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토요일에 봤습니다만, 어제는 왠지 모르게 귀찮아서 오늘 쓰게 되었습니다.
스포일러는 최대한 자제할 것이나 언제나 그렇듯 조금 있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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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 마블 영화는 보기 전부터 기대감에 사로 잡히게 됩니다. 하물며
이번 영화는 워낙 평단의 평이 좋았기 때문에 상당한 기대감을 가지고 영화관에
들어갔습니다. 감독이름이 '조 루소'. 제가 나름 영화 관련 공부(라 읽고 덕질이라 쓰는)를
해오면서 그다지 들어 보지 못한 이름이었습니다. 알고보니 드라마 '커뮤니티'의 연출자더군요.
토르 다크월드의 '앨런 테일러'와 같이 또 양질의 드라마 연출을 한 감독을 데려온 모양입니다.
게다가 마블 영화는 배우도 미드에서 익숙한 얼굴들이 많이 나오죠. 굳이 멀리 안가더라도
마리아 힐 캐릭터는 우리가 즐겨보는 지금 피날레를 향해 달려가는 시트콤의 '로빈'과 같은
배우이지 않습니까?
영화는 이야기가 매우 단단합니다. 어벤저스나 아이언맨과는 지향하는 방향이 전혀 틀리더군요.
마블에서는 '정치 스릴러'라는 단어를 썼더군요. 비교적 어울리는 표현이지만 사실 정확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전 이 영화를 보며 007 스카이폴나 본 아이덴티티를 떠올렸거든요.
캡틴 아메리카는 총을 맞고 죽지 않으며 높은 빌딩에서 밑으로 투신하거나 비행기에서 바다로
추락해도 안죽는 사실 비인간적인 육체를 가진 남자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워낙 말도 안되는
스펙의 로봇 갑옷에 외계 마법사에 녹색 괴물까지 있는 판이니 인간적으로 보이게 되죠.
마치 스파이 첩보 액션 영화의 주인공 보정을 거친 영웅 캐릭터 처럼요. 하지만 그는
어쨋든 슈퍼 히어로입니다.
재밌게도 슈퍼 히어로 영화에서 오랜 테마 중 하나가 "POWER"입니다. 단순히 힘을
지칭하는 것 뿐이 아니라 권력 혹은 통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요.
영화 초반 스티브 로저스는 내적갈등에 시달립니다. 그는 자유(freedom)을 상징하는
자로 독재(나치)에 저항하던 군인입니다. 그는 자유주의의 심볼 같은 존재입니다.
이는 영국에서 독립한 미국의 20세기 초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죠. 하지만
현재의 미국은 어떨까요? 거대한 빅브라더 그자체 아닌가요? CIA는 첩보와 감청을
상징하는 기관이 되었죠. 얼마전 폭로에서는 한국도 도청했다고 하지요.
쉴드는 그 빅브라더를 구현화 시킨 권력기관입니다. 대 테러 시대를 맞아 부시정권이
이라크의 병사을 고문하고 초법적인 대응을 한 것을 떠올릴 수 있겠죠.
마블과 DC, 그리고 여러 그래픽 노블 작가들은 오래전부터 이러한 권력의 통제와 감시를
소재로 삼아왔습니다. 그게 극단적으로 일어난 것이 마블에서는 '시빌워'이며 앨런무어는
그 유명한 그래픽 노블 "왓치멘'이나 '브이 포 벤데타', '프롬헬' 등의 작품에서 비판하지요.
왓치멘의 매인 로그 라인이 "감시자들(왓치멘)은 누가 감시하는가?" 이지 않습니까?
누구보다 미국인 스러운 스티브 로저스이자 미국의 프랜차이즈 영웅인 캡틴 아메리카가
변질된 미국 그 자체를 상징하는 무언가와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면에서는 충분히 정치 스릴러라 볼 수도 있겠죠. 신념과 신념의 대결구조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재밌는 것은 통제를 상징하는 닉퓨리와 신념적 대립을 건너 또다른 '적'을
등장시키며 영화는 또다른 윤리적 문제를 제기합니다. 여기서 영화는 왓치멘에서
마이너리티 리포트로 변하지요. 그리고 이어서 본 아이덴티티가 되버립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 슈퍼 히어로가 아니고 이름이 제이슨 본이고 쉴드가 CIA나 국토방위부로
바뀐다고 해서 조금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영화가 빅브라더+숨겨진 흑막과의 내용을 다루다 보니 영화 제목인 '윈터솔져'는 정작
비중이 매우 적습니다. 사실 루리웹 유저라면 대부분 정체를 알 그이지만 저와 함께한
주변의 초딩들은 그가 가면을 벗을때 탄식을 자아내더군요.
아저씨가 되어 모든 걸 다 아는 제 자신이 한심하더군요. 저렇게 순수하게 즐길 수 없었을까
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보면서 이야기 구조를 분석하는 제가 싫어지기도 하더군요.
