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의 숙소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거실에는 아기자기한 소품이 진열돼 있고, 침실은 단정하지만 은은한 향기가 나고, 옷장은 수백 벌의 옷과 가방, 구두로 가득한, 뭐 그런 상상. 그런데 여긴 좀 많이 달랐다.
널찍한 거실엔 승마운동기구, 마사지기구, 지압 훌라후프가 놓여있고, 현관을 따라 붙박이장에는 운동화만 빽빽하게 들어있다.
걸그룹보다는 여자 운동부 숙소 같은 분위기에 다소 실망한 것도 잠시. 6인조 에이핑크 멤버들과 2시간여 수다를 떨다 보니 털털해도 너무 털털한 그들의 인간적인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2011년 요정처럼 가요계에 등장해 어느덧 개구쟁이 여동생처럼 대중 곁에 다가선 여섯 소녀, 에이핑크의 숙소를 전격 방문했다.
◇방 배정은 공정하게 가위바위보!
숙소는 젊은이의 거리 홍대가 내려다보이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있다. 국내 톱스타들이 다수 거주하는 이곳으로 이사 온 지는 2개월 남짓. 60평 규모로 여섯 멤버가 살기에 넓고 쾌적한 편이다. 멤버들의 옷과 신발만 해도 한 살림이라 일부만 가져다 놓고 나머지는 창고에 보관 중이다. 방은 공평하게 가위바위보로 배정해 맏언니 박초롱(22) 윤보미, 정은지(이상 20)가 큰 방, 손나은(19)과 오하영(17)이 작은 방을 쓰고 있다. 유일한 독방은 김남주(18) 차지다.
-독방은 배려 차원에서 리더를 줘야하는 거 아닌가요?
연장자 배려는 따로 없고요. 공평하게 가위바위보로 했어요. 호호. 우리는 이상하게 막내들이 방운이 좋아요. 지난번에는 하영이가 독방에 당첨돼 혼자 썼었거든요.(초롱)
-같이 방 쓰는 사람이랑 마음이 안 맞으면 어떡해요?
아유~. 다 친해요. 그리고 방을 같이 쓴다고 특별히 더 친하다거나 그렇진 않아요. 보통 집에 오면 다 거실에 모여서 놀고 방에선 잠만 자니까요. 나중에 방을 한번 바꿀까도 생각했는데 피차 짐 정리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건 포기했어요.(보미)
-혼자 있고 싶을 때도 있을 텐데 셋이 한 방 쓰는 팀은 좀 힘들겠어요
활동할 땐 다들 집에 오면 씻고 잠자기 바빠요. 그래도 조금 불편은 하죠. 보미가 아늑해 보일 것 같다고 자기 침대에 커튼을 두르고 그 안에 조명을 달았거든요. 졸릴 때는 '야, 그것 좀 꺼!'라며 막 구박해요. 하하.(은지)
-여섯 명이 사는 집치고는 정말 깨끗하네요. 숙소 공개 때문에 일부러 치운 거에요?
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청소해주시는 분이 계신 데, 그분이 어제 다녀갔어요, 다행스럽게도. 저번 숙소보다 넓어서 그런지 더러운 게 티도 잘 나서 서로 치우기도 해요. 그런데 벽이 너무 휑하죠? 이게 못질을 못하게 되어 있는 벽이라서 팬들이 보낸 사진이나 뭐 걸려고 하면 줄을 달아서 공사를 해야 된대요.(나은)
◇인스턴트 NO! 우린 소중하니까요
걸그룹의 생명은 V라인 얼굴과 S라인 몸매, 다이어트가 일상일 테니 숙소에서는 밥도 안 먹을 줄 알았다. 예상과 달리 에이핑크는 '집밥'을 자주 먹는다고 했다. 가정식 요리를 제대로 하는 맏언니 박초롱 덕분이다. 멤버들도 대부분 요리를 좋아해 주방에서 뚝딱뚝딱 만들어먹는 걸 즐긴다. 특히 아침식사는 여섯 명이 당번을 정해 준비한다.
