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많이 울었던 영화가 둘 있는데
하나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고,
또 하나는 버나드 로즈 감독의 '불멸의 연인'이다.
러브레터는 후반부부터 계속 훌쩍였다면
불멸의 연인은 다 보고 나서야 대성통곡을 했던 영화다.
나는 연애를 항상 잘 못했다.
자라온 과정 때문인지
지랄같고 괴팍한 성격 때문인지
뭣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남들은 밥먹듯이 당연히 하는 연애가 어려웠고
막상 먼저 고백까지 받았던 그런 좋은 기회들도
눈길 한 번 안 주고 거절해버렸다.
좋은 여자친구가 될 뻔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운이 안 닿았는지 쉬이 떠나버렸다.
죽고,하루만에 떠나버리고...
그렇게 떠나버리고 나면
마음의 빈 자리가 너무 커서
도저히 메꿀 수가 없었다.
길지는 않았지만
이 년 정도 그런 사랑을 했다.
그 사람과는 말로 풀어내기도 어려울 정도로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일들이 얽히고 섥혀
나는 그 사람을 포기할 수가 없었고
놓을 수도 없었고 놓아주지도 않았다.
불멸의 연인에 나오는 베토벤처럼
수도 없이 분노했고
인정못했고
내 대신 그 사람 옆에 있는 사람을 증오했고
내 처지를 비관했고
이루어지지 않음에 끝없이 절망했었다.
나쁜 생각들은
밝던 모습까지도 다 바꿔버렸고
건강마저 해쳤다.
내게 큰 소리 한 번 안쳤던
가장 친한 친구마저도
화를 내고 내 모습을 욕했었다.
지금은 너무도 잘 이해해주지만.
마음을 다잡고
다시금 좋은 모습을 보이고자 애를 써도
어쩌다 통화라도 하고 보기라도 하는
그냥 별로 안 친한 친구만도 못한 내 처지에
이게 대체 뭐냐며 수도 없는 시간을 괴로워했다.
하지만, 마음 속에 있는 이런 생각들을
혼자 삭히고 그 사람은 그런 사람 아니라며
그렇게 그렇게 늘 결론을 내렸다.
누가 뭐래도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사람이고
어떤 여자도 하지 못했던 것을 내게 보여준 사람이고
어떤 사람보다도 가족보다도 친구보다도
나에 대해 집요하게 알려고 애썼던 사람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 그 사람이 나를 대하는 모습이
아무리 탐탁찮게 비춰지고
내가 정말 그녀에게 장식물같은 하찮은 존재일지라도
내게 중요한 건 그런 비참한 기분을 증오의 원동력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봤던 그 좋은 모습들, 그 아름다운 모습들이었기에.
영화에서 베토벤은 주정뱅이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달아나
한적한 호수에 몸을 담그어 별빛 달빛이 가득한 밤하늘을 쳐다볼 때의
그 아름다운 시간들을 회상한다. 그 해방감을 다시 기억한다.
그가 그녀를 사랑했을 때 느꼈던 그 감정들을.
내가 그 사람과 있었던 짧은 시간처럼.
오해와 미움으로 가득차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사랑이었지만
인생 전체를 걸고 그녀에게 바칠 최고의 걸작을 만들었다.
모든 기력이 쇠하고 귀는 완전히 멀었으며 이미 인생의 마지막에 들어선 시점에서.
쉬는 시간에 문득 화장실 거울을 보았다.
영혼이 없는 눈동자 두 개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살가죽만 있고 아무 것도 없는 몸뚱아리가 그 눈동자를 힘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울음도 안 나와 옥상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끊었던 담배만 하염없이 물었다.
베토벤은 그에 비하면 얼마나 뜨거웠던 사나이인가...
내 작은 모습에 한숨만 쉬다
텅 빈 눈동자가 그저 토해내듯 눈물을 뱉었다.
벌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딴 나를 좋아해줬던 그 착한 사람들을
매몰차게 끊어버린 벌.
숨고 도망쳐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 있다 보면
다시 나를 찾을 수 있을까.
싫은 것을 똑바로 쳐다보려해도
용기가 나지 않는다.
선택을 후회하지 않으려해도
후회를 할 힘조차 없다.
그저
아무 생각도 없는
회단백 덩어리에 불과한 머리가 유일하게 생각해 낸 것이
저 영화의 한 장면.
그 장면을 말하기 위해
무던히도 쓸데 없는 소리들을 늘어놓는
천박하기 그지없는 손가락...
나도 그냥 평범한 연애 하고 싶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