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의 제목만 보았을 때는 킬러비(아프리카화꿀벌)를 다루었던 영화 <스웜(The Swarm, 1978)>이 떠올랐습니다. 마침 그 영화가 리메이크 된다는 뉴스도 들은 기억이 있거든요. 다만, 이 영화는 국내 제목처럼 ‘말벌’을 다룬 영화더군요.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 상영작이지만 국내 극장 개봉은 힘들고 결국 바로 IPTV로 직행하는 B급 영화입니다. 제가 즐겨봤던 드라마 중 <엑스파일(X-files)>에도 킬러 비를 소재로 한 일화가 있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영화의 패러디였겠죠. 말벌은 사실 킬러비보다 무섭습니다. 얼마 전 저희 집에서 장수말벌 한 마리가 들어와서 제가 창문 틈에 가둬 놓고 살충제를 엄청 뿌렸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군대 시절 벌에 물려서 일주일동안 팔이 통통 부어 있던 기억이 있는 데 말벌에게 물리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테니까요.
저와 같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벌, 특히 말벌은 무서움의 대상일겁니다. 만약 말벌 떼가 우르르 몰려와 사람을 공격한다면 얼마나 공포를 느끼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영화의 소재는 몬스터 호러로서 꽤 괜찮은 재료입니다. B급 영화에서 떼로 등장하는 벌레에 의한 공격이 나오는 영화는 사실 상당히 많습니다. 외계생물체거나 벼룩이거나 혹은 바퀴벌레라든가 참으로 다양한 바리에이션을 가지고 있죠. <피라냐>의 경우도 벌레는 아니지만 물고기가 떼로 등장해 인간을 공격하죠. 떼로 등장하는 몬스터 영화는 B급으로 참으로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이는 히치콕이 <새(The Birds, 1963)>를 찍었을 때부터 그래왔죠. 특히 말벌 떼가 강력한 독을 지는 침으로 인간을 쏘아대는 소재라니요. 뻔해도 강력하죠.
영화 초반 말벌이 꿀벌을 사냥하는 장면의 이미지 몽타주는 꽤나 고급스러운 연출이고 이 영화를 찍은 신인감독에게 약간의 희망을 가지게 만들었습니다. 오래전 <스웜>이 사실 그리 좋은 영화는 아니었기에 볼만한 벌 영화가 나왔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러나 그것은 제 착각이었습니다. 이런 B급 영화에 매끈한 완성도 까지 바라는 것은 역시 과욕이었습니다. 생각보다 이른 시각에 등장한 말벌 떼의 습격 씬은 매우 실망스러웠습니다. 아무리 개연성이 적은 B급 영화라도 그 많은 말벌 떼중 단 한 마리도 주인공을 쏘지 않다니요. 영화 제목이 Stung(쏘다)인데 이건 너무하지 않나요. 아무리 예산이 적더라도 이건 좀 너무하다 싶더군요. 문을 활짝 열고 주인공 일행보고 얼른 건물 안에 들어오라고 숙모가 외치고 있는데 그 많은 말벌 떼중 단 한 마리도 집에 들어가지 않더군요. 이렇게 친절한 말벌 떼가 있을까요? 각본에 섬세함이 너무 떨어지는 느낌이 들더군요.
그러나 더 기가 막힌 것은 말벌이 사람에게 독을 주입한 것이 아니라 알이나 애벌레를 주입한 모양입니다. 영화가 대뜸 <에일리언>같이 되버린 것이죠. 게다가 거대화됩니다. 거대화는 좋습니다. 그건 필수적 클리셰니까요. 그런데 그걸 영화 초반부터 등장시킨데다가 심지어 설득력이 없습니다. 아니 말벌이 꿀벌에 기생시켜 번식하는 곤충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물며 인간에 침을 쏘니 그 안에 거대 말벌이 등장하다니요. 너무 설정을 막 쓰는 느낌입니다.
게다가 어디까지나 말벌은 집단으로 공격하는 사회성을 가진 동물입니다. 반면, 이 영화는 말벌이 거대화 되면서 거의 맨투맨으로 습격하고 주인공은 숨으며 피하는 호러가 되더군요. 곤충 특유의 특성을 전혀 무시한 전개가 되어버렸습니다. 같은 거대 곤충을 다룬 길예르모 델 토로의 <미믹(Mimic , 1997)>을 예로 보면 어둡고 습한 지하도라는 장소를 활용한 것이나 거대 곤충떼가 공격해오는 장면 등 인상적인 장면이 많았습니다. 그에 비해 이 영화의 거대 곤충은 수도 적고 훨씬 지능도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냥 인간을 꿰뚫고 나왔다는 시각적인 충격효과만 있을 뿐이죠.
영화는 고전적인 SFX 특수 촬영과 CG가 혼합된 방식인 것 같더군요. 전 CG로 떡칠한 것보다 SFX를 선호하기 때문에 괴물의 질감이나 연출에는 나름 흡족한 편입니다. 나름 노력이 보이더군요. 후반에 심심한 카메라 트래킹이나 지루해진 연출이 그나마도 못살렸지만요.
결말은 전형적인 호러 영화의 열린 결말입니다. 노골적으로 후속편을 염두해두었겠죠. 요즘 이렇게 끝나지 않는 영화 찾기가 오히려 힘들정도입니다. 그러나 ‘거대 말벌’을 또 등장시킬거라면 전 그냥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솔직히 전 거대 말벌 한두마리보다 꿀벌 떼가 더 무시무시하게 느껴지거든요,
한줄평 : 어째 영화 속 거대 말벌이 현실의 장수 말벌보다 덜 무섭다.
2.5/5
PS. 원작 소설이 있는 것 같더군요.
글고 저도 미믹 참 잼있게 봤습니다. 개인적으로 길예르모 델 토로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영화인데, 지금 봐도 몬스터 호러의 클리셰 사용이나 내용 전개가 참 매끄러운 영화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