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죽해놓은 우동면을
썰었을 때,
똑같은 감으로 썰었는데도
굵기가 영 다를 때가 있다.
똑같이 썬 면도
끓여보면 식감이 다를 때가 있다.
요리를 하는 사람은 같은데
맛이 다르다.
삶도 우동면같을 때가 있다.
나는 이게 맞다고 생각해도
어쩔 때는 전혀 아닐 때가 있는거다.
보통 그럴 땐
참 많은 생각을 하는 편이다.
왜 그럴까 왜 아니지 왜 왜 왜
그런 의문들은 내 삶에 큰 도움이 되었었다.
풀릴 때까지 이것저것 시도해보면서
그 시도 자체에 무언가를 얻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큰 기쁨과 뿌듯함을 느낀다.
그런데 어쩔 때는
그런게 아무 소용 없을 때가 있다.
무력감을 느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생각.
나라는 존재의 초라함에 대해
너무도 비참하고 슬프고 가슴이 터질 것 같을 때도 있다.
무언가를 얻는 나도 나이고
비참하고 슬픈 나도 나다.
바뀌어야만, 추구하는 목표가 실현되어야만
내가 원하는 내가 되는 건 아니다.
우동면은 썰려져 들어가는 순간
반죽과는 다른 무엇이 된다.
그 결과물이 작자인 내 마음에 들던지 들지 않던지
그런 건 어쩌면 큰 의미가 없는 걸지도 모른다.
태어나 살아가는 순간
나는 내가 전혀 예상못했던 나로 바뀌어간다.
그런 자신이 마음에 들던 안 들던
나는 정의할 수 없는 무언가가 된다.
요즘처럼 허둥대고 그저 무언가를 못해 안달하는 나도 나다.
참 보기 싫은 모습의 나이다.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이렇게나 많은 사람일줄은 몰랐지만
그것도 나다.
결과물에 대해 원망하면 안 된다.
담담히 나온 면을 찬 물에 헹구고
그릇에 담아 고명을 얹고 밖에 낸다.
판단은 순전히 손님의 몫이다.
평가에 대해서는 오롯이 손님에게 맡겨야만 한다.
'나는 열심히 만들었는데! 왜 손님이 못 알아주지!'
따위의 고민은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은 냉정하고 무섭고 고독한거다.
하지만 내가 최선을 다해 만들었든 최선을 못 다했든
무언가를 원망할 필요는 없다.
우동면은 또 만들면 된다.
삶도 또 만들면 된다.
밀가루가 남아 있는 한은.
목숨이 붙어 있는 한은.
그만 기죽고 다시 또 살아가야 될 때가 됐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니까.
...심야 0시부터 아침 7시까지 영업해. 메뉴는 돼지고기 된장국 정식, 맥주, 일본주, 소주 밖에 없지만 원하는 음식을 말하면 재료가 맞으면 음식을 내어주지.
유일하게 챙겨본 일본드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