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과 인연은 초등학교 시절부터였다.
당시 하나에 천원 정도하던 보드게임을 나는 무척이나 좋아했다.
같이 할 사람이 없으면 혼자서라도 게임판을 바라보며 상상으로 게임을 했으니까.
그래서 백점을 받아오면 항상 천원을 받았다.
몇 주마다 새 게임을 살 수 있어서 항상 즐거웠다.
어느 날도 시험지를 들고 무슨 게임을 살 지 이리저리 생각하며 집에 갔는데
가방 안의 시험지를 본 아버지가 마치 히틀러처럼 흥분하셨다.
이 아저씨가 왜 이럴까 싶어 시험지를 보니
빨간 색연필로 쓴 점수가 33점이었다.
분명 백점이었는데 왜지...
아버지께서 시험지를 다시 보시더니
니 것이 아니구나 하시며 웃음을 터뜨리셨다.
녀석의 시험지와 바꿔 온 것이었다.
3학년 때 어머니와 아버지가 헤어지고 나셔서
시골에서 1년 동안을 학교에 다니지 않고 있었으므로
당연히 시간의 흐름에 따라 녀석을 잊고 살았다.
한참 시간이 지나고 고등학교 1학년,
한 교실에 그 녀석이 있었다.
쭈삣쭈삣하는 그 애에게
야 반갑다. 배정국민학교 1학년 2반!
하고 등을 탁 치니 녀석도 그제서야 기다렸다는 듯 아는 척을 했다.
학교에서 나는 굉장히 많은 아이들과 친하게 지냈다.
녀석과는 그렇게 신기한 인연으로 다시 만났지만
크게 친해질 일은 별로 없었다.
당시 만화 그리기에 푹 빠져있던 터라
걸리면 선생들에게 두들겨 맞아 죽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며
수업 시간에-용케도 딱 한 번 걸렸는데 그 선생이 본 것은 외전이라 선생 캐릭터들이 나오지 않았다-만화를 그렸다.
만화 내용은 우리 학교 선생들과 학생들이 서로 대립하며 액션활극을 펼치는,
선생과 학생 모두 실명의 캐릭터가 등장했으며,병맛 패러디가 넘쳐흘렀던,
지금의 웹툰들과 비슷했을 그런 만화였다.
이게 인기가 좋아져서 다른 반 애들도 쉬는 시간에 만화를 빌리러 왔었다.
그 녀석도 내 만화를 좋아했다.
만화를 보고 내게 갖다주며 친해지고 싶다는 어필을 많이 했었다.
난 그 때의 녀석을 참 좋아했다.
부잣집 도련님이라 철없고 떼쟁이기는 했지만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세심한 것까지 챙기는 모습이나
별로 재미없는 내 농담에 무척이나 잘 웃던 그런 모습들이 참 좋았다.
나는 국어와 역사를 빼고 다른 과목들에는 전혀 흥미가 없어
전혀 공부를 하지 않았는지라 성적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3학년 어느 날 성적표가 나오자
그 녀석이 내게 성적을 들고 와서는 했던 말이 기억난다.
'예전에 시험지 바꼈을 때랑은 이제 다르다 그쟈?'
의아했다.
그게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지금 생각해보면
그 녀석은 나를 좋아하면서도
이기고 싶어하는 그런 생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항상 그런 것들에 시달리지 않고
즐거운 것만 찾아 세상을 살았고
특별히 누군가를 이겨야겠다는 생각 같은 걸 하지 않고 살았기에
몰랐을 수도 있다.
굉장히 슬펐다.
왜 친구가 나를 동경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던걸까.
나는 친구를 너무 모르고 있었던게 아닐까.
나이가 들고 나서
녀석은 항상 나에게 각을 세웠다.
나는 녀석의 연애관을 경멸했고,
그 녀석의 치졸한 선입견을 조롱했다.
애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오입을 하고 싶어 다른 여자나 업소를 찾을 때면
'아 그래 너는 섹스를 무지하게 하고 싶은 게로구나!'
하고 이해한 것이 아니라
'니를 사랑해주는 사람도 니가 생각하는거랑 똑같은 짓을 니가 보는데서 해야 정신을 차리지.'
하는 식으로 받아쳤고
지역 차별적 발언을 할 때는
'니같은 새끼는 나치 시절 폴란드계 유태인으로 태어났어야 했다.'
는 식으로 말을 했다.
녀석은 말싸움을 하면 항상 졌기 때문에
내가 제 마음에 들지 않는 소릴 하겠다 싶으면
아! 몰라! 하고 큰 소리를 치고는 입을 닫았었다.
한 번씩 저런 식으로 차갑게 쏘아붙인 말들이
녀석의 마음속에선 맴돌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녀석은 왠만해서는 내가 화를 내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항상 쌓여 있던 화를 내게 많이 풀었다.
항상 먼저 참고
좀 푼수같거나 줏대없이 보일지라도 시원하게 한 번 말다툼하고
풀자는 생각으로 살아왔는데
몇 년이 지나도록
나아질 기미가 없으니
나도 많이 지친다.
한 번 마음을 깊이 줬던 사람이면
내게 어떤 잘못을 하더라도
몇 번이고 기회를 주는 것이 맞다 생각한다.
녀석이 나를 이용해 자신의 헛된 욕망을 채운 것도 아니고
내 등에 칼을 꽃는 짓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다만 이번에는 조금 길어질 것 같다.
녀석과 거리를 두는 것이.
이번만큼은 녀석이 왜 내가 그러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볼 생각이 없으니 말이다.
집에 오며 이런 마음이 들었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기왕 힘든거
지금 몽땅 힘들어 버리고
나중에는 좀 편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우정도 사랑도
좋아하던 사람들이 떠나는 것도
차라리 지금 몽땅 그랬으면 좋겠다고.
난 지금도 이렇게 글을 쓰며
억지로라도 미소를 지어 본다.
죽을만큼 힘든 건
나중에 크게 웃기 위해서라고 그렇게 조용히 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