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넘게 지나서 리뷰글을 쓰는 이유는 그동안 바빴거든요.
마침 연휴기도 하고 논란이 많은 것 같아 정리하는 겸
적어 봅니다.
스포일러는 자제하는 편이지만 혹시 있을지 모르므로 스포일러에 민감하신분은
읽지 않으시는 것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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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져>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연이어 히트하고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주자 평단에서 나온 표현 중 하나가 "제 2의 픽사를 보는 것 같다." 였습니다. 대중성(흥행력)과 완성도를 동시에 잡는 영화가 흔히 않죠. 대중의 기대치는 하늘을 뚫는 드릴을 보는 듯했습니다.
저도 그랬고요.
저는 원작에 해당할 수 있는 이벤트 <에이지 오브 울트론>를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사실 그 이벤트는 내용 상 영화화가 될 수 없는 부분이 많습니다. 울버린이 주역인데다가 그 사건은 엄청난 사건이 지나간 후에 나온 근래 이벤트기도 하거든요. <하우스 오브 엠>, <시빌워>, <월드워 헐크>,<시크릿 인베이전>, <어벤저스VS엑스맨> 등 굴찍한 사건이 다 이미 지난 이후입니다. 울트론 자체가 워낙 오래된 빌런이니 사실 제목만 따왔다고 봐야 겠어요. 최근 국내에 발간된 그 책이 원작이라고 보기 힘들 것 같군요.
와, 영화 시작하자 마자 달리더군요. 이 영화는 너무 편집이 빨라서 정신이 하나 없고 시작부터 끝까지 때려 부수는 장면이 나옵니다. 거의 대다수의 시퀀스가 싸움을 위한 시퀀스이고 영화도 무지 기네요.
영화 내내 캐릭터로 꽉꽉 차있어요. 1편보다 이야기를 많이 줄였고 대신 늘어난 캐릭터만큼 더 싸웁니다. '어벤저스' 1편은 친절한 영화였어요. 이런 영화가 처음이니까 아주 정통적인 방법으로 조셉 캠벨의 영웅신화를 떠올리는 정도를 따르는 플롯을 따른 영화였죠. 원래 프리퀄 영화가 가장 만들기 쉬운 법이기도 하고요.
반면, 2편은 전형적인 코믹북 이벤트를 보는 느낌이에요. 정보가 많이 생략되어 있어요. 70년을 쌓아온 정보량을 코믹북에서는 일일히 설명하지 않죠. 앞 책을 읽는 수 밖에요. 전작들을 안보면 난감할정도죠. 국내에 <시빌워>가 출간되었을 때 그 책을 사본 많은 사람들이 당황했을겁니다. 왜냐면 아무런 설명이 없거든요. 심지어 같은 <시빌워> 이벤트 내의 다른 코믹스 <시빌워: 아이언맨>, <시빌워: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 스파이더맨>등을 읽지 않으면 완벽하게 들어맞지 않습니다. 전작과 파생작의 사전 정보를 요구하는 것이죠.
그리고 원래 미국 코믹스는 일본 만화(망가)랑 전개 방식이 다릅니다. 일본 만화는 컷이 굉장히 많고 친절한 설명이 많습니다. 일본만화의 영향을 받은 한국만화도 그렇죠. 왜 김성모 만화 <럭키짱>을 보면 한권을 한 전투씬에 다 쓴다고 하잖아요. 전투 씬 묘사를 일일히 하고 거기에 대한 합, 리액션까지 다 따로 그리죠. 미국 코믹스는 안그래요. 한컷으로 다 처리합니다. 대신 글이 많고 그림 퀄리티가 상당히 높죠. 그래서 일본식 컷만화나 웹툰에 익숙한 분들은 처음 마블 코믹스나 DC 코믹스 만화를 접하면 상당히 잘 안읽힙니다.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그런면에서 확실히 코믹스 이벤트를 닮아 있습니다. 덕후 조스 웨던은 그냥 진짜 마블 이벤트를 영화화 하고 싶었나 봐요. 전개 방식이나 축약된 정보, 캐릭터 중심의 편집, 다른 작품들과의 연결고리 등 모든 점이 그냥 마블 이벤트를 그대로 옮긴 느낌이에요.
