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남의 변화 바라기보다 상대 맞춰 내가 변하는 게 좋은 소통법”
경향신문 2014년 연중기획 ‘심리톡톡-나와 만나는 시간’ 4월 강연은 ‘소통, 생각의 흐름’을 주제로 건국대 신경정신과 하지현 교수가 진행했다. <도시 심리학> <심야 치유 식당> <예능력>을 비롯한 다양한 심리서적으로 대중에게 친숙한 ‘상담자’인 그는 최근엔 관계 맺기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도운 경험을 바탕으로 <소통, 생각의 흐름>이란 책을 펴냈다. 지난 22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1시간 반 동안 진행된 강연의 내용을 요약했다.
■ “인생에서 딱 한번, 엄마의 배 안에서 경험하는 궁극의 소통”
소통이라는 게 뭘까요? 저를 찾아오시는 분들은 두 가지 경우로 나뉘어요. “다른 사람과 말하기가 어려워요” 혹은 보호자가 함께 와서 “이 아이와 말 좀 통하게 해주세요”. 때로는 이런 말씀을 하는 분도 계십니다. “내가 ‘어’ 하면 상대방은 ‘아’ 해야 하는데 왜 그러지요?” “굳이 말로 해야 하나요?” “구차해요.” “쪽팔려요.”
그런데 제가 실험 하나를 소개할게요. 부부 가운데 결혼생활 5년차, 20년차, 50년차 이렇게 세 그룹으로 나눠서 각각 결혼생활에서 있었던 일을 질문했어요. ‘가장 즐거웠던 때는?’ ‘가장 힘들었던 때는?’ 이런 질문도 하고 상대방이 말할 때 감정을 읽게 해봤어요. 부부가 함께 오래 살다보면 표정도 닮는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서로를 잘 알 것이다’ 이런 것을 증명하려던 실험이었죠. 그러나 결과는 예상외였어요. 결혼 기간이 짧은 부부일수록 서로를 더 잘 이해했어요. 20년차 되는 부부는 다 다르더라고요. 1년에서 5년차, 10년차까지는 열심히 서로를 배우는 거예요. ‘저 사람 저 표정은 어떤 기분이야’라고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거죠. 그런데 한번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나면 그냥 사는 거예요. 서로를 더 알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거죠.
우리는 인생에서 딱 한번 궁극의 소통을 경험합니다. 내가 엄마 배 안에 있을 때입니다. 엄마는 항상 나랑 같이 있어요. 우리는 양수에 동동 뜬 채로 산소를 공급받고 먹을 거나 배변도 다 자연스럽게 되고 엄마가 자면 나도 자면 되죠. 엄마가 기분 나쁘면 나도 기분 나쁠 것 같고…. 즉 우리는 누군가와 ‘직렬 연결’된 경험이 있어요. 뇌에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거죠. 그런데 10개월이 되는 순간 양수가 터지면서 뚝 끊어지는 느낌이 들어요. 궁극의 소통은 거기(엄마 배 안의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가 타인을 만났을 때 서로의 배 안에 들어갈 수는 없죠. 즉 우리의 소통은 ‘불가능’을 지향하고 있어요. 연애할 때 서로가 동시에 전화를 걸면서 텔레파시가 통했다고 좋아하던 시기가 잠깐 있었어요. 지금은 하루 종일 전화 안 해요.(웃음) 두 사람이 하나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결국은 독립적 개체인 만큼 각자를 인정해야 해요.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게 소통의 현실적인 목표치입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죠. 왜 그럴까요? 제가 하나의 답을 드리면 ‘확률의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아내와 하루 두 번은 만날 겁니다. 대화를 하면 열 마디 이상 하고, 주말엔 더 오랜 시간 하죠. 주중 50회에다 주말을 더하면 약 100회의 ‘오고 감’이 있는데 속상함이 1번이면 괜찮은 거예요. 확률로 따져보면 1% 미만입니다. 사회생활하면서 1% 미만으로 기분 나쁜 정도가 있다면 괜찮은 관계라고 볼 수 있어요.
한국 사람들이 원하는 소통은 ‘이심전심’이에요.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이 저 사람에게 전해지길 바라는 거예요. 애인에게 내가 스테이크 먹고 싶다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줘야 하는데, 상대방은 맛집이라며 순댓국집을 데려가요.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서로 다른 생각을 해요. 나중에 싸울 일 있을 때 나는 “내 마음도 모르고 이상한 데 데려가느냐”고 하지만 상대방은 “너를 위해서 최고의 맛집을 찾아냈는데 뭔 소리냐”고 하는 거죠. 근데 우리는 (순댓국집 가자고 할 때 실망하면서도) “싫어”라고 말하지 못해요.