액션의 질이 매우 좋습니다. 어벤저스 같이 물량으로 승부한다기 보다 정교한 스토리보드를
통해 트레킹하며 연출한 것 같더군요. 촬영 감독을 3번 이상 칭찬해도 될 것 같습니다. 주인공이
나름 평범한 축에 속하는 히어로이기에 좀더 아날로그 적인 액션을 보여줍니다. 뛰고 달리고
던지고 막고 구르는 그야 말로 몸짱 영화 배우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합니다.
초반에 UFC 선수가 분한 배트록과의 싸움이나 윈터솔져와의 여러번의 전투는 합과 합의
전통적이면서도 훌륭한 액션 시퀀스를 보여줍니다. 신선하다고 볼 수는 없으나 훌륭하다고는
여러번 할 수 있죠. 그에 비해 블랙 위도우는 진짜 인간(..)이다 보니 좀더 변칙적인 움직임을
보여줍니다. 첨단 도구를 사용한다거나 좀더 스파이 액션에 가깝습니다.
'팔콘'은 아주 적절하면서도 다이나믹한 선택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아이언맨이 안나오잖아요.
그리고 캡틴은 하늘을 못납니다. 화려한 공중 부유 액션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겠죠.
매우 적절했습니다. 팔콘이 뮤턴트 계의 능력자가 아닌 아이언맨 류의 기계 전투 병인 것 또한
재미난 설정 변경입니다. 영화적 밸런스를 잘 유지한 것 같습니다. 사실 토니스타크나 초인이
한명이라도 참전했으면 영화는 너무나 쉽게 끝났을 테니까요. 아이언맨이라면 그냥 하늘 몇번
날다가 다 때려 부셨겠죠. 헐크나 토르라면....이하 생략합니다.
덕분에 침투 액션 같은 것을 가능하게 해서 어벤저스에는 없었던 서스펜스가 잘 드러난 것
같더군요.
종합 선물 세트와 같던 어벤저스와는 추구하는 방향이 틀리고 재미의 종류도 틀립니다.
이 영화가 어벤저스보다 재밌다고는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사실 마블 영화는 서브컬처 영화고
캐릭터 영화이기 때문에 그 정점에 있는 어벤저스는 특별하지요. 게다가 만듬새도 훌륭하고요.
그러나 윈터 솔져는 어벤저스보다 훨신 단단하고 정밀한 영화입니다. 만듬새는 더욱 좋고요.
이는 리더이면서도 가장 캐릭터가 약하고 오글거리던 캡틴 아메리카와 스티브 로저스라는 캐릭터를
현대화 시키고 매력을 부여하는 목적에 매우 부합하게 되었습니다.
전작이 나름 괜찮은 퀄리티를 보여줬음에도 캐릭터가 가진 특유의 오글거리는 애국심의 평면적
캐릭터와 초딩도 끝을 알 수 있는 뻔한 전개로 인해 다소 과도한 비난에 시달렸고 어벤저스에서도
캡틴이 헐크, 로키, 토니 스타크 등에 가려져 큰 활약을 했으나 빛을 발하지 못했죠. 이 영화를
통해 스티브 로저스는 스스로를 찾았습니다. 이는 이후 언젠가는 벌어질 "통제"와 "감시"의 끝에서게
될 "토니스타크"와의 대립에 첫 단추를 꿰게 된 것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끝맺음으로서 엄청난 사건의 단추들을 몇개 풀게 됩니다.
스포일러라 말할 수 없지만 닉퓨리와 쉴드의 엄청난 변화. 그리고 쿠키 장면에 등장하는 XXX XX.
그리고 마지막 쿠키장면에서의 XX XX. 조스 웨던은 분명 어벤저스 디스어셈블드와 시빌워를
고려하고 있음이 확실합니다. (타 영화 판권문제가 남았지만)
영화 내에서는 여전히 까메오나 동세계관의 서브 컬쳐 아이템을 다수 배치하고 있습니다.
덕후 일수록 알만한 그것들이 참 많죠. 몇가지 확실한 것 중 하나는 닥터 스트레인지는 영화화가
되는 거겠죠. 대놓고 언급했으니까요.
영화는 어찌되었던 건 참 좋습니다. 완성도로는 마블 영화 중 역대로 좋으며
재미로는 어벤저스 다음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수퍼 히어로의 바이블 중 하나인
스파이더맨2보다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조커 없는 다크나이트랄까요.
울버린 제작진은 이 영화를 좀 본받았으면 좋겠네요. 같은 아날로그 액션임에도 이렇게
달라서야 되나요.
이 영화 매우 추천하고요. 기왕이면 캡틴1편과 어벤저스는 보고 가시는걸 추천합니다.
솔직하 마블씨리즈는 드라마까지 전부 보고 가야 완벽하게 퍼즐이 맞아 떨어지지만
뭐 마블 덕후가 아닌 이상 그럴 수가 있나요?
4/5
쿠키영상 두개 다 보고왔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