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녀에게 고백을 했다.
그녀도 날 좋아할거라 생각했다.
나만의 착각이었다. 반년간의 착각.
나에게 좋아한다는 고백을 들었을 때 그녀의 표정이 머릿속에서 계속 재생된다.
당황과 혐오가 반쯤 섞인 그 표정을 짓는 그녀의 얼굴은, 안타깝게도 너무 아름다웠다.
집에 들어와 지쳐 쓰러졌다. 반년간 나의 연료는 그녀였다.
나는 지금 배터리 없는 장난감 로봇에 불과하다.
잠이 들었다.
2-1. 일어났을 땐 저녁먹을 시간은 훨씬 지나있었다.
그녀가 나의 고백을 받아주면 저녁을 같이 먹을 생각이었다.
아니, 당연히 받아줄거라 생각하고 가난한 반지하 생활에 어울리지 않는 레스토랑까지 예약해두었다.
내가 그녀에게 주는 첫번째 생일 선물과 함께.
이런 저런 생각에 뒤척이다가 몇시간 만에 잠에 들었다.
2-2. 정신적 피로에 깊게 잠든 까닭일까.
늦잠을 자버렸다. 잠귀가 예민한 편인데, 알람도 듣지 못했다.
천천히 어제의 일이 기억나기 시작했다. 그녀를 불른 일부터 고백까지
순차적으로 하나하나 재생되듯 기억나는 것이 너무 괴로웠다.
어차피 그녀와의 데이트비용을 모으기 위해 하던 알바이다.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어서 가만히 누워있었다.
방은 내 마음처럼 어두웠다. 평소라면 하나있는 창문에 바짝 차를 댄 집에 항의했겠지만
오늘은 왠지 어두운게 더 좋았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날 깨웠다면
오히려 더 비참했을 것이다.
2-392. 그녀를 찾아갔다. 애초에 그녀 잘못이다.
그녀의 집은 알고 있다. 전에 집이 궁금해서 몰래 뒤따라간적이 있었다.
물론 비번 같은 건 당연히 모른다. 난 스토커가 아니다.
하지만 문을 두드리면 분명 열어줄거다. 왜 찾아왔냐고 굳이 묻는다면
거절이유를 명확히 듣고 싶다고 하면 된다.
이미 몇번의 시뮬레이션을 거쳤다.
오늘은 기필코 성공한다.
그녀는 의심없이 문을 열어주었다.
여기까지 9시 38분. 12시까지 2시간 20분정도 남았다. 충분한 시간이다.
일단 집으로 들어갔다. 문을 잠그고 가져온 칼을 꺼냈다.
그토록 원하던 그녀를 가질 수 있었다. 몇번이나 그녀를 내 것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울었고, 나는 잠들었다.
2-400. 그 뒤로도 몇번씩이나 즐겼다.
늘 똑같은 방법이었다. 그녀는 너무나도 순진했다.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이 그녀를 찾아갔다. 이젠 익숙해져 재미도 시들시들했다.
긴장도 흥분도 덜 했다. 그녀는 내가 방심했다고 생각했는지 평소와 다르게 칼을 빼았으려 들었다.
'죽는 것만은 안돼'
실수였다. 죄책감은 없었다. 그녀가 자초한 일이다.
그녀의 옆에 누웠다. 아직 따뜻한 피가 내 옷을 적시는게 느껴졌다.
눈을 감았다. 곧 잠이 쏟아져 내릴 것이다.
3. 살인이라는 일의 자극이 너무 큰 탓이었을까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시계를 봤다. 12시 24분? 뭔가 잘못되었다...
2-3. 뭔가 이상하단 것을 깨달았다.
조금만 늦어도 화를내던 편의점 사장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도 없었다.
그것도 그렇고 그녀에게 고백하고 나서 12시간씩 두번이나 잤다는 게 말이 안된다.
수염의 길이도 그대로이고 배도 별로 고프지않다.
그런 생각을 하던 도중 잠이 들었다.
2-4. 역시 뭔가 이상하다. 아침 치고는 너무 어둡다.
방밖으로 나가봤더니 밤이었다. 아침 9시라고는 믿기 힘든 어둠이다.
혹시나 해서 핸드폰 날짜를 확인해봤다.
그녀의 생일이었다. 핸드폰이 망가졌나 싶어 인터넷에 '오늘 날짜'를 쳐보았다.
역시 그녀의 생일이었다.
2-160. 무슨 짓을 해도 나갈 수 없다.
9시가 되면 깨고 12시가 되면 잠이 든다.
아니, 8월 17일 21시에 깨서 8월 18일 0시에 잠이든다.
그리고 다시 8월 17일 21시에 깨어난다.
어떤 개지랄을 떨어도 잠이 쏟아진다.
나가고 싶어...
2-203. 오늘 처음으로 자살할까 생각했다.
죽고나면 이 무한루프 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죽는 순간 그게 끝이라면?
죽는 것만은 안된다. 그건 너무 불확실한 방법이다.
2-361. 혹시 이 현상의 핵심은 그녀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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