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에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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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 소설 디아블로 - 사막의 결전 - 챕터 2 (2) 2011/07/14 PM 05:49
'자카룸의 손' 그 왼쪽 두번째 손가락, 씩씩하고 용감한 사나이이다. 자존심도 있을 만큼 있다. 그리고 교회에 대한 자긍심과 자신의 위치에 대한 자부심만큼은 자카룸의 손이 아니라 발가락까지 다 쳐 봐도 그 만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라고 평소에 스스로를 평가하던 아론이었지만, 그는 지금 사막에서 그 따위 것은 아무런 쓸모가 없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끄으...덥군."

...무거운 갑옷과 커다란 투구, 거기다 거대한 방패와 묵직한 셉터. 그리고 철장갑에 철장화를 신고서 사막을 건너고 있는 위대한 자카룸의 영예로운 성기사. 그는 스스로를 바보라고 욕하고 있었다. 그나마 길을 따라 걷고 있었지만, 역시 사막은 사막인지라 푹푹 빠지는 발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망할, 성기사면 뭐 한단 말인가? 전신을 덮고 있는 플레이트 메일속은 사막의 열기에 찌고 쪄 완전히 한증탕에 가까웠고, 불쾌한 기분이 드는 투구사이로 스물스물 흘러내리는 땀방울은 철장갑을 끼고 있는 지라 닦지도 못하고 있지 않은가. 식량과 물도 거의 다 떨어진 상태였다. 아론은 혼자서 사막을 가로지르려 했던 자신의 무모함을 인정해야 했고, 사막에 대한 자신의 무지, 그리고 교회와 성기사의 명예도 사막에선 다 갖다 버려야 한다는 것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 모든 고생이 단지 하나의 미확인지상물체를 추적하기 위한 것이라니. 아론은 종교재판을 위하여 북부의 광포한 초원도 달려보았고 동부의 밀림도 지나보았으며 숲과 산도 돌파해본 적이 있다. 그러나 단 한 명의 네크로맨서를 추적하기 위해 이런 죽음의 사막을 건너는 자신은 도저히 인간의 욕설로는 욕할 수 조차 없는 얼간이요, 멍청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네크로맨서...빌어먹을, 이게 다 네놈 때문이다! 이 사악에 물든 악독한 마법사놈!"

라고 말하면서도 아론은 며칠전의 치욕스런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제 4주

"어, 카샤. 지하에 누가 들어 갔던 것 같은데요?"

"그래? 누가 그런 짓을...? 아, 그렇군. 그 네크로맨서나 팔라딘인가 보지. 한번 내려가 봐. 조심하고..."

네리스는 만일에 대비해 활에다 화살을 한 대 매긴 채로 캐타콤-지하묘지-로 내려갔다. 하지만 사실 별로 긴장하지는 않았다. 사원 정문에서 이곳까지 오는 동안 살아 있는 몬스터는 단 하나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썩어버린 자매들의 시체는 여러 구 봤지만...

어쨌든 며칠 전 사원에서 캠프사이에는 더 이상 위험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결론을 내린 카샤는 네리스를 캠프로 보냈고, 그 결과 아카라와 와리브 상단, 그리고 기드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사원으로 진격(?)해왔다. 정말로 개미새끼하나 없는, 그야말로 썰물 직후의 갯벌같이 고요한 그들의 본거지로 돌아온 로그들은, 카샤의 지휘아래 분주히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갔다. 널려 있는 시체들을 불태우고, 부서진 물건을 보수하고, 무너진 담장을 새로 세우고...하지만 카샤가 그 무엇보다도 서둘렀던 것은 생존자구출 이었다. 그러나 애쓴 보람도 없이 아우터 클로스터(외곽 수도원)부터 바락(병영)에 이르기까지는 단 한명의 자매도 발견할 수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몇달을 악마들의 지배하에 유린당했던 사원이었으니까...설사 용케 살아남았더라도 먹을 것과 잘 곳을 전혀 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감옥을 지나 이너클로스터(내부 수도원)에 들어섰을 때는 그나마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그곳에는 깨끗한 우물과 식량창고가 있었고, 어떻게 숨을 곳도 있었기 때문에 행운이 지독히 따라주었다면 어찌어찌하게 살아있을 법도 했다. 그러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색 실시 하루 경과, 생존자 수0. 추정 생존자수, 이 추세로라면 역시 0.