우리에겐 ‘정’이라는 독특한 문화가 있어요. ‘정이 든다’고 하지요. 그럼 반대말은 ‘정이 빠지다?’ 그렇게는 말 안 하죠. 정이 든다는 것은 ‘물든다’는 개념입니다. 반면 정이 떨어지는 것은 서서히 그만 만나고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뚝’ ‘너랑 나랑 끝’, 이게 우리나라 정 문화입니다. ‘싫은데…맘에 안 들어…’ 그러다가도 “끝이야”란 말을 듣기 무서워하죠. 그래서 싫은 것도 하게 됩니다. 정을 좇아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얻는 것은 ‘우리’가 되는 것입니다. “넌 우리 멤버야.” 이런 소리를 아주 좋아합니다. 인맥, 혈맥, 학맥 그런 거 없더라도 어떻게든 ‘입성’하면 ‘철밥통’을 얻죠. (웃음)
■ “‘이유없이’ 싫은 게 있다면 자신의 ‘감정적 기억’ 열어봐야”
저는 소통을 주제로 얘기할 때 ‘화법’ 얘기는 전혀 안 합니다. 남을 알고 이해하고 변하기를 바라는 것보다 내가 변하는 게 훨씬 좋습니다. 어느 책에 나오는 것처럼 ‘먼저 발을 디밀어라’ ‘지금 아니면 안된다. 안 사면 당신 엄청 후회해’라고 협박하는 설득 방법들이 있죠. 하지만 그런 것에 의해 설득당하고 ‘사인’하고 나면 기분 나빠요.
그러니까 나의 변화를 통해 소통하는 게 훨씬 나은 길입니다. 그런데 나의 변화를 위한 방법을 고민할 때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나는 왜 사람들과 관계 맺고, 얘기하고 나면 감정이 아프고 오래 기억에 남을까’ 이런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 당연한 얘기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 소풍 때 여러 복잡한 일이 있어서 나만 김밥을 못 싸가서 굶었어요. 비참했어요. 그 기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감정적 기억’이거든요. 우리 머릿속에는 삽화 기억과 감정적 기억이 분리돼서 저장됩니다. 삽화 기억은 휘발성이 강하죠. 감정적 기억은 오래 남습니다. 싫거나 아픈 것은 ‘위험’, 즉 생존의 문제와 연결돼 있습니다. ‘그건 위험할 수 있어’ 이런 기억은 내 뇌가 오래 기억합니다. 독버섯 먹고 데굴데굴 굴렀던 기억, 숲에서 뱀한테 물렸다가 죽을 뻔한 기억 등 이런 기억은 오래 남겨놨다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합니다. 현대사회에서는 ‘싫은 것’ ‘버림받은 것’ ‘아파본 것’ 등이 복잡하게 섞여서 뇌에 남겨져 있습니다. 감정적 기억은 (당시와) 비슷한 느낌과 만났을 때 발현될 수 있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은 이상하게 싫어’ ‘이런 느낌의 사람은 이상하게 싫어’ (마음속) 여기저기에 쌓여있다가 어떤 상황에서 툭 하고 돌출하는 게 보인다면 ‘감정적 기억’을 열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 “몸에 기력이 있을 때 상대의 행동에 덜 예민해진다”
또 한가지 말씀을 드리자면, 사람들과 관계를 맺다보면 예민해질 때가 많습니다. 머릿속의 레이더망 감도가 너무 높아지는 것이죠. 무인기로 추정되는 것들을 다 잡아내려면 새까지 모두 잡아야 한다더라고요. 조금 큰 비둘기, 철새들 날아오는 거 다 레이더에 잡히면 공군은 돌아버릴 거예요. 우리도 가끔 그럴 때가 있어요. 감정이 예민해지면 ‘말을 잘라서 하네’ ‘공격적이네’ 같은 생각을 하죠. 사실은 무던하게 넘어가고 그 사람이 얘기하고자 하는 핵심만 가지고 얘기하면 되는데 괜히 시니컬해지는 거죠. 그럴 때는 세가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첫째, 피곤한가, 둘째, 내가 저 사람과 (부정적으로) 엮인 것이 있는가, 셋째, 지금 상황이 나한테 굉장히 절실한가. 절실하면 그럴 수 있거든요. 그런데 생각보다 첫째, 둘째의 이유가 훨씬 많습니다.
특히 첫째가 진짜 이유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뭔가 중요한 회의를 하거나 예민해질 만한 얘기를 해야 할 때는 밥 먹고 나서 오후 1시쯤 하는 게 제일 좋습니다. 뭔가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하다못해 사탕 먹고 주스라도 마시고 해야죠. 내 몸에 기력이 있을 때 레이더의 감도를 낮출 수 있습니다.
좋은 소통의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도 해드릴게요. 우리는 어떤 화법에 한번 성공하면 자꾸 반복합니다. 하지만 금방 바닥납니다. 말하자면 채 썰 때, 회 뜰 때 각각 다른 칼을 쓰는 일식 요리사처럼 다양한 ‘칼’을 갖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회관계망이 넓어질수록 그래야 합니다. 그리고 말 잘하는 사람보다는 잘 맞춰주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액티브 리스닝’이라고 하는데요, 적극적으로 듣고 있다는 것만 보여줘도 상대가 충분히 만족할 수 있습니다.
우리, 다양한 ‘칼’들을 쓰면서 하나씩 남에게 배워보자고요. ‘저 사람은 남을 배려하는 장점이 있네. 나도 저런 자리에서 저렇게 해봐야지.’ 즉 내 변화가 중요합니다. 내가 흔들흔들하더라도 심하게 흔들리지 않고 가는 게 중요해요. 새가 3m 높이로 날아가면 지칠 거예요. 조금만 방심해도 여기저기 부딪치니까요. 하지만 10m 높이로 날아가면 잠시 놀거나 졸아도 안전하거든요. 내가 안전하다고 느낄 때, 나 자신을 컨트롤하고 있다고 느낄 때, 그럴 때 외부와의 소통이 되는 겁니다.
<송윤경·김향미 기자 kyung@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