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는 원대한 이상과 포부를 가지고 남아메리카 대륙을 한 바퀴 여행한 풍운아지만
나는 그냥 사람들이 보고 싶어서 차를 끌고 남한땅을 달린 범부다.
체 게바라는 오토바이를 타고가며 곳곳에 들러 사람들의 애환을 느끼고
때로는 풍토병에 고생하고 온갖 모험을 했지만
나는 편안하게 내 차를 몰고 휴게소에 들러 우동을 먹고 감자를 먹으며
낡은 엠피쓰리에 있는 곡들을 크게 틀고 달렸을 뿐이다.
-물론 광주에 이르러서는 한밤중에 실수로 자전거 도로에 차를 집어넣어
물에 빠질 것 같이 위태한 좁은 길이,
혹여나 도중에 끊겨 있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달렸지만...
이게 다 망할 4대강 사업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에르네스토 게바라보다 하나 뿌듯한 것은
가는 곳마다 나를 반겨주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일게다.
올라가면서 사람들이 잘 안 모일 것 같은 분위기라
한두명이라도 정말 날 보러 와 주면 흐뭇하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올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 항상 그곳에 가면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든든한 그늘이 되어 주는 사람,
* 준비성이 철저해 이것저것 챙기며 신경써주는, 그걸 귀찮아하지 않는 고마운 사람,
* 낮부터 술 한 잔 걸치며 사는 이야기,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좋은 말벗이 되어 준 사람,
* 은근한 눈빛으로 조곤조곤 재밌는 농담을 하며 사람들을 웃게 해 주는 분위기 메이커가 되는 사람,
* 은근한 눈빛의 사람을 더럽다고 놀리며 아픈 몸을 이끌고도 누구보다도 재밌게 놀아 사람들을 매우 즐겁게 해 준 사람,
* 먼 길 왔다며 좋은 곳만 데리고 가려고 애쓰며 특산품이며 뭐며 이것저것 챙겨주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
* 보자마자 날 덥석 껴안고는 귀여운 목소리로 형님!하며 뭐 하나라도 못 줘서 아쉬워한 멋진 동생같은 사람,
* 같이 요리도 하고 적극적으로 이것저것 하고 싶어했던, 먼 길 마다않고 달려와준 믿음직한 흑인 쉐프같은 사람,
* 사람들의 짖궂은 장난에도 즐거워하며 두 번이나 와서 같이 놀아주고 즐거워했던 수갑을 좋아하던 마음씨 착한 사람,
* 야근으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와서도 내색하지 않고 끝까지 쿨하게 같이 놀아주었던 요츠바를 사랑하는 즐거운 사람,
* 아이유의 깜찍한 율동과 샤이니를 능가하는 댄스실력으로 시종일관 나를 웃게했던 멋진 사람,
* 여태껏 길지 않은 인연이었지만 항상 내게 고마워해주고 사람들과 잘 지내도록 도와주었던,정말로 믿음직하고 정이 가는 동생같은 '살아있는'사람,
* 그 '살아있는'사람에게 봄을 준 고마운, 개구리왕자님같은 따뜻한 사람,
* 어영부영 들어갔던 카페에서 부드러운 미소로 우리들을 맞이해 준 어떤 동네 카페 형님같던 사람,
* 내가 온다고 집 청소를 하고 열심히 준비를 했지만 보지 못해 진심으로 아쉬워했던 마음이 고운 사람,
* 그냥 모른 척 아무 소리 없이 넘어갈 수도 있는데 굳이 메시지를 보내주고 신경을 써 주었던 의리있는 사람...
몇 명 안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겐 한 명,한 명이 잘 모르는 사람 백 명보다도 만 명보다도 귀했다.
거대한 꿈을 가지고 만나지 않더라도,
어떤 사명감에 의해 만난 인연이 아니더라도
너무나도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예전에 어떤 이가 내게 얘기했었다.
'인터넷으로 만나는 사람이 다 그렇고 그렇죠. 형님,그냥 신경 끄시는게 좋습니다'
그렇게 말한 이도 나와 루리웹으로 인연을 쌓은 사람이고
사회에서 만나든 학교,학원에서 만나든
시작은 다 같이 모르는 상태에서 하는 것이다.
그렇게 말한 이는 아마 실제로 사람들을 만난다고 해도
자기가 말한 '인터넷으로 만나는 사람' 이상으로 인연을 쌓고 정을 주진 않을 것이다.
훌륭한 인연을 만남에 있어 계기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는 위인들처럼 거창한 목적을 가지고,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빛나는 꿈을 가지고
자동차로 전국여행을 떠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언젠가 내가 가장 즐거웠던 순간 중 하나로
이것을 떠올릴 거라는 걸 너무도 잘 안다.
봄 햇볕처럼 밝고 놀라운 순간이었다.
ep. - 단 한 가지 두려운 것이 있다면 과속딱지. 제발 가는 동안 안 걸렸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