그러나 이틀 째인 오늘, 지하묘지의 입구 근처 예배당에서 생존자의 흔적이 발견됨에 따라 수색은 활기를 띄었다. 단 하나라도 살아있으면 구해야 한다. 지금 살아남은 로그들은 기껏해야 4~50명 정도. 부득이 외부로 나갔던 자나 각지에 파견된 자들을 모두 합친다 해도 100명을 넘기기는 힘들 것은 분명하다. 상기 거주하는 수백명의 로그들과 단기 거주하는 여행객, 관광객, 수도승들을 포함하면 천 여명에 이르던 로그사원의 미래는 암담하기 그지없었다. 단 한명이라도 살아있다면 살려야 한다. 단 한명이라도...

한 발 한 발 신중하게, 네리스는 캐타콤의 최하층으로 내려왔다. 조용하고 침착하게 홀로 들어서던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빠지고 말았다. 그녀의 눈앞에, 3미터는 족히 넘을 듯한 나신의 괴물(인간?)이 널부러져 죽어 있는 것이 아닌가. 척추와 목뼈에서 돋아나온 4개의 갈쿠리와 흉측한 핏빛 손발. 그리고 그 시체가 몸을 담그고 있는 핏빛 호수...반쯤은 돌에 묻힌.

"끼아아아아아악!"

네리스, '가장 멀리 보는 자.' 기절하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녀도 당당히 할 말이 있었다. 그 날 그 자리에 기절해 있었던 사람은 네리스 혼자만이 아니었다. 바로 그 옆에, 개거품을 물고 나자빠진 남자가 있었던 것이다.






'기절을 하다니!'

안다리엘의 사체를 보자마자 거품을 물고 기절해 버린 남자. '자카룸의 손' 그 왼손 두 번째 손가락, 아론 맥클레인. 겁 많은 얼간이에 자존심이라곤 눈꼽만치도 없는 자식. 그는 자신에 대한 평가를 그렇게 수정하고 있었다. 악마의 시체. 그건 악마란 이야기에나 존재하는 추상적 존재라고만 믿어 왔던 아론에게는 상당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가 믿고 있던 여러가지 사실을 수정해야 했다. 첫번째, 악마는 있다. 실제로. 두번째, 네크로맨서는 악마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다. 홀홀단신으로 고뇌의 여신을 죽여버린데서 비롯된다. 세번째, 그는 이제 다른 이유로서 그를 쫓아야 한다. 인간의 시체를 터뜨리는 잔혹한 행위에 대한 모범적인 정의의 철퇴를 휘두르기 위함이 아니라, 악마의 출현과 그가 악마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을 설명받기 위해서. 그리고, 이 사악한 악마와 접촉한 신의 피조물을 영원히 잠재우기 위해서. 믿던 것과 계획을 바꾸는 것, 그것은 팔라딘으로서 최전방에서 부대를 지휘하던 그에게 상당히 굴욕적인 일이었다. 팔라딘으로서의 믿음과 지휘관으로서의 계획. 망가져 버린 그의 자존심의 회복을 위해 그는 그 네크로맨서의 파멸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그 고상하고도 중요한 일은 그렇게 해결될지라도, 약간 저속하면서도 덜 중요한 자존심은 어떻게 회복해야한단 말인가. 비명소리를 듣고 내려온 카샤에 의해 깨워진 아론은 하도 당황하고 부끄러운 나머지 황당한 거짓말을 지어냈다. 자신이 사투끝에 그 괴물을 죽였으며, 네크로맨서는 무서운 나머지 자신을 이곳에 내버려 두고 달아났다고...카샤는 어렵게 그 말을 믿었고 따라서 모든 로그들도 그 말을 믿었다. 그리고 그가 그 괘씸하고 버릇없는 네크로맨서-어디까지나 그의 말로써...로그들은 그를 믿었다-를 추적하기 위한 사막행을 떠날 것이라 선언했을 때, 아카라는 그에게 또 다른 서신을 부탁했다. 그 괘씸하고 버릇없는 네크로맨서를 만나면 전해달라고...왠지 비꼬는 것만 같았다. 그는 로그들의 영웅이 됐지만, 상처받은 그의 명예는 회복될 길이 없어 보였다. 아론 혼자만 알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정신적인 문제였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정신적 명예의 회복에 대한 고찰이 아니라 내리쬐는 태양과 찌는 사막의 열기에서 잠시 몸을 식힐 만한 작은 그늘이었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봐도 그늘 따윈 없었다. 나무라고 있는 것은 선인장 뿐이었고, 그외에는 모조리 노랗게 반짝이는 모래들이었다. 멀찍이서 듬성듬성이 산 모양을 이룬채 바람을 타고 흔들흔들 춤추는 사막의 모습을 보며 아론은 그가 사막에 희롱당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젠장, 가도가도 모래뿐이니..."

