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알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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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책의 요정 (0) 2013/05/18 AM 12:03
바스락...

마지막 장 까지 모두 읽은 소년은 드디어 긴 한숨과 함께 책을 덮었다.
타인에 의해 글로 쓰여진 이야기를 따라
머릿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떠나온 기나긴 여정이 드디어 끝을 맺은 것이다.

매력적인 케릭터, 진부하게 끌지 않고 명쾌하게 진행되던 스토리,
읽는 것 만으로도 박력이 전해져오는 연출, 마지막에 메너리즘 따윈 없는 진한 여운이 남는 엔딩...
무엇하나 빠질 것이 없는 소설이었다.
덕분에 늦은 밤에도 6권이라는, 결코 적지 않은 권수의 책을 스트레이트로 읽어버렸다.
이러한 멋진 작품을 읽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감정을 이입해 꿈을 꿀수 있었던 것에 소년은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가졌다.

"하아..."

하지만, 깊은 한숨을 쉴 만큼의 아쉬움도 밀려왔다.
책 속의 모험은 책을 덮으면 끝나버리지 않는가.
지금까지의 모험이 가상이란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침대에 몸을 던진 소년의 가슴속에 작은 아쉬움이 피어올랐다.
현실의 자신은 날이 밝으면 지겨운 학교에 가서 교과서나 봐야하는 아이에 불과하다.
이렇게 책을 사랑하고 또 많이 읽는데, 현실은 더럽고 치사하기만 했다.
이런 세상이라면 차라리 사라지는게 좋지 않을까.
...나 만크

"...큼 책을 사랑하는 사람도 없을건데...라구?"


벌떡.
침대에 누워있던 소년은 호들갑을 떨며 몸을 일으켜 소리의 근원지인 책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까 그건 분명한 여성의 목소리였다.
거기다, 분명 아까 침대에 가기 전 책상 위의 스텐드를 껐을 터인데,
은은하고 따스한 빛이 방을 비추고 있었다.

"안녕?..."

"....!?"

다시한번, 그 빛이 나는 지점과 같은 곳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년은 살짝 겁이 나긴 했지만, 마음을 다잡고 침대에서 내려와 책상으로 향했다.
그랬더니, 다 읽고 책상 위에 그대로 둔 소설책 위에
은은하게 빛나는 빛의 구채가 떠올라 있는 광경이 보였다.
이건 도대체 뭘까...
아, 그러고보니 아까전의 분명 인사를 했었지??

"넌, 누...구야?"

"난 책의 요정이야."

빛나는 구채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요정...?? 그것도 책의 요정...이라고?
소년은 혹시나 몰라 손등을 꼬집었다.

"아얏!!"

아팠다.
이건 꿈이 아니었다. 그렇다는건...

"진짜 요정인거야!?"

"그렇고말고!!"

아직까지 이게 현실인지 가짜인지 구분이 되고 있지 않은 소년에게,
자칭 책의 요정이라 밝힌 빛의 구채는 왠지 활기차진 느낌의 목소리로 화답해왔다.

"너도 곳 요정이 영영 보이지 않게 될 나이니, 그 전에 선물을 주려고 왔어"

"...선물이라니?"

"책을 사랑해준 너에게 주는 보상이야."

'보상'이라.
보상이란 말에 솔깃해진 소년에게,
요정이 영영 보이지 않게 될 나이니 하는 하찮은 내용은 전혀 신경쓰이지 않았다.
보상... 보상, 보상, 보상, 보상, 보상, 보상, 보상, 보상, 보상, 보상, 보상, 보상...

"보상이란건, 뭔데!?"

닥치고 보상이나 요구하는 속물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했지만,
왠지 활기차진 소년의 목소리에 빛의 구채가 잠시 일렁거렸다.

"넌 하루동안, 니가 동경하던 주인공의 삶을 살게 되."

"오..."

"책을 사랑하는 마음을 앞으로도 잊지말아줬으면 해..."


스스스...
빛이 천천히 사라졌다.
잠시 고민하던 소년은 재빨리 침대에 누워, 다시한번 자신의 손등을 꼬집었다.
역시 아프다.
지금까지의 일들은 꿈이 아닌 것이다.
이제 남은건, 내일 하루동안의 꿈을 즐기는 것 뿐이었다.








