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전 싸이월드를 할 때부터
일기 쓰는 원칙이 하나 있다.
항상 남들이 볼 수 있도록 공개하여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나 뿐 아니라 내 주위 사람들에게도 보여 주는 것.
그렇기에 그때 그때 든 내 생각을
거짓말 없이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그걸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하든
나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짧은 인생,
아무리 주위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양적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내 이야기를 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다.
허나 이 일기는 내게 그다지 관심 없는 사람이라면
그저 관심을 안 가지고 봐도 좋을듯하다.
이것은 여태껏 내 삶을 정리하고 기억하는 일기이다.
결과론에 입각해 내 인생을 바라보면
항상 실패한 삶이었다.
일, 사랑 , 학업성취도, 금전적 수입
어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다.
외식 프랜차이즈를 한답시고
무작정 상경해 공부와 일을 병행했으나
본래 목적이던 창업 컨설턴트는
가족 몰래 모아놨던 돈만 왕창 까먹어버리고 망했다.
존경하는 스승님의 설득으로
로스쿨을 준비했으나
2년 연속으로 죽을 쑤었다.
로스쿨 공부를 하던 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
아니, 정확히는 사랑하게 된 사람이지.
첨에는 나도 내 마음을 몰랐으니까.
결과적으로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그녀는 순식간에 내게서 떠나버렸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이 되어버렸다.
거기에다 그 해 도전한 로스쿨 입학시험은
어떻게 점수를 주는지는 몰라도
뚝~하고 떨어져 버려
그냥 깔끔하게 마음을 접어버렸다.
늘 하고 싶었던 정치,
정치판에 들어가야 정치를 알겠다 생각하여
무작정 들어갔다.
모시던 후보,부산에서 상당히 영향력 있는 야당 정치인이라 생각했는데
정말 시원하게 지드라. 비참할 정도로.
당연히 나는 그 이후로
자기소개를 하게 되면
백수라고 말을 해야 했다.
결과만 가지고 바라보면
이건 무슨 정말로 어이없는 삶이다.
진짜 왜 저리 사는가 할 정도로.
거기에 대고 굳이 핑계를 댈 생각은 없다.
분명히 내가 부족했기 때문에 이룰 수 없었으리라 본다.
하지만 단 한 번도
하고 싶었던 것들을
대충 해본 적은 없다.
공부를 하며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방법과
상대와 토론하는 방법을 익혔고
무엇보다 얻은 것은
서울서 친구 하나 만들지 않고 살았던 시간 동안
매주 책을 몇 권씩 사서 읽었다.
그때 읽었던 책들은
여태껏 생각의 틀을 형성하던 내 사고가
얼마나 좁고 졸렬했는지 내게 가르쳐 주었다.
서울에 있던 동안 두 대통령의 죽음을 맞아
모였던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며
평범하게 사는 우리네 삶이
얼핏 보기엔 의미도 없어 보이는
정치 지도자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많이 깨달았다.
정치판에 뛰어들어
그 동안 몰랐던 정치판 안의 냉혹한 세계와
치열한 계산, 후보가 될 사람의 자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선거가 끝나고 끝까지 사무실에 남아
선거 이후 뒷처리에 대해 배웠다.
그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후보를 도와주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힘들고 고된 삶을 이해했다는 것이다.
자리에만 욕심을 가졌다면
기왕 후보에게도 인정받았는데
옆에 끝까지 붙어 살랑거리며 비서관 자리 빈 곳을 노렸을테지만
그 사람을 오랫동안 모시던 사람들의 가혹한 삶을 보고
나는 후보였던 그 영감에게 등을 돌렸다.
돈 한 푼 제대로 못 벌었지만
그들과 함께했던 궁핍한 삶은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한 내 기억속에 항상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내 삶의 숱한 도전보다
그 무엇보다 중요했던 사랑,
이건 내가 살면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살아가며 누구에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은 나지만
'사랑'이라는 말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도록 해 준 그녀.
난 그녀에게 감사한다.
원망도 해보고,미워도 해보고,좋지 않았던 결과때문에
싫어하려고도 애를 썼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난 그 사람을 싫어할 수가 없었다는 것을
언젠가부터 알았기에 그냥 순응하기로 했다.
화도 내보고,하루 종일 술만 먹기도 해보고,
눈물로 밤을 지새워보기도 하고,
보고싶고 이야기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지 못해
전화통을 붙잡고 몇날 몇일을 망설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년이 넘는 고통의 시간,
나를 잡아주었지만 내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던 그녀에 대한 이해의 시간 속에서
무언가를 얻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던 것 같다.
내 사랑이 의미있는 것이었음을 증명이라도 하기 위한것처럼
끈질기게 글을 쓰고 사랑에 대한 노래와 시를 접하고
오로지 사랑, 사랑만을 외쳤다.
그렇게 사랑만을 간절히 원하여 볼 수 없었던 것,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그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은
나를 믿고,나와 함께하려하고, 나와 같이 걸어가는 길을 볼 수 있는 사람.
더 많은 좋은 말이 있겠지만 굳이 그런 것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 이상형이고
나와 함께 갈 수 있는 사람이 내 사랑이며,
그 사람이 내게 사랑받아야 할 사람이고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이다.
그러므로 내가 해야할 일은
그저 좋아했던 사람이 행복하길 빌고
미워하지 말며, 그 사람 옆에 있는 사람 또한 행복으로 그녀를 감싸주길 바라는 것.
그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없을뿐더러, 해도 안 된다.
그게 내 방식인 것 같다.
난 그렇게 생겨먹은 인간이다.
찌질한 짓도 많이 하고
여유가 지나쳐 게으를 때도 있고
어쩔 때는 돌발적인 행동으로 상대를 곤란하게 할 때도 많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거기서 좋은 것들을 찾아가며 하루하루를 산다.
그래서 살아간 시간들을 또 정리한다.
나는 또 새롭게 도전해야 할 일을 찾았기 때문이다.
도전하며 보람을 찾고
웃으며 살고
좋은 사람을 만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죽을 때까지
변함없이 계속될 것을 알기에
스스로에게 믿음이 간다.
아직까지는 행복한 실패자인 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