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새의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바위에 앉아.
고요한 숲 속에 혼자 앉아 있는 버릇이
어릴 때부터 있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헤어지시고 나서도
나는 강길을 따라 걷거나
숲 속에 혼자 있다 밤을 맞기도 했었다.
조용히 흐린 하늘을 보았다.
숲은 언제나 말이 없다.
가만히 날 보고 있다.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만
내가 가진 고민을 이해해주는 것 같다.
그 숲처럼.
물론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최소한
그 사람은 지금 내가 뭣때문에 고민하는지 잘 아는 것 같다.
그 사람의 부탁대로 이야기를 해 보았지만
이야기를 한 사람은
그다지 내겐 진정성을 가지고 싶지 않았나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아깝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가 언제든 나랑 이야기 할 수 있고
같이 이것저것-정말 의미 없는 이야기라 할지라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내가 하루하루를 사는 보람이었으니까.
그냥 그 자체가 삶이었다.
그녀가 나를 배려하지 않아도 좋았고
나를 그다지 신경쓰지 않더라도 좋았다.
그 사람의 결정은 잘못된 것이나 내 맘에 들지 않는 것일지라도
모두 존중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의 방식이었고
나는 정말로 그걸 지켜오려고 애썼던듯 하다.
이제는 어떤 결과가 내가 생길지
그녀가 내게 연락이 오면 무슨 이야기를 해야할지도 잘 모르겠다.
다만 즐겁다고 생각했다.
세상 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도
그 사람만큼 즐거운 적은 없었다.
밤새도록 잠잘 시간을 잊고 이야기를 하든
새벽이 와서 어둡던 창가에 햇살이 비쳐오든
밥 시간을 잊고 이야기를 하든
나는 그녀가 오는 시간만 기다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이지.
그녀와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올 때
가장 괴로웠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었다.
그렇다. 그녀의 말처럼
어쩌면 우린 가끔씩 이야기를 나눴을 뿐일지도 모르니까.
시간이 지나고 나니
'가끔'의 의미조차도 잘 모르겠다.
그것이 하루든 일 년이든 간에.
그녀가 나와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하는 그녀 옆의 사람들이 싫었다.
그 사람이 내게서 멀어지도록 만들었다 생각했기에
그것 자체가 가장 나쁘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 또한 그녀의 결정일진데
어떻게 내가 그녀를 원망하겠는가.
나는 그 사람이 내게 무엇을 하든
도저히 싫어할 수가 없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며 깨달았다.
그것은 여태껏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면서
결코 겪어보지 못한 그런 깨달음이다.
그 사람이 어떻게 매듭을 짓더라도
나는 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결과로 주위 사람들이 내게 손가락질을 하고
멀어진다 해도...
멧새인지 종달새인지 모르겠다.
한 녀석이 삐-하는 울음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고요한 숲에서 바람만이 잎사귀를 건드리며
왔다 간다고 인사를 한다.
나는 그저 웃었다.
미소를 지으며 내 얘기를 들어준
숲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행복은 언젠가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내 옆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