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에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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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 소설 디아블로 - 돌아오는 악마들 - (1) 2011/06/23 PM 07:26
"...참, 지독하군."

아론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역겨운 시체조각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는 지난 이틀동안 스토니 필드와 땅굴속을 돌파한 뒤 지금 막 검은 숲을 벗어나고 있었다.

"엣헴, 그나저나 마을 밖에는 몬스터가 많다더니...그렇지도 않군. 개미새끼 하나 안 보이잖아."

왠지 허전한 숲속을 혼자 거니느라 잔뜩 겁에 질리던 중이었으므로 아론은 누가 보지도 않는데 짐짓 허세를 부렸다.

'난 이틀만에 이까지 왔는데 그 놈은 여기까지 2주일이 걸렸단 말이지?'

그는 마음속에 차오르는 뿌듯함과 긍지를 만끽했다. 앞서 지나간 사람이 그가 지나온 길에 꽉 차 있던 수많은 괴물들을 싹 쓸어버린 것도 모른 채. 그러나 이미 많은 시간이 흘러 지옥으로 귀환되어 버린 수많은 지옥의 악마들의 시체들을 보지 않은 그로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도 당연한 것이었다.

아론 맥클레인, '자카룸의 손' 그 두번째 손가락은 자기 자신의 위대한 실력을 높이 평가하며 아카라가 떠나기 전날밤 건네준 물건들을 점검해 보았다.

상처에 바를 대여섯 병의 힐링포션. (쓸 일이 없군.)

정신을 바로잡아 줄 것이라던 푸른 색의 마나포션. (마시면 쓸데없이 정신만 사나워 질거야.)

상인 와리브가 즉석에서 한부 복사해 준, 지나친 악필로 알아보기 힘든 '로그들의 길'로 향하는 모든 지역의 지도 한장. (볼 필요도 없거니와, 볼려고 해도 도저히 알아 볼 수가 없다.)

카샤의 선물이기도 한, 보이지 않는 눈의 신봉자들의 친구임을 상징하는 목걸이. (이걸 엇따가 쓰라구?)

그리고 아카라가 그 네크로맨서를 만나면 전달해 달라고 한, 단단하게 납땜이 된 두 장의 편지 봉투. (짐만 되게시리...무거운 거 줬으면 버리고 갔을까 보다.)

그는 다른 건 다 재쳐두고 네크로맨서에게 전달하라던 두 장의 편지봉투를 꺼내 들었다. 한 장은 얄팍하고 가벼웠지만 다른 한장은 약간 묵직하기도 했고, 흔들어 보면 쇠사슬 부딪히는 소리가 나는 것으로 보아 목걸이라고 추정된다. (또 무슨 친구의 증표 뭐 그런 거겠지.)

'......'

아론은 그 두 장의 편지를 가만히 든 채로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다...보는 사람은, 없다.

"아-악! 왜 그딴 걸 신경써야 되는 거냐고! 누가 신경쓰냐!"

그는 단호한 표정으로 주위에 서 있는 큰 나무 밑둥으로 걸어가 편지를 흙으로 덮어 버렸다. 급기야 나무 아래에는 손바닥만한 넓이에 거북이 등껍질만한 높이의 '편지의 무덤'이 생겨버렸다.

"...흥!..."

아론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조차 남의 이목을 신경쓰는 자기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해 보였다.

"그 따위 자식에게 편지는 무슨 편지야? 젠장, 갈 길이 멀다!"

자카룸의 기사는 매몰차게(어디까지나 자신의 생각으로)고개를 돌리며 지는 해를 쫓아 검은 진흙이 사방에 널려 있는 늪지로 들어섰다.






고뇌의 여신은 아직까지도 자신이 그 인간의 손에 지옥으로 돌려보내 질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치 않았다. 분명 사나이는 성공적으로 자신을 T자형 복도의 세로선 부분에 부하들과 격리시켰다. 그러나 그가 얻은 게 무엇인가? 사나이가 본월로 막아낸 것은 그녀의 부하들이면서 동시에 사나이 자신이 목숨을 건질 수 있는 출구이기도 했다. 설마 인간 따위가 지옥의 지배자인 자신을 맞상대 하겠다는 것인가? 어림도 없는 소리.

우우웅~끼이이-우우웅~끼이이-틱, 티틱, 틱, 우우웅~끼이이...

거기다가 그 단단한 본월조차도 이제는 압도적인 숫자의 악마부대의 돌격을 견뎌내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있었다. 계속적으로 밀어붙이는 그녀의 부하들에 의해 본월은 조금씩 휘어들었고, 무관심한 사나이의 방치속에서 이제는 거의 '뚝!' 하고 부러져버릴 것처럼 위태로와져 있었다.