장대한 서사를 일일히 나열했다면 이 영화는 5시간이 넘는 영화였을 겁니다. 이 영화는 Previously on이 없습니다. 보통 후속작은 전작을 안본사람들을 위한 작은 Rewind 되는 장면이나 이야기에 대한 설명을 조금이라도 넣기 마련인데 전혀 없습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도 10편에 가까운 영화가 상영되었고 이 모든 영화를 다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만, 워낙 캐릭터가 많고 하다보니 이게 한편이라도 놓친 사람은 놓치는 장면이 많을 수 밖에 없죠.
심지어 초반 하이드라 괴멸(..)씬은 윈터솔져를 본 사람들 조차 완벽하게 이해하기 힘든 데 왜냐면 ABS의 드라마
네. 어찌보면 불친절한 영화가 맞습니다. 맞아요.
예초에 기획 의도부터가 불친절합니다. 마블 유니버스를 다 묶어서 한방 크게 터트리는 것이고 당연히 대부분 다 봐야 하거든요. 애초, 그러라고 만든거잖아요? 그게 이 세계관의 장점이자 단점이죠. '스타워즈 에피소드 4-6'를 안본사람이 '스타워즈3' 편을 보고 다스베이더가 된 장면을 보면 그게 왜 AWESOME한지 알수가 없겠죠. 당연한 것이지만 워낙 봐야할 영화나 드라마가 많으니까 모든 콘텐츠를 보는 것은 사실상 무리일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한편에 워낙 정보량이 많은 상황에서 짧은 영화시간에 정보들을 압축시키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에요.
그런면에서 조스웨던은 정말 대단한 감독입니다. 캐릭터가 너무 많아졌을때 어떤 풍파가 일어나는 지는 우리는 '스파이더맨3'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를 통해 이미 겪어보기도 했고요. 그전에는 '젠틀멘리그'같은 실패작도 있었죠. 앨런무어가 영화를 보고 얼마나 싫어했을까요?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정말 훌륭하게 캐릭터를 정리해냈습니다. <어벤저스> 1편이캐릭터 떼샷 영화의 완성형이라면 2편은 그보다 배로 많아진 캐릭터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입니다. 이 영화는 프로덕션 단계에서 원했던 모든 것을 다 해냈습니다. 적당한 완성도, 캐릭터 하나하나에 대한 적당한 배분, 마블 유니버스의 심화, 화려한 전투 장면과 액션시퀀스. 모든 것 하나 놓친게 없습니다.
이야기 구조는 구조도 좀더 심화되었죠. 전작보다 복잡해졌으니 당연히 영화의 난이도도 올라갑니다. 모든 것을 다 잡으려 했기 때문에 영화가 복잡해지고 다소 난잡해지기도 했습니다. 아까 말했듯이 불친절하고 너무 전개가 빠릅니다. 데이빗 핀처 영화 뺨때리겠더라고요. 그리고 마블 세계관에 정통한 사람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 상징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불친절함이 '완성도'에 있어 단점이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우리가 아는 유명한 작가주의나 아트버스터 영화는 대부분 불친절하지 않나요? '버드맨'을 보고 영화 전반이 마치 연극처럼 롱테이크로 연기한것 같이 화면전환을 이어 붙힌 기법에 감탄한 관객이 몇이나 될까요? '메멘토'를 보세요. 이건 관객 학대수준입니다. '인사이드 르윈'을 보고 수미상관기법이 영화의 주제를 어떻게 표현했는지 파악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물론 그래서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런 영화를 안봅니다.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이 영화 한편'만'으로 봤을때 이해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있죠. 맞습니다.
그런데 그건 속편으로서 당연한 것입니다. 버드맨은 영화 촬영 기법에 이해가 있어야 그 가치가 느껴지는 것이고 마블은 마블 세계관을 이해해야 가치판단이 되는 것입니다. 영화 비평은 개인의 판단이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를 단점으로 평하는 평론가도 있을 것이며 아닌 사람도 있겠죠. 이는 B급 지향의 장르 영화의 평가가 다소 호불호로 갈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클리셰를 얼마나 아느냐에 관한 문제가 있으며 또한 비평가가 컬트한 모든 장르적 특성을 다 알긴 힘드니까요.)
그러나 대놓고 세계관을 즐기라고 만든 영화에 정보 파악이 힘들어 완성도를 낮게 보는것은 과도한 지적입니다. 이건 이러한 시도자체를 잘못 비판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거든요. 사실 오타쿠/팬덤 영화니까요. 그러라고 만든 영화에요. 그래서 인기 있는거고요. 떡밥 다 없애고 전작들과의 연계성을 끊어보세요. 재미없어집니다. '윈터솔져'는 정말 훌륭했죠. 하지만 그건 토니스타크도 토르도 안나와서 이뤄낸 성취입니다. 어벤저스2도 캐릭터 수를 반으로 줄였으면 오히려 1보다 나은 작품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정말 우리가 그런 것을 원하는걸까요? 오히려 여기에 스파이더맨과 닥터스트레인지와 울버린까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죠?