-아침식사는 어떻게 준비해요?
조식은 간단하게 먹으니까 준비하기가 편해요. 닭가슴살, 계란, 고구마 등을 이용해서 차려 먹어요. 요즘은 컴백 준비 중이라 아침은 거의 집에서 먹어요.(보미)
초롱 언니가 요리를 진짜 잘해요. 저번에 보미 언니 생일에 미역국, 잡채, 닭볶음탕까지 손수 만들었어요.(하영)
언니가 고구마맛탕도 잘 만들잖아? 비오는 날에는 김치전, 호박전도 부쳐줘요.(남주)
-초롱 씨 의외인데요?
어머니가 음식 솜씨가 좋으셔서 항상 같이 하다 보니까 좀 해요. 요즘엔 나은이도 요리에 재미를 붙였어요. 자주 주방에 들어와서 뭘 할려고 하더라고요.(초롱)
-걸그룹들은 의상이나 머리 모양으로도 경쟁을 많이 한다면서요?
우리는 취향이 미묘하게 달라서 신기하게 하나도 겹치지 않아요. 저는 검정이나 회색, 카키색 같은 어두운 색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하영이도 어두운 색을 좋아하는데 스타일은 여성스럽고 단정한 걸 좋아해요.(나은)
보미는 진짜 독특하게 입는 데 레깅스도 티라노 사우르스, 해골, 빨간 용까지 아주 디즈니월드를 다리에 박고 다녀요.(은지)
◇여고생 그룹에서 성인돌로 "많이 컸죠?"
2011년 4월 '몰라요'로 가요계를 노크한 에이핑크는 '잇걸', '마이마이', '허쉬', '부비부'까지 앙증맞고 사랑스런 곡을 연속 히트시켰다. 그동안 멤버들도 훌쩍 자랐다. 데뷔 때만 해도 박초롱을 제외하고 윤보미, 정은지, 손나은, 김남주는 고교생, 막내 오하영은 중학생이었다. 지금은 멤버 중 넷이 성인이다. 손나은은 MBC 가상결혼버라이어티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샤이니 태민과 부부로 출연, 알콩달콩 신혼 재미를 만끽 중이다.
-올해 성년이 된 멤버들(윤보미, 정은지, 손나은)은 어때요? 술도 좀 배웠나요?
학교를 다니면 술 먹고 놀러다니면서 '나도 성인이구나!' 실감이 날 것 같은데,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술은 회사 식구들이랑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먹어 본 정도? 취할 때까지 먹어보진 않았어요. 나은이가 좋죠. 성인되자마자 결혼도 하고. 하하.(보미)
네에~. 결혼하고 남편 생기니까, 조…좋습니다.(나은)
-은지씨는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찍을 때 조인성 씨와 술 한잔 했어요?
했죠, 헤헤. 인성 오빠가 회식을 자주 마련해줬어요. 촬영 끝나면 다같이 방송 보면서 모니터도 하고, 그럴 때 술도 한잔하고 그랬어요. 좋았죠.(은지)
-집에 다 같이 모여있을 때는 주로 뭐해요?
영화 보는 거 좋아해요. 같이 사니까 이게 진짜 좋아요. 다같이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먹으면서 보니까 더 재밌고. 저번에는 자고 있는데 어디서 통곡소리가 나서 나왔더니 나은이랑 남주가 영화 보면서 엉엉 우는 거에요. 하영이도 따라 울고. 아주 얼마나 우는지 호흡곤란까지 오겠더라고요.(보미)
그때 '7번방의 기적'을 봤거든요. 완전 슬픈 거 있죠. 슬픈 영화 좋아하는데 저번에는 '각설탕' 보고 엉엉 울었어요.(남주)
◇멤버 중 최강 괴짜는 은지, 최고 인기녀는 나은!
