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만하면 안하는 데 스포일러를 포함할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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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비티를 봤습니다. 수원CGV 3D아이맥스로 봤어요.
잘만든 영화는 포스터 부터 다르다고(물론 영어포스터이야기)
'Don't let go' 라는 포스터의 문장은 영화를 함축하는
훌륭한 한마디였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는 멋드러진 우주에서 보이는 지구를 커다랗게
보여주면서 시작합니다. 이 영화의 가치는 이미
이 짧은 오프닝 영상에서부터 나타납니다.
지구는 너무 아름답습니다. 영화는 이어서
시작부터 긴 롱테이크의 영상들을 보여주는데요.
실로 놀랍습니다. 세트 촬영이겠지만 무중력을
저렇게 완벽하게 표현했을 뿐 아니라 장시간
테이크를 끊지 않고 연기를 했다는 점, CG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점. 상당히 놀랍습니다.
헐리우드의 촬영 기술의 발전은 이제 두려울
정도입니다.
영화는 주인공의 짧은 드라마도 배경 설명도 보여주지
않은채 재난 상황에 처합니다.
여기서 부터 이 영화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데요.
엄연히 SF 재난 영화입니다.
포스터나 주인공의 감정만을 생각한다면 코즈믹 호러
같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공포심이나 절망은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 하지는 않
습니다. 물론 주인공은 절망하기도 하며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죽음에 공포를 혼자서 견뎌야 하지만
거대한 우주적 공포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렇게 무시무시하고 거대한 공간임에도
수많은 별들은 반짝반짝 빛나며 그 넓고 넓은 어두운
공간이 얄밉게도 아름답게 묘사됩니다.
밤이 된 지구의 모습은 어둡고 전기 불빛에 불타오르는
낮의 지구의 모습과 대비가 되지만 그 마저도 절경이라
말할 수 있더군요. 어둡고 그림자가 선 지구 마저
아름답다는 것이죠.
산드라 블록을 살라고 푸시해주고 전형적인 자기희생형
캐릭터가 된 조지 클루니의 역도 인상적입니다.
이 터무니 없는 농담이나 하는 수다쟁이는 극한상황에서는
예수처럼 행동하죠. 재난영화에나 나오고 실제 세상에는
없을 것같은 이러한 캐릭터 조차도 영화에서는 손뼉을 치게
활용합니다. 관객을 속이는 행위는 언제든 흥미롭죠.
생존을 위해 달려가는 주인공의 행동들은 되게
제한적이고 위태위태하며 좁은 공간을 많이 활용합니다.
아이러니 하죠. 어느 것보다 넓은 우주에서 작은 공간들을
사용해 주인공의 위기를 고치시키는 점들은 적절한
감정 표현입니다. 의외로 이 영화는 작은 영화입니다.
2012처럼 화면 가득 때려 부수지도 않고
나사의 구축물 몇개(?) 박살낼 뿐이죠.
커다란 담론을 다루지도 않아요. 그저 마음의 상처가
있는 한 우주비행사의 생존을 다룰 뿐이죠.
영화 제목이 그래비티입니다. 중력. 영화에서 중력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에필로그에만 나오죠.
어둠 속에서 반짝이던 별들과 밀폐된 구조물의
공간 만이 보이던 배경은 마지막에 가서야 아주
짧은 시간 푸른 하늘과 지구 자연의 모습이 보입니다.
지구도 우주만큼 녹녹치 않은 곳이죠. 원래 재난영화라는게
지구에서의 생존 영화가 더 많지 않습니까?
하지만 지구도 우주에 비하지 않는 아름다운 곳이라는
것은 시각적으로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영화는 러닝타임이 길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영화가 짧게 느껴지는 것은 서스펜스를 이끌어 왔기
때문일 겁니다. 영화 후반구조 캡슐에서 라디오 교신을
하는 장면은 아마 영화사에서 길이 길이 언급될 장면일
겁니다. 산드라 블록은 정말 좋은 연기를 하더군요.
'스피드' 때 뒤지지 않은 좋은 몸매를 여전히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예전 '크래시'에서 보여준 인상적인 연기만큼이나
그래비티에서도 호연을 보여줍니다.
우주복이라는 넓직한 보호구를 벗은 그녀의 (과하게)
단련된 몸매는 나약한 정신을 점차적으로 극복해 나가는
그녀의 캐릭터의 설정에는 조금 어긋나지만 그 자체로
예술인것 같습니다. 하여간 미장센은 이 영화의 묘미입니다.
이 그윽한 우주 체험영화는 분명 아바타 이상으로도
영화사에 이름이 거론될 만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SF라는 장르에 하나의 마스터피스가 될 것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가 대부나 시민케인
같은 엄청난 완성도의 걸작인 것은 아닙니다.
내러티브의 플롯만 보면 대단한게 없지요. 이야기도 짧습니다.
하지만 모난 곳도 없습니다.
영화의 의의가 뭘까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대리 체험이라는
요소는 매우 영화에 있어 의미가 있는 부분입니다.
아바타도 라이프오브 파이도 역시 그런 영화였죠.
물론 그래비티는 많이 다릅니다.
그렇게 엄청난 물량의 영화가 아니죠.
우주체험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인간의 '고독'을 체험하게 합니다.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3D 효과 장면은 우주의 장면이 아니라
산드라 블록의 눈물이 관객에게 다가올 때입니다.
그런 의미에 이 영화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겠죠.
누구나 삶을 고민하고 외로움을 가지고 삽니다.
하지만 삶 그자체가 소중하다는 것은 망각하곤 하죠.
이 영화는 세상 어느것보다 넓고 끝없는 공간에서
가장 평범한 것을 말하는 영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치유 영화라고도 말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러브크래프트에게 싸다귀를 날리는 영화기도 하고요.
작년에 본 '라이프 오브 파이'가 생각납니다.
그 영화와 이 영화에 어느 영화가 더 좋았다 라는 비교는
의미가 없겠지만 적어도 그 영화만큼이나 이 영화도
좋았다고는 할수 있겠네요.
영화 매우 추천입니다!
PS. 빼먹은 이야기가 있어서 추가합니다.
이 영화는 소리를 아예 호러, 스릴러 영화처럼 사용했습니다.
서스펜스를 조장하기 위함도 있지만 이 우주 특유의 고요함을
느끼게 하는 목적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 곳곳이 무음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나오는데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는 고요함이란 상황에 따라
호러블 하게 되죠. 마지막 지구에 도착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가
소리가 풍부한 것이니까요.
그리고 편집의 경우도 재밌는데요. MTV 법칙이라는게 있습니다. 편집에
있어서 한 쇼트를 3초이상 쓰지 않는 건데요. 뮤직비디오에서 많이 쓰죠.
요즘 같이 편집이 빠른 시대에 이렇게 테이크를 길게 가는 영화는
진짜 오랜만인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영화가 길게 안느껴지다니 그것도
대단하죠.
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