아론은 절망적인 눈길로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늘은 고사하고 무덤 하나 없었다...아니, 있다!

"오오옷!"

있었다. 건물이 하나 있다. 약간 멀리 있었지만 틀림없이 건물이었다. 직사각형 상자가 서 있는 모양이 꼭 화장실처럼 보였다. 아론은 투구를 벗으며 잠시 자신의 눈을 의심해 보았다. 신기루일 수도 있다.

눈을 비볐다. 있었다.

다시 눈을 비볐다. 있다.

이번엔 고개를 흔들고 다시 한번 자세히 보았다. 여전히 있었다.

"으아아아!"

아론은 미친듯이 그곳으로 달려갔다. 가까이서 본 그 것은 사막의 지하로 사람이 출입할 수 있게 만들어 둔 석조건물이었다. 높이는 딱 아론정도 키의 사람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였고, 넓이도 역시 큰 문 하나 정도에 불과했다. 오묘하고 신기한 무늬가 새겨진 벽돌 수십개로 쌓아올려진 돌출입구라. 도대체 어디에 쓰는 것일까? 벽면은 계단형으로 쌓아져 있었고, 그 주위를 둘러싸듯이 늘어선 서너 개의 화로가 낮임에도 불구하고 타오르고 있었다. 이 넓은 사막에서 불 하나 붙이려고 이까지 오는 사람이 있을리가 없지. 그렇다면 저 불은 이 건물이 지어질 때 부터 쭉 켜져 있었다는 뜻이다. 마법일까?

그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내부를 슬그머니 들여다보았다. 돌층계. 어둠이 짙게 깔려있지만 은은히 흔들리는 불꽃이 보인다. 내부에도 불이 켜져 있다는 뜻이다. 한발 걸어서 안팎의 경계를 살짝 넘어서자, 곧바로 지하에서 올라오는 한기가 몸을 감쌌다. 차갑다기보단 서늘한 정도였다. 하지만 왠지 섬뜩해지는 기분에 뒷걸음쳐 밖으로 나오자, 조금전의 한기는 어디로가고 다시 사막의 뜨거운 열기가 그를 감쌌다.

"희한한 일이군. 지하라서 서늘하다...이런 건가?"

아론은 다시 한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돌층계를 하나 둘 밟아 보았다. 단단하게 박혀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그는 들고 있는 셉터로 벽을 살짝 퉁겨보았다.

티이-이이잉....이이이잉....이이이잉.....우우우우우우우웅....

날카로운 공명음이 지하 깊은 곳까지 파고 내려간다.

"이 소리는...굉장한 깊이로군. 사막속에 파져있는 인조동굴이라...내참."

그러나 지금은 찬 밥 더운 밥 가릴때가 아니었다. 오늘 하룻밤만 여기서 묵고, 내일은 다시 길을 떠나는 거다. 아론은 짐속에서 나무토막을 하나 꺼내 화로의 불을 옮겨붙였다. 횃불을 지켜들고, 아론은 찬찬히 동굴속으로 걸어들어가기 시작했다.

그가 지켜든 횃불이 벽면을 살짝 스칠 때, 긴 세월동안 드리워져 있던 그림자가 횃불에 의해 잠시 일렁이며 흩어졌다. 벽면에 적힌 글씨는 오랜 세월의 풍파속에서 더해진 고풍스런 풍체로 선명하게 읽을 수 있었다.

[The Hall of the dead]

글씨를 보지 못한 아론이 아무생각없이 그곳을 지나치자, 횃불도 그의 손을 따라 옮겨갔다. 잠깐 횃불에게 그 자리를 내주었던 어둠은, 수백년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다시 그 자리로 모여들었다. 글씨는 순식간에 어둠속에 묻혔고,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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