[지옥에서 너의 무식함과 아둔함을 탓해라 어리석은 인간이여]

"시끄럽다."

사나이는 고개를 홱 돌려 날카롭게 한 마디하고는 너 따위엔 관심없다는 투로 다시금 본월과 그것을 부술려고 달려들고 있는 악마부대들을 주시했다.

키아-아아아아아아

무시당한 고뇌의 여신은 신경질적인 괴성을 지르며 오른팔을 서서히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녀는 승리를 확신하는 표정을 지은 채로 자신만만하게 사나이에게 외쳤다.

[지옥의 독에 중독된 채로 처참하게 죽어가랏]

안다리엘은 그대로 들어올린 손으로 지옥의 맹독을 뭉쳐 만든 덩어리를 날려보냈다. 주먹만한 크기의, 지독한 독성을 띄며 복도를 가로지른 강력한 독공격-Poison strike-은 정확히 사나이가 서 있는 곳으로 빨려들어갔다.

맞았다!

그러나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사나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냥 그대로 서 있었다.

[으음 조준이 잘못된건가 ]

고뇌의 여신은 지옥의 지배자인 자신의 권능을 믿었고, 그랬기에 그녀가 날려보낸 맹독이 빗나간 것이라고 확신했다-그녀의 눈으로 명중하는 것을 확인했음에도-.

[이번엔 피할 수 없으리라 받으라]

여신은 이번엔 왼팔을 들어올려 반원형으로 휘저으며 그 손에서 거대한 독구름-Poison cloud-을 뿜어내 광범위하게 퍼뜨렸다.

설마 이것마저도 피할 수 있겠는가...

맞았다! 아니...피했다? 설마, 스쳐 지나간 건가?

시야를 완전히 뒤덮은 채 복도를 꽉 메우고 사내를 향해 탐욕스런 아구를 벌려 가던 독구름은 마침내 사내를 완전히 애워쌌다. 그동안에도 열성적으로 본월을 밀어부치던 악마부대에 의해, 본월은 거의 반 이상까지 휘어져 악마부대는 한덩이가 되어 복도로 파고들고 있었다.

이윽고 독구름이 걷힐 때가 되었다. 안다리엘은 회심의 미소를 띄며, 이제 곧 독에 중독되어 고통스럽게 신음하는 모습을 드러낼 건방진, 아니 건방졌던 인간을 동정했다.

그 때, 독구름 속에 비치던 그림자가 흔들리며, 그 속에서 한소리 기합과도 같은 사나이의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포이즌 노바Poison nova! 독구름 따위는 날려버려라!"

어르스름하게 걷히어 가던 독구름이 갑작스레 뿜어져 나온 더욱 짙은 독향에 짓눌리며 되려 온 사방으로 되돌아 나오기 시작했다.

[그 그런 말도 안되는 어떻게 인간이 만들어낸 독 따위가 나 지옥의 지배자인 악마가 뿜어낸 독구름을 짓밟을 수 있단 말이냐]

이제 독구름은 배가 되어 온 사방에 가득 들어찼다. 그리고 짙은 초록색 독향이 원형으로 퍼져나가며 서서히 드러낸 중앙의 공백지역에는 구름이 덮히기 전과 똑같은 자세를 유지한 사나이의 모습이 있었다. 복도를 가득 메우며 퍼져 나간 독구름은 오히려 안다리엘의 악마부대들을 중독시켰고, 전방에서 반쯤 압사당한 상태로 본월에 쳐박혀 있던 악마들과, 그 뒤를 힘차게 밀어붙이던 미친 로그들은 지독한 독향에 헤롱거리며 그대로 한무더기가 되어 본월을 향해 쓰러졌다. 마치 한꺼번에 낚여 버린 물고기 떼처럼. 뒤쪽의 악마들은 앞쪽의 동료들이 중독된줄도 모르고 계속 밀어붙였고, 움직이지 않는 앞쪽의 악마들에 의해 악마부대들의 밀도는 더욱 더 높아졌다. 그리고 드디어 그 밀도가 정점에 다다랐을때, 티티딕 하는 소음과 함께 본월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안다리엘과 사나이가 벌이고 있는 승부의 결정적인 줄다리기가 벌어지고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나이는 그 상황을 그대로 흘려보내지 않았다.

"달려라, 골렘!"

쿠오오오!

안다리엘에 의해 거의 반파된 상태로도 웅장한 함성을 지르며 겅중겅중 뛰어간 클레이 골렘은 양손을 맞잡은 뒤, 중독되어 헤롱거리고 있는 비운의 로그 한 명의 머리를 있는 힘껏 후려쳐 버렸다.