평범한 또래들처럼 자유로운 일상은 아니지만, 여섯 명이 모여 사니 여학생 기숙사 같은 재미도 있다. 데뷔 초 '요정돌'이라고 불린 것도 잠시, 대부분 내숭 없이 솔직하고 털털한 성격이라 숙소에서는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혹시 벌레가 나타나면 누가 잡아요?
저는 뭐 다 잡아요. 바퀴벌레는 좀 크니까 신발이 있어야겠네요. 그거 아세요? 모기는 손 안에 일단 탁 넣은 다음에 막 흔들면 기절해서 죽어요, 헤헤. 하영이도 벌레 엄청 잘 잡아요.(은지)
-샤워할 때 제일 오래 하는 사람은 누구에요?
은지죠. 얘는 진짜 안에서 뭘 하는지. 노래를 부르고 아주 한참을 해요.(보미)
제가 반신욕을 좋아하다 보니까 그래요. 한번은 욕조에 누웠다가 잠이 들어가지고 아침에 일어나니 온몸이 퉁퉁 불어서 감기까지 걸리고 혼났죠.(은지)
-남자 아이돌에게 가장 인기 많은 멤버는?
요즘에는 나은인 것 같아요. 그런데 인기가 많다는 건 다 풍문으로 들었고(웃음), 직접 대시하는 사람은 또 없더라고요.(보미)
◇"비 오빠, 온유 오빠, 진짜 좋아요!"
에이핑크는 개별활동에서도 좋은 성적표를 받았다. 정은지가 케이블 tvN '응답하라 1997'(2012년),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2013년)를 통해 연기자로 자리 잡았고, 손나은도 SBS '대풍수', 종합편성채널 JTBC '무자식 상팔자'로 연기에 도전하더니 '우결'에도 합류했다. 다른 멤버는 이들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은지 씨는 국내 여배우 중 유일하게 조인성을 쥐어박고 욕해 본 사람일 거에요
안 그래도 '그 겨울'하면서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 100만 안티팬을 불러모으지 않을까 걱정했어요. 무엇보다 멤버들이 응원해주는 게 큰 힘이 됐어요. 한번은 촬영 끝나고 왔는데 '그 겨울'을 보던 초롱 언니가 화면과 저를 가리키면서 '오, 이 사람이 저기 있다' 이러는 거에요. 하영이는 '응칠' 키스신을 캡처해서 '언니, 이거 뭐에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라며 문자메시지도 보냈고요.(은지)
-나은 씨는 언니들 제치고 결혼해 태민 씨와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데
촬영이 2주에 한 번씩인데 정말 재밌어요. 오빠가 뭐하고 싶냐고 많이 물어보고, 챙겨줘요. 사실 제가 연애를 안 해봐서 방송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궁금했는데, 막상 해보니 수줍어하고, 표현 잘 못하는 제 모습 그대로 나와서 신기해요. 그런데 제가 은근히 겁은 없어요. 번지점프도 한 번에 했잖아요.(나은)
-혹시 다른 멤버가 '우결'에 출연한다면 함께 하고 싶은 남자는?
음…이런 말 해도 되려나. 평소에 샤이니 온유 선배 팬이거든요. 데뷔 전부터 팬이라서 온유 선배랑 한번? (남주) 어? 우리 아주버님이다, 아주버님. 하하.(나은)
저는 케이블 tvN 'SNL코리아' 광팬이거든요. 신동엽 선배님과 한번 커플해보고 싶은데요.(보미)
굉장히 좋아하는 배우인데 범접할 수 없는 분인 이민기 씨요. KBS2'개그콘서트'에 나오는 서태훈 씨도 좋아요.(하영)
비 선배님 열혈팬이에요. 예전에 콘서트 갔을 때 회사관계자가 인사를 시켜주셔서 악수했는데, 손이 덜덜 떨리더라고요.(초롱)
또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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