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오랜만이지?
잊고 산 지 대체 몇 년이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시내 돌아다니다가,
길에서 파는 핫도그가 있기에 무심결에 사 먹었어.
설탕 둘둘 바른.
그거 좋아했다는 게 문득 떠오르더라.
난 크림 종류 말고는 단 것 잘 안먹는데.
갑자기 그게 먹고싶어지다니 우습기도 하고...
홍차 끓여 마시던 나 보면서
영감쟁이 입맛이라면서 비웃고 하하 큰 소리로 웃던 그 날 생각했어.
같이 창가에서 홍차 나눠마시면서 바라보던 흐린 하늘이 기억나더라구.
기억하지 않고 잊고 살다보면
어른이 되어 있을 줄 알았어.
근데 아직도 그대로다? ㅎㅎㅎ
좋아해주는 사람이 나 챙겨주는 거 잘 모르고,
더 너른 가슴으로 사람 품어주는 것도 잘 못하고,
여자랑 데이트할때 머뭇머뭇 뻘쭘한 표정 짓는 것도 여전하고^^
나는 첨 우리 사겼을 때
니가 먼저 손 잡아주던게 그렇게 고맙더라.
손에 땀 많이 난다고 찝찝하면 손 안 잡아도 된댔을 때,
그냥 말없이 웃으면서 내 오른쪽 손 꼬옥 잡아서 이리저리 걸었던 거.
둘이 손 놓지 말자고 했던 그 말.
항상 제대로 표현도 안 했는데
조용히 웃는 얼굴로 쳐다보던 모습,
혼자 생각에 빠져서 주위를 신경도 안 쓰고 있을때
뒤에서 살며시 내 목을 감아주던 그 손,
같이 바라보면 발그레지던 볼.
핫도그 한 입마다 그런 추억들이 하나씩 하나씩
떠올라 버렸어.
그렇게 넉넉하고 따뜻하게 오랫동안 날 품어줄것만 같던 네가.
한 발짝씩 걸음을 떼면 뗄수록 조금씩 조금씩 선명하게.
너를 제대로 사랑할 줄도 몰랐던 철부지가
그래도 놀러갔다 오면 예쁜 귀걸이라도 하나 줘야겠다 생각해서
꼴에 이쁜 거 사준답시고 한 달 용돈 반을 쪼개 사놓았었는데...
미안 ㅎㅎ 벌써 낙동강 걷던 길에 던져버렸어. 몇 년 가지고 있다가.
아, 나 정말 사랑하는 사람 하나 만났었다?
어떤 사람이냐고 물으면...음, 어린 왕자에 나오는 장미꽃같은 사람이야.
자존심 무척 쎄고, 가시가 있어서 가끔 거기 찔려 상처를 입은 적도 있고,
어떤 때는 무척 나를 쓸쓸하게 만들기도 하지.
그치만 그 장미처럼 아름답고 강한 사람이야. 마치 작은 불꽃처럼.
생각만 해도 마음이 타오르듯 뜨거워지게 만드는.
이제 보여줄 수는 없어. 다른 사람이 장미에 물을 주고 바람을 막을 덮개를 씌워 주거든.
어쩌면 나는 어린 왕자처럼 사막을 걷다 장미 정원을 만나
내가 아는 꽃이 세상 하나밖에 없는 꽃이 아니었구나 하는 걸 깨닫고
엉엉 울며 사막 모래에 쓰러질지도 모르지.
그래도 정말로 정말정말정말!
좋아했어!
너 가고 난 이후엔
어떤 일이 있어도 안 울려고 작정하고 살았는데
그 사람한테 사랑한다고 말하니까
평생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그렇게 말을 하니까말야,
북받치는 감정에 나도 내 마음을 꾸밀 수조차 없더라고.
참 오랜만에 으엉으엉 소리 내면서 울었다 ㅎㅎㅎ
부끄러울 것도 없고 니가 울지 말라고 시킨것도 아닌데
왜 그리 눈물 없이 살았는지 몰라.
맘이 많이 시원해지더라.
아까 핫도그 한 입 먹다가 살짝 울컥했어.
니가 나한테 준 그 큰 마음을 왜 나는 받지도 못할 작은 그릇이었는지...
진작 그렇게, 떳떳하고 자신있게 살아 왔더라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마음을 줄 수 있었을텐데.
우린 선택할 기회도 없이 못 만나게 되었으니,
못해 준 것, 후회하지 않고 싶어서
머릿속에서 기억들을 지우려고만 했어.
근데 오늘에야 깨닫았지만
하나도 안 지워졌더라.
앞으로 내가 누굴 만나 사랑하든
그렇겠지. 지워지는 기억같은 건 없어.
문현동 곱창골목 건너서 팔던 그 맛난 고로케는 이제 없더라.
언젠가 시간 나면 그거나 몇천원치 사서 들고 가며 먹을랬는데.
또 생각날지는 모르겠다.
언젠가 나도, 아니 사람 모두가 같은 길을 가니.
그 때 보자.
옆에서 듣고 좋다고 한 노래, 하나 올려 놓을게.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