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일리지 덕에 공짜로 비행기를 탄 셈이지만
비행기를 타면 고질적으로 느끼는 귀의 먹먹함 때문에
그다지 상쾌한 기분으로 서울에 도착하진 못했다.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에선
주인공 뫼르소가 알제의 뜨거운 햇살 때문에 사람을 죽였노라 말한다.
여름 햇살 속의 서울 시내는 왠지 이방인에서나 나올법한 느낌이다.
소설 속의 '햇살'이 의미함은 그 시대의 숨막히고 답답한 현실인데
항상 서울에 있을 적에 그런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것이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후덥지근한 시내에서 땀을 흘리며 걷고 또 걷는것이 재밌었다.
그래서 서울의 여름을 참 좋아했다.
비록 한 밤중에 도착했으나
한 여름 낮, 서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때를 잠시 추억했다.
어쩌면 항상 그리워하고 다시 느끼고 싶어한 걸지도 모른다.
그녀처럼.
늘 그 사람과 이야기하고싶고 보고싶어하는 마음이야
가슴 한 구석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다.
허나 그 사람에게 내가 부담으로 자리잡을 바에야
그냥 마음 속에만 간직하고 있는 것이 나으리라.
오히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면
조금은 홀가분해진다.
그녀도 언젠가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될 것이고
가끔은 그 애에게 옛날 이야기를 해 줄 것이다.
소소한 바램이 하나 있다면
그래도 그녀가 그런 옛날 이야기를 할 때,
최소한 '나'라는 못난 인간이
'옛날엔 엄마를 좋아하던 사람들이 참 많았단다'
이런 이야기 안에 포함되어 있는 한 명 정도라도 될 수 있으면,
'엄마 덕에 그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에 눈을 떴다'
는 정도의 공치사라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래도 내가 저 사람에게 몹쓸 짓을 한 것은 아니로구나 하고
쓴웃음이라도 한 번 지을테니 말이다.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고
앞으로에 대해 계획하고 하는 것들이 참 시시했다.
머릿속으로 그녀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이 더 의미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기왕 놀러 왔는데
그냥 건물 안에만 쳐박혀 있다 내려가기는 아까워
밖을 걸었다.
대치동 길은 익숙지 않아 이 기회에 걸어다녀보면 좋을 것 같아 주택가 골목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이럴 때도 주책없이 그 사람만 생각하는 내가 좀 한심했기 때문일까
주위의 모습에 그다지 눈이 가질 않았다.
그렇게 생각없이 계속 걷다보니
어쩔 때는 참 야속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이도 저도 못하는 사람이 되다니!
예수 그리스도가 로마군에게 잡혀가 죽음을 당할 것을 미리 알자
하느님께 기도를 했다.
'주여 어찌하오리까?!'
예수가 사람이든 신의 분신이든 간에
당시 차별받는 소수자나 천하게 여겨지는 사람들에게 차별없이 대한 것으로 보아
그는 지금으로 따지면 매우 서민 친화적인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런고로 저렇게 고상하게 이야기를 안 했을 것이다.
아마 '아나 씨발 어쩌란 말이여! 나한테 뭘 어찌하란 말인데!'
그곳에서 쓰는 아람어로 이렇게 얘기했을 가능성이 높다.
모르는 길을 걷다보면 항상 담배를 폈었다는 사실을 잊고
한참을 걷다보니 담배를 참기가 너무나 어려웠나보다.
결국 편의점에 들러 나도 모르게 담배를 하나 샀다.
담배갑을 들고 뜯을까 말까 엄청 고민을 했다.
습관이란게 이렇게나 무서운 것이구나...
한 오 분 정도 고민을 하다가
담뱃갑을 연석 위에 세워놓고
'아나 씨발 어쩌란 말이여!'
하고 소리를 지르며 담뱃갑을 뻥 차버렸다.
아, 환상적인 프리킥!
담뱃갑이 남의 집 담벼락 위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그 다음에 할 일이야 뻔하지.
잽싸게 도망쳐서
자러 갔다.
제목보고 들어왔을때는 베컴 98~2002페널트킥 이야긴줄 알았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