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세상에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 엄밀히 따지면 세상의 모든 가르침은 우리가 진정으로 믿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믿고 싶어서 만든 믿음의 세계에 지나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이문열이 '가문이란 존재의 틀 속에 들어가게 되'는 것에 대해 그것을 합리화하는데 써먹은 이야기이다.
논리적으로 살펴 보자. 만약 세상에 확실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명제가 참이라면, 이 주장은 모순이 된다. '세상에 확실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확실한 것이므로 적어도 하나는 확실한 것이다. 그러므로 저 말은 잘못된 논증이다.
이것은 파시스트들이 자주 범하는 논리적 오류 중 하나이다.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생각을 자포자기하는 사람들에게 집어넣으려고 하는 것이 그들의 특기이다. 물론 그들이 철학이나 논리학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거나 심리학의 전문가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목소리만 큰 돌대가리들이라 가능한 일이다.
무서운 점은 저 하등의 가치도 없는 논리적 오류를 가지고 '사람은 자신이 믿는대로 생각한다'는 인식론의 범주에 저것을 결합시키는 닭 수준의 아이큐를 가진 사람이 많기 때문에 저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잘난 척 하는 사람을 배척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라 할 지라도 부디 저런 멍청이들이 사람들 위에 서는 일은 없어야 사회가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대신 그 기능을 언론이 해야하는데,
저런 자들을 경계해야하는 것이 언론이라 보고, 적어도 언론만 제기능을 한다면 충분히 걸러낼 수 있을 것이나...
한국은 주요 언론들 자신이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고, 저런 파시즘적 상황으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기득권 층에 속하니, 경계하게 됩니다.
조금 맥락은 다릅니다만, 뭐, 사실 황우석 사태때 그나마 진보언론들조차 '난자를 헌납한 연구원들 혹은 여성들'을 칭송하며, 어떤 식의 애국주의와 비슷한 파시즘적, 전체주의적인 행태에 비판과 경계가 적었던 것을 생각하면 조금 갑갑하군요. 그 이후에 반성이 뒤따랐고, 좀 나아지긴 했다 생각은 듭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