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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소설] 면봉 (1)
2014/02/17 AM 10:56 |
고시원에 들어와서 산지도 1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느닷없이 귓 속을 청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있을 때는 일주일에도 몇 번씩 버릇처럼 귀청소를 하곤 했었는데 여기서는 한 적이 없다. 가장 큰 이유는 그래, 면봉이 없기 때문이었다. 집에서 보내주는 돈이 적지 않은데도, 면봉조차 사지 못할 정도로 작아진 마음이 한심하단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무릎베게가 그리워서 집에 전화를 하고선 집 앞 슈퍼에서 면봉을 샀다.
백개들이 면봉은 고작 450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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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글쓰기] 곰벌레 (1)
2014/02/16 AM 10:43 |
나는 곰벌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곰벌레가 되었다.
전생에는 분명히 인간이었으나, 우연들이 겹치고 겹쳐 나는 곰벌레가 되었다.
종이 위를 걷고 또 걸어 이 글을 적는다. 이 몸으로 글씨를 적는 것은 쉽지 않아서 나는 한 글자를 완성하면 앞에 있는 글자가 지워지지나 않았을까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누군가 발견해서 내 한심함을 알아 주기를 기대하기에 나는 이 글을 적는다. 여기까지 쓰는데 걸린 시간만 해도……. 아니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분명히 인간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것을 기억하고 있는지 묻지 마라. 어쩌면 우리에겐 언어도, 소리를 낼 방법도 없으니 의사를 전달할 수 없을거라 생각하며 위안이나 삼으라고 전생의 기억을 그대로 남겨둔 건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하찮은 자신이 아닌 전생의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건 선물이라기엔 너무도 슬프고 아픈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나는 전생에서 괜찮은 남자였다. 괜찮은 직장에 괜찮은 외모, 괜찮은 집안을 가졌었다. 한 사람을 오랫동안 짝사랑했었다는 점과 재수없는 방식으로 일찍 죽었다는 점만 빼면 정말 괜찮은 남자였다.
점심을 먹고 회사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곤충을 아주 싫어하는 나는 갑자기 날아오던 벌을 피하려다 바나나 껍질을 밟고 미끄러져 마침 열려있던 맨홀에 빠져 죽었다. 밥도 먹었으니 죽어서도 때깔이야 좋았겠지만 아, 이 저주스럽고 인상적인 죽음이여!!!
나는 그 길로 천국 행 티켓을 받았다. 천국의 문으로 들어설 때 누군가 내 팔을 잡았다.
"오! 당신은 요 100년간 가장 인상적인 방법으로 죽었습니다."
조롱인지 위로인지 알 수 없는 인사를 건네고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웃고 있는 그 사람은 천사라고 했다. 재수 없는 놈 같으니.
"천국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준 대가로 다음 생에 어떻게 태어나고 싶은지 고를 수 있게 해드리겠어요."
이게 갑자기 왠 행운인가. 나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뭐가 좋을까, 백만장자의 아들? 정우성이나 이병헌만큼 잘생긴 얼굴을 가진 남자? 아니지, 아니지. 꼭 한국에서 찾을 필요는 없지. 조니 뎁이나, 제레미 아이언스 같은…….
그때 천국의 문으로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저 쪽에도 괜찮은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내 눈은 그들 사이를 부리나케 누볐다. 그게 악몽의 시작이었다. 그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는 어떻게 벌써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지 알 수 없는, 내가 사랑했'었'던 그녀도 있었다. 나는 그녀를 1년이 넘게 만나지 않았다. 그녀를 본 순간 이제는 모두 희석되었을거라 여겼던 사랑은 다시 깨어나 내 심장을 가득 메워버렸다.
천사가 말했다.
“시간을 드렸으니 이제 다 생각하셨죠? 저도 좀 바쁘니까 그럼 갑니다!”
그 때 나는 하필 곰 벌레를 생각했다. 얼마 전에 ‘우주공간에서도 살아 남은 곰 벌레’라는 기사를 재밌게 읽었던 까닭이다. 내 심장이란 놈은 이 곰벌레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수분이 없는 곳에서는 미이라처럼 잠들었다가도 작은 물방울 하나에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곰벌레.
눈을 떴을 때 나는 한 마리의 곰벌레가 되어 있었다.
생각의 속도란 참 알 수가 없다. 그 천사 놈의 질문이 내가 그녀라는 존재를 인식할 때쯤만 됐어도 나는 그녀로 환생해서, 물론 나르시시즘에 심하게 빠지긴 했겠지만(내가 어떻게 그녀가 된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나?) 쉽게 글을 쓰고, 소주, 오 소주 한 잔과 삼겹살 한 점을 입에 넣으며 웃기도 하고 지금처럼 그녀의 얼굴을 하루에도 수십번씩 떠올리며 애정어린 증오를 불사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생각한들 무얼할까. 나는 젠장! 이미 이 따위 기생충 같은 벌레가 되었는데. 아, 이렇게 나는 곰 벌레가 되었다.
그러나, 위안이 되는 것도 한 가지 있다.
저 쪽을 보라.
내가 이 글을 끝마칠 동안 저 곰벌레는 읽어줄 사람도 이미 없어진 연애편지의 첫 문장을 적어내느라 머리를 싸매고 있다.
마무리가 아쉽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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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택시 드라이버(1976) (3)
2014/02/15 AM 09:52 |
택시 드라이버를 보았습니다.
시간에 의해서 걸러진 예전의 명작들을 보는걸 좋아하면서도 가끔 좀처럼 손이 가지 않는 영화들이 있는데, 제겐 택시 드라이버가 그런 영화 중에 하나라 이제야 보게 되었습니다.
연기를 해보라고 하면 모두가 택시 드라이버의 로버트 드 니로를 따라하던 시기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역시 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는 대단하네요.
이 일화 말고는 왠지 모를 이상한, 이 영화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어떤 사전 지식도 없는 상태로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도스토예프스키 '지하로부터의 수기'의 영향을 엄청나게 많이 받은 작품이었군요.
"이 도시를 모두 쓸어버려야해."
트레비스가 가진 사회에 대한 끊임없는 분노는 자신이 사회에 완전히 녹아들어 인정받으며 살고 싶은 욕구가 충족되지 못함으로 오는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가 전이된 것으로 보아야겠죠. 자신이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를 전복시켜 버리려고 하지만 실패하고 결국 자신이 할 수 있는건 자기보다 훨씬 약한 존재를 구원함으로써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는, 아주 이기적인 방식의 자기 구원뿐입니다. 그런 사람이 영웅으로 떠받들어 지는 것은 희극적인 비극이라 트레비스는 그저 다시 택시 드라이버로 뉴욕의 곳곳을 누빌뿐인 것이겠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고독하지 않게 사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것 같습니다. 누군가 해줬던 말이 떠오르네요.
사람은 섬이 아니라고.
영화 중간중간에 깔리는 버너드 허먼의 음악이 굉장히 인상적이라 유튜브의 음악을 링크하고 싶은데, 마이피를 한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 하는 법을 잘 모르겠네요.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한번씩 읽어보세요.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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