특별한 날이지만 언제나와 같이 아침이 찾아왔다.
설레이는 마음에 우물쭈물한 나머지 시간이 약간 늦어져 식사를 할 시간이 없었기에,
교복을 챙겨입고 식빵만 대충 문 소년이 집을 나와 모퉁이를 돌아설 때였다.

"아앗....!! 비켜어어어어...!!"

무언가가 소년을 향해 돌진해 온다 싶더라니,
속도를 줄일 틈도 없이 소년에게 부딪혀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콰당!!

"아야야...."

사정없이 넘어진 소년이 상체를 일으키자,
그곳엔 소년이 내심 마음을 두고 있던 반장이 치마 속이 보일 듯 한 아슬아슬한 포즈로 넘어져 있다.
당황한 소년이 황급하게 고개를 돌리자,
반장은 그제서야 황급하게 치마를 가리고 소년을 매서운 눈으로 쏘아붙였다.

"너, 봤지?"

"....뭐...뭘?"

둘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흐른다.
하지만, 당황한 기색이 있긴 하지만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소년의 얼굴을 보자
반장은 어딘지 당황한 표정으로 얼굴을 붉히며 소년의 시선을 피했다.

"...아니면 됬어."

"...으음?"

...무슨 이야기를 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러고 있으면 지각할 타이밍이었다.
먼저 일어선 소년이 손을 내밀자, 반장은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며 소년의 손을 붙잡고 일어섰다.

신기한 일이었다.
공부도 잘하고 이쁜데다 성적도 좋아 소년이 다니는 중학교 최고의 인기녀인 그녀가
지금 이렇게 소년과 딱 붙어있다니...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반장의 긴 머리카락이 찰랑거리자 향기로운 냄새가 소년의 얼굴을 덮치자,
소년은 그녀의 손을 잡은체 우두커니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언제까지 내 손 붙잡고 있을거야?"

"아,"

고압적인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소년은 황급하게 소녀의 손을 놓았다.
그러자 옷을 몇번 털어낸 반장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걸어가던 반장은,
잠시 돌아서서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소년에게 외쳤다.

"왜 가만있어?...지각할거야?"

"...아,"

가만, 이런 시츄에이션은 어디선가 많이 본 듯 한데...



"꺄악!!"

"...저, 저게 뭐야!!"

분명 어디선가 본 듯 한 상황인가에 대하여 소년이 고민하고 있던차에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와 같이 귀를 찌르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을 향해 소년이 고개를 돌리자,
멀리 떨어진 고층 아파트 중간층 즈음부터 거대한 녹색의 팔이 아래로 늘어져 있는 것이 보여왔다.
거대한 비늘로 덮히고 손가락 사이에 축축한 피막이 걸쳐진 그 팔은,
마치 좁은 곳에 갇혀있어 답답하다는 듯 히스테릭하게 아파트 여기저기를 해집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파트 곳곳에서 혐오감이 드는 녹색의 액체가 터지듯이 뿜어져 나오더니,
거대한 고층의 아파트가 순식간에 무너져내려버렸다.


"...아...아아..."

저건...

그래, 알고 있는거다.


소년의 모든 감각이 정지되었다.
더이상 올바른 사고를 할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척추를 따라 전해져오는 본능적인 공포감 때문이었다.

사마귀를 마주한 매뚜기와 같이,
사자를 마주한 어린 영양과 같이,
소년의 등골을 따라 본능적인 공포감이 터져나와 그의 몸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무너진 아파트의 잔해와 먼지가 가라앉기도 전에,
그 속에서 거대한 녹색의 괴물이 모습을 들어내었다.
인간의 체형이긴 하지만 마치 문어와 같이 촉수가 입가에 늘어진 얼굴, 거대하게 늘어진 아랫배에
박쥐와 같은 거대한 날개, 하늘을 찌를 듯 한 거대한 덩치...
그 좁은 아파트 안에 어떻게 들어가 있었을까 싶은 거대한 체구였다.