극의 스토리 구조를 비판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비판을 이해하기 힘들더군요. 사실 그냥 이어진 사건이 나열될 뿐인 영화입니다. 딱히 앞뒤가 안맞거나 구조상 말이 안되는 이야기는 적지 않나요? 스칼렛 위치가 너무 간단히 편을 돌아선다는 비판의 경우는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녀의 비중이 큰것도 아닐 뿐더러 그녀가 악인도 아닌데 세계를 멸망시키 겠다는데 등을 돌리는 것이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니죠. 게다가 토니스타크와는 화해한것도 아니고요. 임팩트가 없었을 뿐이죠. (특히 원작 스칼렛위치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여자이자 속된 말로 썅X이라 불리는 문제 캐릭터인지 아는 팬이라면 더 큰 임패트를 원하겠죠.)
이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은 조스웨던이라서 그나마 이렇게 정리했구나 였습니다. 역시 <버피 더 뱀파이어>로 캐릭터를 다루는게 능수능란한 감독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차기작 연출을 하지 않는 이유도 확실히 알겠고요. 작은 영화를 해보고 싶다는 말의 의미를 알겠습니다. 이후가 더 문제에요.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는 그나마 겨우 캐릭터들을 잘 정리 했습니다만, 캐릭터가 더 늘어날 시빌워 이후 스파이더맨, 닥터스트레인지 등이 합류할 인피니티 워 쯤 되면 너무 캐릭터가 많아서 과연 누가 이걸 정리해낼 수 있을까요? 전 루소 형제가 오히려 걱정이 됩니다. 각본을 짜는 능력이나 연출력을 의심하진 않아요. 그 면은 오히려 조스웨던보다 낫겠죠. 그러나 어벤저스는 윈터솔져와는 성질이 아예 다른 영화입니다. 윈터솔져는 캡틴 아메리카의 사이드킥 2명의 이야기입니다. 딱 캡틴에 집중해서 극을 이끌어 나가면 되었죠. 그래서 플롯에 좀 더 집중할수 있었습니다.
그에 비해 어벤저스는 달라요. 캐릭터들이 단체로 나오는 액션 영화입니다. 이건 정말 다른 의미로 잘찍기 힘들어요. 익스펜더블 씨리즈 보세요. 완성도나 편집이 형편없지 않나요? '엑스맨' 씨리즈와 도 다릅니다. 거긴 세계관을 신경 안써도 될 뿐더러 거기도 결국 주인공은 로건이고 나머진 쩌리화시킵니다 .(스캇에 대한 처분은 지금도 불만을 가진 사람이 많죠. 코믹스에서 사이클롭스가 안티히어로되고 인기가 역전된 지금은 더욱 그렇죠.). 반면 영화 <어벤저스>에서 그래봐요. 큰일납니다.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심지어 호크아이나 토르 같이 아이언맨이나 캡틴, 헐크등에 인기가 많이 떨어지는 캐릭터들도 놓치지 않습니다.
루소 형제가 찍는 <캡틴 아메리카3: 시빌워>를 봐야 그의 이런 캐릭터 정리 능력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원하는 건 딱 어벤저스2만큼이라도 정리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고요.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완벽한 영화가 아닙니다. 완벽할 수도 없고요. 1편보다 커지고 캐릭터가 많아져 난잡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정도 꾸려냈고 재미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는 거의 1편과 동등한 수준의 영화라고 봐요.
게다가 어느샌가 우리는 슈퍼히어로 영화에 과도한 완성도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이렇게 훌륭한 슈퍼히어로 영화가 몇없는데 말이죠. 에초에 오락으로서의 재미랑 덕질 요소와 장르적 즐거움과 영화적 완성도는 다른 분야고요. 영화적 완성도를 원하시면 웨스 앤더슨 영화를 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 영화가 재미없었을 수도 있죠. 맞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 영화가 재미없는 영화 일수 있어요. 그런데 그건 로튼 토마토나 평론가들의 평과는 상관없지 않을까요?
단평: 매끈하진 않아도 지금까지 마블 영화 중 가장 원작 코믹스의 느낌을 잘 살려냈다. 불친절하다고? 그래서 이 세계관이 재밌는 것!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