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글에서 이야기했듯, 부자의 기부는 여러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만약 개인의 행복지수를 객관적으로 수치화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이야기를 진행해 봅시다.
전체 사회의 구성원이 100명인 사회가 있습니다.
부자는 하나고 나머지 99명은 가난한 사람입니다.
이 사회에서 한 명의 부자가 재산을 강제로 기부함으로서 겪게 되는 불행이 1이라면,
부자의 재산으로 행복해지는 가난한 사람들의 행복은 99가 된다고 가정합니다.
원래의 공리주의적 입장은 저 결과, 더해지는 행복과 불행의 차가 99-1=98이므로
부자의 재산을 강제로 몰수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정의로운 짓이 됩니다.
하지만 직관적으로 보아도 저것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실례로 공산주의 사회가 초기에 행했던 부자와 사회 지도층을 숙청하여 개인 소유의 재산을
몰수한 행위는 사회 전체의 부를 증가시킨 것이 아니라 그 사회를 더욱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칸트의 의무론적 관점으로 보았을 경우, 쓰임이 광범위하여 불분명한 기부를 개인에게 강압한다면 그것은 비도덕적 행위입니다.
즉, 기부를 강요하는 것은 옳은 행위라고 하기엔 문제의 소지가 상당히 큽니다. 부자의 기부를 사회적으로 의무화시킬 수는 없다는 이야기지요.
하지만 기부를 개인의 선택에 맡기는 경우에는 아무도 기부를 하지 않는 경우가 생기겠죠.
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 경우가 오히려 많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저번 시간에 냈던 공리주의와 의무론의 딜레마 퀴즈를 통해 생각해 봅시다.
보통의 경우에는 50명을 구하기 위해 1명을 희생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을 합니다.
실제로 사람들을 모아놓고 제가 저 질문을 했을 경우, 대부분이 마지못해 1명을 희생시키자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저 문제는 매우 복잡한 문제입니다. 1명을 죽이자고 하는 분이라면 모든 소수자의 희생에 눈을 감으셔야 하지만 실제로 그런 분은 없습니다. 보통은 '조건부 의무론'과 같은 융통성 있는 철학을 무의식중에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죠.
이쯤 되면 '아...어쩌란 말이냐.'고 말씀을 하시는 분도 있으실겁니다.
물론 정확한 답은 없습니다. 디오게네스같은 사람들은 '네가 번 돈은 본래 네 것이 아니니까 딴 사람들한테 술이나 한 잔씩 사줘라.싫음 말고.'이런 식으로 이야기 할 수도 있겠지요.
사실 여러분은 여태껏 제 함정카드에 걸린 것입니다. 부자의 기부는 원론적으로는 '소수의 희생' 이나, 자본주의 사회시스템에서 부자는 결코 '힘없이 희생당하는 소수'가 아닙니다. 오히려 '앱솔루트 파워'지요. '약자를 착취하는 부자는 인간도 아니다.'와 같은 공산주의적 폭력혁명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부하지 않는 한국 부자를 단순히 서양 철학적인 개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잘못된 견해라고 본다는 거지요.
부자도 사회의 구성원이며 귀중한 인격체입니다. 다만 한국의 부자들과 같이 수도 없는 불법을 저질러 재산을 착복하고 오히려 힘없는 다수인 대중에게 손해를 끼치고 있는 인간들은-그들이 사회환원을 전혀 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돈에 의한 권력체계를 더 공고히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오히려 사회악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즉, 사람들은 기부를 하지 않는 부자에 대해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모든 부를 가지고 가서는 사회를 피폐하게 만드는데 일조하는 악인들에게 화를 내고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현상을 간단하게 만들고 나면 답은 나옵니다. 착복한 부를 강제적으로 사회에 환원시킬 수 없다면 그들이 불법을 저지르고 사회를 어지럽히지 못하도록 강력한 제재수단-세금-을 가하는 것이 기부보다는 더 도움이 되는 것이지요. 기부하지 않는다고 원망할 게 아니라 세금이라도 똑바로 내도록 만드는 게 차라리 낫다고 보는게 제 견해입니다.
뭐 사실 이게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고작 중견기업의 CEO인 친구의 아버지도 법인세를 년간 몇억씩 탈세하지만 이걸 웃고 들어야 하는 게 제 현실이고 우리나라의 현실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