그 "괴물"은 잠시 어리둥절 하다는 듯 자신의 양 손을 펼처 살펴보거나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이내 상황을 파악한 듯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괴물의 근처에 있던 건물들은 웃음소리 만으로 박살이 나고
소년이 서있던 곳에는 평생 경험해본 적 없는 지진처럼 땅이 흔들렸다.
거기다, 살을 가르는 듯 한 광풍이 거대한 먼지구름과 함께 불어왔다.


"...아..."

그래, 이건... 분명, 코스믹 호러 장르였다.
쓰레기같은 인간들 중 어쩌다 마도서를 읽어 공포의 마왕을 깨운 인간에 의해
착하게 살던 인간들 조차 멸망하는 내용의 책이었다.
자신이 이런 내용을 동경하고 있었다니...


소년은 필사적으로 정신을 차리려고 했지만,
어느덧 소년의 주위에 살아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
그나마 살아있는 이들도 전봇대에 머리가 으깨지도록 머리를 들이받고 있거나,
스스로 목을 조르는 등 정상적인 이가 없었다.
다들 밀려오는 원초적 공포에 견디지 못하고 본능적으로 죽음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었다.

"...반장!!"

다급하게 반장을 돌아본 소년이었지만,
그의 눈에 비친 반장은 이미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었다.
양쪽 눈에 필기구를 찌른 체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본 소년은
마침내 더이상 버틸 수가 없어졌다.

"......"

가방을 뒤적거린 소년의 손에 커터칼이 들려져있었다.
비장한 표정을 한 소년은 커터칼의 양손으로 붙잡더니, 뾰족한 부분이 자신에게 향하도록 겨누었다.
그리고 그 손으로 자신의 오른쪽 눈을 찔렀다.



푸욱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아픔이 전해져왔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
왼쪽눈이 멀쩡하지 않은가.

푸욱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털썩

땅바닥에 등을 대고 쓰러진 소년의 온 몸을 불고있는 광풍이 휘감았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것이 없으니, 공포감은 많이 줄어든 느낌이다.
그래,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 공포를 느낄 필요가 없다.
이제 소년을 압박하던 공포감에서 해방인 것이다.

"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소년은 크게 웃었다.
하지만 소년의 몸은 곧 다리부터 잡혀 공중으로 들어올려졌다.
그리고선 미끄럽고 악취가 나는 긴 통로로 떨어지더니, 뜨겁고 끈적한 액체속에 빠졌다.
소년의 몸을 불태우는 액체속에 빠졌지만, 소년은 오히려 이 상황이 기뻤다.
죽고나면 더 이상의 공포는 없을 것이 아닌가.






그렇게 부활한 공포의 마왕은,
악마와 같은 날개로 하늘을 날며 자신의 자손들을 세상에 뿌렸다.
인간의 얼굴을 가진 거대한 지네, 살덩어리에 수많은 팔과 눈, 입만이 달려있는 거대한 괴물,
수백미터에 달하는 뱀, 하늘을 날아다니며 독을 뿌리는 거대한 해파리,
작은 곤충과 같지만 뭉치면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식인곤충...
이 별의 지배자였던 인간이 상상하는 것을 초월한 수많은 괴물들이 인간을 도륙했다.
수백년을 이어져온 별의 지배자가 순식간에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23시간이 지나자, 이 별에 인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공포의 마왕은, 그가 뿌린 자손들이 그를 경배하려고 만든 왕좌를 마주하였다.

"%#$#$$%#%$#%^#%$%#%^#%^$#*&*&^%%$$ ~~!!!!!!!!!!!!!!!!!"

마왕은 그 왕좌를 보고 커다란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곳에 앉아 해가 지는 것을 보려는데...


퐁...
연기가 사라지자, 공포의 마왕의 왕좌에 앉은 것은 속옷만을 걸친 비쩍 마른 청년이었다.
...하루가 지난 것이었다.

그는 처음과 같이 자신의 양 손과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공포의 마왕에게서 태어나 왕좌 곁에서 기다리던 괴물들은
찰나의 틈도 놓치지 않고 그를 수초만에 토막내 위장 속으로 보내버렸다.

그들을 풀어준 "왕"이 사라지자,
괴물들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네, 지구는 미생물 조차 존재하지 않는 고요한 별이 되었다.






장르 : 기승...전...멸(全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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