를 몰고 집으로 옵니다.
오늘도 한 건 처리!
이건 누나에게 보고해서 맛있는거 사달라고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