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희 작가의 신작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모두의 기대를 모은 드라마 <지리산>이 어느덧 종영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한 자릿수 시청률을 향한 아쉬움이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지만, 김은희가 쌓아 올린 철두철미한 서사는 매회 소름 돋는다는 반응들을 불러 모으며 완성도 측면에선 시청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는 평을 얻고 있다. 그리고 그 호평의 중심에는 배우 전지현이 서 있다. <킹덤: 아신전>에 이어 다시 한번 김은희와 호흡을 맞추게 된 전지현은 묵직한 분위기와 특유의 능청스러움을 오가며 극의 분위기를 쥐락펴락하고 있는 중. 무엇보다 다시 찾아온 리즈 시절이라는 반응처럼 전지현의 변함없는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 역시 <지리산>의 또 다른 관람 포인트인바. 작품마다 전성기를 갱신하는 전지현의 리즈 시절 연대기를 정리해봤다.
1998~1999년 (19세)
<내 마음을 뺏어봐>
<해피투게더>
패션잡지 <에꼴>을 통해 처음으로 연예계에 발을 들인 전지현은 약 1년간의 연기 교육을 받고 배우로 데뷔한다. 1998년 방영한 드라마 <내 마음을 뺏어봐>를 통해 처음으로 브라운관에 발을 디뎠는데, 숨길 수 없는 독보적인 아름다움으로 많은 이들의 시선을 붙들었다. 성공적인 데뷔식을 끝낸 전지현은 곧이어 스타양성소라고 불린 화제작 <해피투게더>를 만나게 된다. 이병헌, 송승헌, 김하늘, 차태현 등 걸출한 배우들을 탄생시킨 드라마로 전지현은 그해 연기대상에서 신인연기자상을 거머쥐며 본격적인 배우 활동에 나선다. 물론 이 당시 전지현이란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건 TV 광고의 몫이 크기도 했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전설의 광고가 화제를 모으며 전지현의 이름 앞에 '테크노 여신'이란 수식어가 따랐기 때문. 그 광고를 시작으로 '전지현 신드롬'이 시작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겠다.
2000년 (20세)
<시월애>
데뷔 초 전지현을 이야기할 때면 <시월애>를 빼놓을 수 없다. 전지현의 리즈 시절을 언급할 때면 늘 상위권에 위치할 만큼 전지현이 지닌 순수함과 아름다움이 서정적으로 그려진 작품이다. <시월애>는 개봉 당시 전지현과 이정재의 로맨스로 화제를 모은 데 더해, 2년의 세월을 초월한 두 남녀의 사랑을 그린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었다. 물론 흥행의 측면에선 아쉬운 스코어를 기록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국내 로맨스 명작으로 손꼽히며 전지현의 필모그래피 흐름에서 유의미한 흔적을 남겼다는 평을 받고 있다.
2001년 (21세)
<엽기적인 그녀>
그리고 이제부터 본격적인 '전지현 신드롬'이 시작된다. <시월애>의 서정적인 분위기와는 정반대되는 작품 <엽기적인 그녀>를 통해 말 그대로 전국을 뒤흔들기 시작한 것. 전지현이 연기한 '그녀'라는 캐릭터는 우리가 지금까지 목격하지 못한 4차원적인 행동을 일삼으면서도 특유의 러블리함을 잃지 않으며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당연지사 이는 배우 전지현의 매력이 덕지덕지 묻어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교복을 입고 긴 생머리를 찰랑거리며 주민등록증을 내밀던 전지현의 모습은 여전히 관객들 사이 레전드 명장면으로 꼽히곤 한다. 국내뿐 아니라 일본과 중국 지역에서도 가히 역대급 히트를 기록한 <엽기적인 그녀>는 전지현을 한류 스타로 우뚝 세우며 자타공인 전지현의 최고 출세작으로 남게 됐다.
