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2019 후기
1. 난 매년 록페를 가지만, 올해는 재정적으로 좋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며칠 앞두고 결재를 하게 된 이유가 있다. 첫째는 자주 내한했음에도 한 번도 못 가본 위저의 공연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개인 사정으로 미뤄두다가 밴드가 해체되어 다시 못 보게되는 건 오아시스로 족하다. 둘째는 올해 10월의 해체를 하는 피아의 마지막 여름 록페 공연이기 때문이다.
2. 피아를 알게 된 것은 2002년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방배동의 미술학원에 다니던 시절이다. 당시는 얼터너티브 메탈이나 뉴메탈이 유행하던 시기였다. 록이라면 다 좋아했지만, 혈기 넘치던 시절인 만큼 Korn이나 Limp Bizkit, Slipknot, Marylin Manson, Rammstein 등 시끄러운 음악을 즐겨 듣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마침 같은 대학의 입시를 준비하던 친구 하나가 나보다 헤비니스에 능통한 녀석이었다. 그는 여러 밴드를 소개해 주고는 했다. 그중에서도 그가 가져온 피아 1집은 나에게는 꽤 인상적이었다.
3. 그리고 그해 서태지가 처음 록 페스티벌을 기획한다. 내 생애 첫 록 페스티벌이다. 그리고 우연히 피아는 서태지의 픽업을 받아 넬과 함께 서태지의 ETP 록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다. 이후 피아와 넬은 록 페스티벌의 단골 밴드가 된다. 매년 록페를 가게 된 나는 그 어떤 밴드보다 피아의 공연을 많이 보게 된다.
4. 17년이 지났다. 피아는 이제 10월에 있는 가을 단독 공연을 마치고 해체를 하게 된다. 단독 공연까지 가는 것은 무리기 때문에 이번 여름 록페가 피아를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된 것이다.
5. 한때 프론트맨인 옥요한이 성대 결절을 겪은 후 공연이 예전 같지 않았던 적도 있다. 3집 이후로 점점 음악이 말랑말랑해지면서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들이 탑 밴드 이후로 제2의 전성기를 겪으면서 기뻤던 기억도 있다. 록 덕후의 홍대병은 어딜 안 간다. 그리고 이번 공연은 매우 좋았다. 1-2집 때의 강렬한 그로울링은 그 시절 그대로 돌아왔다. 한때 보기 힘들었던 여러 1집 수록곡을 다시 만난 것도 참 반가웠다. The Vamps라는 요즘 잘 나가는 해외 밴드를 놔두고도 피아를 서브 헤드로 세워준 펜타포트 주최 측도 고마웠다. 이젠 마지막일 '소용돌이'는 정말 좋았다. 이젠 다신 공연장에서 만나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록페의 마지막에서 함께해서 참 좋았다. 조금은 서글픈 마지막이었다. 물론 이어진 위저 공연 덕분에 짧은 감정이었지만....
6. Weezer 공연은 진짜 말 그대로 최고였다. 위저가 이렇게 라이브를 잘하는 줄은 몰랐다. 게다가 위저는 곡들이 미니멀하고 연주가 단순해서 실력파라고 생각한 적은 별로 없었다. 라이브에서 만난 위저는 연주가 깔끔하고 박자는 정확했고, 음정도 (발전기 트러블로 공연이 멈춘 이후 다시 시작한 '퍼펙트 시츄에이션'을 빼면) 완벽한 편이었다.
7. 무엇보다 'Weezer'라는 히트곡 제조기 '파워 팝' 밴드가 가진 위대함을 맛본 것은 셋 리스트였다. 단독 콘서트나 록페의 헤드라이너는 공연 시간이 한 시간을 넘는다. 이런 경우 5-6곡의 히트곡 외에 새 앨범의 신곡이나 기존 앨범에 수록곡도 같이 연주하기 마련이다. 라이트한 팬이나 히트곡 위주로 좋아하는 팬들은 지루하게 여기기도 하고 잠시 뒤쪽으로 가서 쉬어가는 타임이 되기도 한다. 위저는 그런 시간이 없다. 위저는 앨범도 다작이지만, 일단 히트곡 수가 어마하게 많다. 딱 잘라 말해 모든 셋리스트가 히트곡이다. 이렇게 쉴 타이밍없이 모든 노래가 신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8. 게다가 심지어 근래에 낸 'Teal' 컬러 앨범은 명곡들을 담은 리메이크 앨범이다. 그 앨범이 포함된 투어 였기 때문에 당연히 많은 팝 명곡들을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Africa'나 "Take on me", "Happy Together"같은 명곡을 록페에서 듣기는 힘들다. Toto나 A-ha, The Turtles가 재결합해 내한할 확률은 매우 낮으니까. Weezer의 Take on Me가 펼쳐지는 순간 관객의 반응은 정말 공연장의 최고 순간이었다. 거기에 더해 이젠 Weezer 내한의 명물이 된 김광석의 '먼지가 되어' 커버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정작 아쉬운 점은 가장 최근 앨범인 Black의 곡을 거의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실 난 신곡 듣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9. 역시 비가 오지 않으면 한국의 여름 록 페스티벌이 아니다. 특히 펜타포트와 비의 악연은 말할 것도 없다. 갑자기 쏟아진 비로 발전기 트러블로 사운드가 나갔고, Weezer는 황당해 어쩔 줄 몰라 했다. 하지만 관객도 펜타포트도 비로 인한 트러블에 익숙했다. 비랑 인연이 많은 주최 측은 재빠르게 우비를 나눠줬고, 관객들은 발전기가 고장 난 상황에서도 아무도 물병 하나 던지지 않고 자기들끼리 노래 부르고 놀면서(...) 밴드를 기다렸다. 그리고 이어진 공연은 끝까지 훌륭했다.
10. 물론 그 외에도 좋은 공연이 많았다. 기대만큼 공연해준 Two Door Cinema Club도 좋았다, 어쩌다 보니 처음 보게 된 브로콜리 너마저도 반가웠다. 록페의 왕 '크라잉넛'은 뭐 굳이 말하지 않아도 최고였다.
11. 하지만 역시 록페의 재미는 새로운 밴드를 접하는 데 있다. 쌈싸페에서 MOT을 처음 만날 때도 그랬고, 지금은 전 세계적인 밴드로 성장한 Twenty One Pilots를 안산 밸리에서 처음 접할 때도 그랬다. 코린 배일리 래의 노래도 지산에서 처음 들었었다. 이번에는 사실 잠시 쉴 생각으로 잔디에 앉아서 Sevdalia라는 트립 합 가수의 공연을 들었다. 그런데 이 여가수의 음악이 예사롭지 않았다. Massive Attack이나 Portishead의 음악을 즐겨 들었음에도 트립 합 공연은 처음이었는데 생각보다 엄청났다. 뛰어놀면서 들을만한 음악은 아니지만, 분명 들을 가치가 있는 공연이었다.
12. 작년과 올해의 송도 달빛 축제 공원의 시설은 참 좋았다. 지산 포레스트도 시설을 좋은 편지만, 쓸데없이 넓어서 사실 무대 이동 시마다 좀 지쳤는데 송도는 무대와 무대 사이가 가까워 덜 힘들었다. 무엇보다 '주차'가 매우 편하다는 점이다. 유료였던 작년만큼 가깝진 않았지만, 올해는 무료였고 충분히 걸을만했다. 어차피 지산보단 가까우니까. 지산 밸리 록이 부활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펜타포트로 가는 횟수가 많이질 것 같다.
알았으면 꼭가는건데 ㅠㅜ
비하니 처음열렸던 트라이포트페스티벌이 생각나는군요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