파삭! 툭, 파자작! 로그의 머리는 으깨어진 채로 바닥에 추락했고, 곧 더 지독한 소리를 내며 바스라졌다. 그리고 살아움직이던 생명은 그대로 시체덩어리가 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 엄청난 고밀도로 뭉쳐진 적군의 중심부에, 머리를 잃은 시신이 축 늘어져 가던 그 순간, 바로 그 순간에, 사나이가 그토록 기다리고 노리던 '시체꺼리'가 생겨났던 것이다. 사나이는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막대기를 들어올렸고 고뇌의 여신은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곧바로 터져나오는 여신의 함성을 무시한 채, 사나이는 들어올린 막대기를 잠시도 멈추지 않고 힘껏 허공으로 내려치며 줄기차게 외쳐댔다. "시체폭파corpse explosion! 시체폭파! 시체폭파! 시체폭파!...시체폭파-앗!

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뻐버벙, 뻥, 퍼퍼퍼퍼퍼펑! 펑!

그것은 분노였고, 공포였고, 후회였다. 수십번의 폭발은 한데 겹치며 희생자의 '내용물'을 사방으로 휘날렸고, 피할 방법도 없이 그대로 노출되던 악마부대는 무지막지한 폭발의 한가운데에 있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얼어붙은 몸을 애써 이끌고 그 자리를 벗어나려 할 때, 또 다시 휘몰아친 강렬한 폭음은 그들의 목숨과 함께 고뇌의 여신 안다리엘의 얼을 빼앗아 갔다. 사내는 거의 미친듯이 시체를 폭파시켜댔고-심지어 더 이상 죽일 것들이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 까지도-마지막 로그의 시체가 터져나가는 순간, 한데 쌓여있던 엄청난 양의 내용물과 함께, 무시무시한 폭풍이 조금전까지 악마부대가 으르렁거리며 서 있던 곳을 완전히 휩쓸었다. 안다리엘은 본의 아니게 온몸을 숙이며 그 엄청난 내용물과 뒤섞인 열풍을 견뎌내야 했고, 사나이는 두 팔을 벌린 채 칼칼 거리고 웃으며 날아오는 피륙과 내장, 피바가지를 그대로 뒤집어 썼다.

열풍이 지나간 후, 고개를 들어올린 안다리엘이 발견한 것은 조금 전의 사나이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것은 더 이상 생명의 부분이라 할 수 없는 이름모를-묻고 싶지 않은-고깃덩어리를 뒤집어 쓴 악마였고, 피로 샤워를 한 전설속의 백작부인의 남성부활판이었고, 죽음과 파멸의 환희에 젖어 웃을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고뇌의 여신이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한없이 깊은 고뇌의 해답이었다.

시체의 폭발이 휘몰아치고 지나간 그곳에 살아 숨쉬는 것이라곤 없었다. 떨어져나간 악마의 피륙과 가루가 되버린 병장기, 그리고 열풍에 터져나간 본월의 조각만이 이리저리 뒹굴었다. 아마도 사상 최고로 단단했을 본월을 형성했던 로그들의 '죽은 혼'들은, 그들만의 복수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지하로 내려 앉았다.

[너 너는 너는 도대체 무엇이냐]

안다리엘은 스스로 말을 더듬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할 수 없는 그 목소리 때문에, 사나이는 그녀가 무슨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것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고뇌의 여신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나다." 사나이가 천천히 말했다. "나는 너를 기나긴 고뇌에서 끄집어 내어 지옥으로 돌려보내주러 온 자, 믿음에 눈이 먼 여사제와 돈에 눈이 먼 상인의 선택에 따라 너의 귀환을 그들에게 돌려주러 온 자, 방황하는 로그들의 괴로움을 알아 들은 자, 그들의 집을 그들에게 돌려주러 온 자, 너를 믿으면서도 네가 돌아오지 않을 것을 기대한 지옥의 친구들에게 너를 악마의 방법으로 돌려보내주러 온 자다."

안다리엘은, 고뇌의 여신은 그 때 깨달았다.

그녀는 그녀 스스로를 속박하고 있던 고뇌의 사슬을 끊어 버린 것이다.

후련해져버린, 인간의 세상에 익숙해져 버린 고뇌의 여신이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는 순수한 공포만을 느꼈다. 그녀는 굉장한 비명과 함께, 사나이의 옆을 지나쳐 출구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게거품을 물고 달려 가는 안다리엘의 눈에는 이미 촛점이 없었다. 악마로서 인간의 세상에 후련함을 느껴버린 그녀는 이제 인간의 세상에서 설 자리를 잃은 것이다. 그래서 인간세상의 모든 것에 공포와, 증오와, 파괴만을 원하는 그녀의 머릿속은, 그 모든 것을 순수하게 소멸시켜 버리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본 순간 전율적 공포와 함께 모든 것을 압도당했던...것이었던 것이었다.