2004년 (24세)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엽기적인 그녀> 열풍의 연장선으론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를 꺼내 볼 수도 있겠다. <엽기적인 그녀>가 아시아권에서 흥행을 하자 홍콩 영화제작사 빌 콩은 <엽기적인 그녀>를 만든 곽재용 감독과 전지현을 데려다 '제2의 엽기적인 그녀' 프로젝트를 감행했다. 그 결과가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인데, 결과적으로 보자면 작품성 측면에선 최악의 평가를 받은 작품으로 남았다. "2시간짜리 CF"라는 이동진 평론가의 말마따나 전지현을 돋보이기 위한 과한 연출이 화를 불렀다는 평이 대다수다. 물론, 역으로 생각했을 땐 그런 의도가 다분하기에 전지현의 리즈 시절을 마주할 수 있는 최고의 작품이기도 하다. 전지현의 예쁨을 최고치로 담아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 엿보인다.
2008년 (28세)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의외로 많은 이들이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를 전지현의 최고 리즈 작품으로 꼽는다.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는 황정민과 전지현이 만났음에도 저조한 흥행 기록을 남기며 당시엔 아쉽게 퇴장한 작품이 되었는데. 다시금 전지현의 리즈 시절 작으로 소환되며 뒤늦게 더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당시 전지현은 모든 장면을 민낯으로 촬영했다는 것. 이를 두고 전지현은 "평소 내 모습이 스타 혹은 화려함으로 비쳤다면 이 영화를 통해 '전지현도 저렇구나'하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2012년 (32세)
<도둑들>
전지현의 연기 인생 '페이즈 2'는 영화 <도둑들>로부터 시작된다. 그동안 여러 작품에서 전지현 본체가 지닌 털털함과 와일드함을 마주할 수 있긴 했지만, <도둑들>의 '예니콜'은 지금껏 전지현이 연기했던 캐릭터들과는 조금 다르다. 일부러 만들어 낸 털털함이 아니라 전지현이 깊숙이 지니고 있던 능글스러움과 유머가 곳곳에 튀어나오며 자연스러움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전지현은 최동훈 감독이 빚어낸 쫄깃한 대사들을 찰지게 소화해내며 <도둑들>의 리듬감을 살리는데 가장 큰 몫을 해냈다. "어마어마한 XX"이라고 욕을 뱉어도, 키스를 하다가 "입술에 힘 좀 빼"라며 소리를 질러도 예니콜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역시 예니콜 깊은 곳엔 전지현의 매력이 고스란히 녹아있었기 때문이다. <도둑들> 이후 전지현은 <베를린>과 <암살>에서도 빛나는 존재감을 보여주며 3년 사이 '2천만 배우'로 자리매김한다.
2013년 (33세)
<별에서 온 그대>
스크린에서 성공을 거둔 전지현은 브라운관에서도 그 매력을 고스란히 뽐냈다. <해피투게더>(1999) 이후 무려 14년 만에 <별에서 온 그대>를 들고 안방극장을 찾은 전지현은 <도둑들>에 이어 흥행 타선을 이어 나간다. 마치 예니콜과 자매 사이일 것만 같은 톱스타 배우 천송이를 통해 '별그대' 열풍을 일으키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지현의 모든 것을 유행시키기 시작했다. 당시 전지현이 먹고, 입고, 쓰는 모든 것들이 품절 대란을 일으킨 것만 봐도 당시 천송이 신드롬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 무엇보다 화려함과 망가짐, 눈물과 웃음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전지현의 능수능란함이 빛난 작품으로 그야말로 전지현의 '리즈 시절'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별에서 온 그대>로부터 어느덧 7년이 지난 지금. 전지현은 변함없는 모습으로 <킹덤: 아신전>과 <지리산>을 통해 시청자를 마주했으니. 전지현을 두고 리즈 시절이 이 때니, 저 때니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 아닐까.
'전지현 레전드 데이'라 꼽히는 짤로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