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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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헤이트풀8 (The Hateful Eight, 2015): 수다를 떨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0) 2016/01/11 PM 09:09

쿠엔틴 타란티노라는 감독의 명성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만큼 유명한 감독이고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 이상은 들어본 이름입니다. 영화판에서의 그의 위치는 매우 독특합니다. 그는 블록버스터나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아닙니다. 작가주의로 분류되는 영화를 많이 만들죠. 그러나 웨스 앤더슨같이 아름답고 위트 있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며 가이 리치처럼 세련된 스타일의영화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데이비드 핀처같이 기교적인 감독이 아닙니다. 타란티노는 바로 저예산 B급 성향을 가진 장르 영화의 제왕 같은 감독입니다.

타린티노의 영화는 대부분의 영화가 오마주를 가득 담고 있습니다. 이는 감독이 영화광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이는 길예르모 델 토로와도 비슷한데 둘의 공통점은 그 오마주하는 대상이 B급이거나 B급의 성향이 짙은 경우가 많다는 것과 저패니메이션이나 홍콩영화같이 오리엔탈리즘의 대상격인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점은 델 토로는 작품의 연출의 기반이 호러에 기반을 둔다는 것이고 타란티노는 느와르나 B급 고어 액션에 기반을 두는 점이죠. 이런 면에서 타란티노는 로버트 로드리게즈와도 닮았습니다.

타란티노 감독의 친우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B급을 표방한 액션 스타일에 천재성을 지녔다면 타란티노는 장점은 수다스러움에 있습니다. <저수지의 개들>라는 영화가 등장했을 때 우리가 직면했던 충격 중 하나가 바로 그 수다스러움입니다. 영화가 서사나 내러티브보다는 캐릭터의 쉴 새 없는 수다로 이야기를 전개시킵니다. 심지어 스토리텔링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수다 그 자체에 집중하기도 하죠. 그러한 수다를 통해 캐릭터를 설명하고 수많은 설정과 복선, 수사를 남깁니다. 배우들의 대사에 흠뻑 취하다 보면 어느새 선혈에 낭자한 장면이 튀어나오고 영화는 파국에 치닫습니다. 이것이 타란티노 스타일입니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도 그러했지만 <헤이트풀 8>은 유난히 대사가 많습니다. 영화의 대부분이 주고받는 대화에 할애됩니다. 마치 말장난이 가득한 연극의 무대를 보는 것 같죠. 마차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마차 안에서 대화를 나누고 오두막에서 대화를 나눕니다. 이것이 영화의 9할입니다. 웨스 앤더스의 영화처럼 연극이나 소설의 장면같이 챕터를 나누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그들이 어떤 대화를 나누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 대화 속에서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일을 했으며 어떤 비밀이 있는 지까지 다 담겨 있습니다. 수많은 복선이 등장하고 수많은 재료가 영화적 설명 없이 맥거핀으로 사라집니다. 감독은 그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아요.

이런 불필요한 말장난 속에 뼈가 숨어 있는 것이 <저수지의 개들>을 연상케 합니다. 마치 감독이 자신의 영화를 오마주한 것 같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저수지의 개들>을 전작 <장고: 분노의 추적자>처럼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로 다시 만든 것 같습니다. 다만, 서부극의 기교적 인용이 많았던 전작과 달리 이번 작품은 미스터리를 첨가한 대신에 좀 더 타란티노다운 면이 보입니다. 비교적 화려했던 최근의 영화들의 배역과 달리 커트 러셀이라는 B급 영화의 최고 액션 스타를 캐스팅한 것이나 자신의 영화나 로버트 로드리게즈 영화의 단골 조연 배우들이 주요 배역을 한 점도 흥미롭습니다. 특히 세월이 느껴지는 커트 러셀은 매우 호연을 펼치고 있습니다.

영화는 상당히 애거시 크리스티의 소설과 닮아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노골적으로 오마주한 것이나 <오리엔탈 특급 살인>의 느낌도 납니다. 등장인물의 숨겨진 비밀을 기반으로 하는 미스터리 스릴러의 요소를 도입하는 것은 <저수지의 개들> 이후로 오랜만이죠. 누가 과연 범인일까 하는 지적인 두뇌싸움은 타란티노 영화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이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사무엘 잭슨이 연기하는 마커스 워렌은 마치 탐정처럼 범인을 추리해가며 그 전부터 수많은 복선을 통해 그의 역할을 짐작케 합니다. 물론 타란티노답게 조금씩 이야기를 비틀어 일반적 전개를 벗어나게 하지만요.

그답게 과하고 우스꽝스럽게 잔인합니다. 눈보라에 의해 벗어나지 못하는 오두막이라는 관습적인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밀폐된 오두막은 호러와 미스터리 스릴러의 성지와 같은 장소이죠. 이곳에서 벌어지는 스플래터 호러 장르의 느낌이 나는 고어 장면들은 영화 전반의 엄숙함이나 진지한 시대적 상황과 다르게 희화화되어 있습니다. B급에 대한 그의 찬사는 남북 전쟁 이후의 북부와 남부의 관계, 흑인과 백인의 대립과 같은 무거운 재료들이 주는 예민함을 덮어 주는 동시에 남모를 통쾌함을 가져다줍니다. 이런 극단성이 타란티노 영화가 관객의 호불호를 갈라지게 만드는 원인이지만 여전히 그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죠. 흑인 노예의 반란을 그린 전작과 마찬가지로 흑인을 비하하는 비속어가 넘쳐나고 남부인 캐릭터의 차별 발언은 노골적입니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자면 정말 타란티노답게 화해와 공생을 그려냅니다. 죽음 앞에는 모든 것이 평등한 법이죠.

단평: 지독한 수다쟁이들의 죽이는 농담.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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