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4년쯤 됐었나.... 동사무소에서 주민/호적 등초본 발급하던 공익 시절이었어요.
지금 기억으로는 한 60대 정도 돼 보이는 할머니가 호적등초본 발급 창구에 앉으시더니, 살짝 미소 지으시면서 호적등본 떼러 오셨다고 했었죠.
제출 용도를 여쭤봤더니 확인할 게 있다고 하셨어요.
전산에 주민번호 넣고 출력한 다음 프린터에서 꺼내 스테이플러로 철하고, 잘 나왔나 한장 한장 넘겨봤는데
마지막 장에 할머니 아들, 며느리, 손주 둘 중 한 명이 사망자로 나와 있었어요.
'이게 뭐지'라고 생각하며 할머니께 드렸는데, 등본을 넘겨보시고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셨어요
그 페이지를 펴자마자 흐느끼지도, 울먹이지도 않고 그냥 눈물을 주르륵 흘리셨어요.
잠시 그렇게 눈물만 흘리시다가 결국 올라오는 울음소리를 꾹 억누르면서 흐느끼셨어요.
그땐 어린 나이라 뭘 어찌해야 할지 몰라 어버버하고 있었는데,
옆자리 인감 담당 누나가 와서는 호적등본 출력 화면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할머니 손을 꼬옥 잡아드리면서 위로해주셨어요.
괜찮다고 괜찮다고, 다 제대로 처리 됐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된다고, 아드님 며느님 모두들 좋은 곳 갔을 꺼라고........
그렇게 한참을 우시다가 좀 진정되고 나서 할머니 말씀을 들어보니, 아들 가족이 태풍 매미에 희생된 거였어요.
인감 누나 손을 한참 꼭 잡고 계시다가 자리에서 일어나시면서 고맙다고 발급 수수료 내시려고 하는데,
누나가 괜찮다고 그냥 가시라고 하셨어요. 몇 번을 주겠다 괜찮다 오가다 결국 고맙다고 인사하시며 동사무소 문을 나가셨어요.
그땐 그저 막연하게,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듯, 민원 창구의 안과 밖의 구분처럼 거리를 둔 슬픔이었는데,
세월이 지나 저도 가족이 생기니 이제 그 슬픔이 어떤 건지 조금이나마 더 가깝게 느껴지네요. 얼마나 아프셨을까.......
해마다 태풍 뉴스를 보면 그 할머니의,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걸 달관한 것 같았던 미소와, 결국 달관할 수 없었던 현실과 맞부딪히고 난 뒤 힘없이 걸어가시던 뒷모습이 떠올라요.
부디 이번 태풍은 아무런 고통도, 슬픔도 남기지 말고 조용히 지나갔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