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만큼이나 훌륭한 호러 영화가 나왔습니다. 이 영화는 장르적으로 상당히 알찹니다. 상당수 호러 오컬트의 마니아에게 만족스러운 영화가 되었을 겁니다. 저만해도 하우스 호러 영화를 보며 이렇게 만족해 본 적이 몇 년 안에 없습니다. 아, 재밌게도 마지막으로 만족했던 것이 <컨저링> 1편이겠네요.
전편은 <애나벨>을 언급하며 주인공 부부의 지난 사건으로 프롤로그(서막)를 열었죠. 이번 작도 같은 방식으로 프롤로그를 장식합니다. 시작과 함께 언급된 사건은 바로 영화 <아미타밀 호러>의 이야기입니다. 이 사건은 1979년에 제작되었고 이후 마이클 베이의 제작 아래 리메이크되기도 했죠. 사실 과거의 작품도 리메이크된 작품도 썩 좋지 않지만 구작의 경우는 호러 영화사에서 나름 커다란 상징성을 가지고 있죠. 70-80년대 생에게는 주말의 명화 납량특집에서 자주 봤을 영화고요. 사실 대다수의 관객은 잘 모르겠죠. 하지만 호러 마니아에게는 좋은 떡밥입니다. 제임스 완의 호러 영화가 비교적 질이 좋다보니 제임스 완 버전 <아미타빌 호러>를 기대하게 되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같은 워렌 부부의 사건이기도 하니까요. 이렇게 서브컬처를 이용하는 방식은 감독이 얼마나 장르에 대해 애정이 있는지 알수가 있는 예입니다.
이 영화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호러 장르의 영화적 장치의 클리셰(관습)를 매우 잘 가지고 놉니다. 탄복할 정도입니다. 제임스 완은 이제 존 카펜터나 클라이브 바크와 같은 호러 장인의 반열에 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전히 관객과의 밀당을 하죠. 나올 듯 말 듯 하면서 관객을 심쿵사하게 만드는 연출력은 박수가 절로 나옵니다. 다만 전작의 상징 같은 "박수" 시퀀스만큼 인상적인 장면은 적은 것 같습니다. 전작보다 관습에 기대는 느낌이 강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영화가 전작보다 나아 보이진 않습니다. 장르적 관습을 비트는 모습은 전작에서 보여줄 건 다 보여줬기 때문에 좀 더 기존의 호러 영화에 가까워지고 말았죠. 다만, 전작 이상으로 연출이 능숙하고 여유 있게 느껴집니다. 십자가나 텐트, TV, 의자 등을 활용하는 장면을 보면 능숙하게 느껴집니다. 피해자 여배우의 연기의 모습도 그렇고요.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섭다는 거짓 캐치프라이즈를 가지고 있었던 전작보다는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이게 재밌게도 꽤 효과적입니다. 단순히 공포를 일으켜서라는 이유보다는 장르적인 부분과 플롯, 그 자체에 충실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장르의 팬이라면 전작 못지않게 즐길 수 있습니다. 또한 전작이 하우스 호러에 더 중점을 주었다면 이번에는 엑소시즘 부분에 더 많이 할애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교묘히 기존의 엑소시즘 영화와는 조금 다른 면모도 있죠. 그 것은 영화에 부부애를 묘사하는 방식이 좀 더 가족영화나 로맨스 영화의 그것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고딕 호러의 느낌이 나죠. 우스갯소리로 <곡성>이 코미디 영화고 <데드풀>이 밸런타인 로맨스 영화라고 말한다면 <컨저링2>는 부부애를 다룬 가족 영화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영화 개봉이후 몇몇 평론가가 <고스트 버스터즈>를 언급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 자체가 엑소시즘, 즉 악령과의 싸움에서 벌어지는 서스펜스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이것이 매우 박진감 넘칩니다. <검은 사제들>이 엑소시즘 그 자체의 디테일에 집중했다면 이 영화는 서스펜스에 집중했더군요. 스릴러적인 편집의 차용은 꽤나 효과적입니다. 마치 액션 영화를 보는 듯합니다. 다만 <검은 사제들>보다는 훨씬 호러 영화의 원형에 가깝습니다. 전편과의 관계가 마치 <에일리언>과 <에일리언2>의 차이와 비슷합니다. 비슷한 소재임에도 방향성이 조금 다르게 풀어냈죠. 무엇보다 두 작품 모두 훌륭하죠. <컨저링>의 3편이 나온다고 한다면 다시금 제임스 완이 감독을 해야 합니다. 호러 영화의 속편이 잘 만들어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제임스 완은 이미 <인시디어스>와 <컨저링> 두 시리즈로 속편 징크스를 깼죠. 저는 이 시리즈가 <이블 데드>시리즈를 능가하는 시리즈가 되길 기원합니다. 기왕이면 시리즈에 흠을 낸 스핀오프 <애나벨> 시리즈에도 신경써주고요.
단평: 감독이 어린아이가 장난감 다루듯이 호러 장치를 자유분방하게 가지고 놀다.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