그랬기에 그녀는 바람과 같은 속도로 그녀의 곁을 스쳐가는 사나이의 백발을 봤을 리 없었다. 고뇌의 여신이 지배했던 복도의 출구-사나이가 걸어들어온 그, 악마부대가 가로막은 바로 그-를 통과한 그들 앞에는, 악마들이 파놓은 넓은 폭의 구덩이가 있었다. 안다리엘 스스로 죽인 고결한 영혼의 로그들의 시체가 바닥에 깔려 있고, 그녀의 손과 발에 피를 묻히게 한, 시체에서 쏟아져 나온 피가 호수를 이룬. 고뇌의 여신은 이제 완전한 의식의 초탈상태에서 구덩이를 향해 달려갔고, 그녀를 앞서 달려 갔던 사나이는 달려가던 속도 그대로를 온몸에 실으며 훌쩍 뛰었다. 그러나 호수는 사나이가 한번에 건너뛰기엔 좀 넓어 보였다. 사내의 몸이 피로 이루어진 호수 거의 중간까지에서 추락했고, 그대로 두면 영락없이 핏속으로 빠져들 기세였다.

갑자기 시간이 느리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사나이는 혈면(피로 이루어진 수면)을 차고 뛰어올랐다. 중력의 법칙을 완전히 무시한 것처럼 보이는 그 도약의 일면에는 거의 다 부서진 몸을 이끌고 호수에 동그란 머리를 삐죽 내밀어 주인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클레이 골렘이 있었다.

사나이는 허공으로 도약하는 순간 온몸을 180도 뒤틀었다. 사나이의 눈앞에는 이제 그가 뛰어넘은 피구덩이로 돌진해 오는 추한 모습의 고뇌의 여신만이 있었다. 사나이는 빠르게, 그러나 낮고도 분명하게 중얼거렸다. 그건 의식불명의 안다리엘의 귓속을 정확히 파고 들었다.

"비틀려버린 악마의 심장을 낚겠다. ...본 스피어Bone spear."

파츗!

푸른 빛에 휩싸인 뼈의 창이 사나이의 손에서 뿜어져 나왔다. 사내가 도약력에 본스피어의 발사반동력을 더해서 호수의 반대쪽에 안전히 착지 했을 때, 호수에 거의 다다른 고뇌의 여신의 심장에는 아직도 웅웅거리며 앞으로 전진하려 하는 본 스피어가 하얗게 꽃혀 있었다.

그건 악마의 피륙을 짓찢어 놓았지만 그 심장을 뚫고 지나가지는 못했다.

우웅, 우웅. 본 스피어가 진동을 멈추고, 고뇌의 여신도 움직임을 멈췄다.

조용함에서 시끄러움으로, 천천하면서도 빠르게, 깨끗하면서도 너저분하게.

안다리엘,Andariel 고뇌의 여신the Maiden of Anguish의 몸이 호수로 기울어졌다.

첨벙.

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었고, 안다리엘의 육신은 그녀가 죽인 로그의 시체처럼 조용하게 떠올라 있었다.

쿠오오오오오오오...

지옥의 불꽃이 천상까지 타올랐다. 그녀의 영토에 있던 지옥불을 모조리 머리로 이고 다닌다는, 그 불이 다 타기 전에는 그 고뇌를 멈출 수 없다는, 그래서 그 고뇌의 불꽃을 인간에게 뿜어낸다는.

고뇌의 여신을 태우는 지옥의 불꽃이.

지옥의 불꽃은 그녀의 육신 대신에 영혼을 태웠다.

인간의 세상에서 최후를 맞이한 그녀의 영혼은 처절하게 통곡하며 악마의 세상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녀의 시체는 영혼이 지옥으로 돌아가고 난 다음에도 호수에 남았다.

불길이 뚫고 지나간 천정에서 돌무더기가 쏟아져 내렸고, 안다리엘의 시신이 빠져버린 피의 호수는 그대로 그녀의 무덤이 되었다.

"이제...이제야..."

긴장이 풀린 듯 벽에 기대어서는 사나이를 어느 새 호수에서 빠져나온 골렘이 부축했다.

"이제야...이제야 돌려 주었다..."

그는 헉헉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 주저 앉았다.

"보이지 않는 눈의 신봉자들에게...믿음에 눈이 먼 여사제에게...돈에 눈이 먼 상인에게...고뇌에 가득 찬 인간들에게...첫번째 악마를 선택한 인간들에게..."

사내는 순간적으로 흐리멍덩해져가던 눈빛을 바로잡으며 단호하게 외쳤다.

"나는 그들에게 돌려주었다."

떠들썩하던 전장은 고요해지고, 지하묘지에 자욱히 피어올랐던 먼지가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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