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는 일루미네이션의 애니메이션을 단 한 편도 본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회사 애니메이션의 특징은 사실 잘 모릅니다. 유튜브에서 미니언즈 영상 몇 개 본 게 다이죠.
픽사, 디즈니 보다 예산이 적지만, 꽤 상업적인 특성을 가진다는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대학 시절 전공이 만화/애니메이션이었는데 대표적인 애니메이션 회사의 작품을 하나도 안 봤다는 게
스스로 좀 한심하긴 하더라고요. 슈퍼 마리오 덕분에 드디어 첨으로 이 회사의 애니메이션을 보게 되었습니다.
2. 엄청난 예산과 렌더링 퀄리티를 자랑하는 디즈니, 픽사 애니에 비해 좀 더 만화적인 땟갈이 나름 맘에 들더군요.
디즈니와 픽사는 업계 탑이고 지나치게 퀄이 높다보니 사실적인 질감이나 조명이 많고 특히 디즈니는 물량으로
승부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반면 예산이 적으면 좀 더 영화적 기술, 즉 애니메이션의 본질에 집중하는 면이 있습니다. 이 장편 애니메이션은
닌텐도 원작 게임의 시각적인 면을 그대로 살리는 방향으로 콘셉트를 잡았고 상당히 성공적입니다.
3. 다시 말해 그냥 3D 슈퍼마리오의 세상을 완벽하게 재현해냈습니다. 모션이나 온 몸을 사용하는 표정과 연기와 같은
애니메이팅도 상당한 수준이더라고요. 이게 실사 영화로 치면 배우의 연기에 해당하는 건데 디즈니와 픽사는
이 분야에 거의 교본 수준이죠.
픽사, 디즈니가 탑인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애니메이션의 본질적인 부분. 즉 캐릭터에 생명감을 불어넣는 부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점인데, 이 작품은 동급까진 아니더라도 그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보입니다.
4. 애니메이션의 기술적인 부분과 달리 "필름(영화)" 메이킹으로서는 다소 실망적입니다.
캐릭터들 자체가 철저히 리얼리즘이 아닌 만화적 접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캐릭터들의 행동이나 서사가
다소 틀에 박혀있습니다. 대사와 행동, 서사 모두 쉽게 썼고 쉽게 연출합니다. 피치의 캐릭터를 납치되는
민폐캐에서 능동적인 여성으로 바꾼 것도 그렇게 신선하게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그런 식의 재해석 자체가
이미 수십년 된 방식이고 그 자체가 클리셰거든요. 그냥 시대가 더는 납치되는 공주 캐릭터를 원하지 않으니까
그냥 쉽게 바꾼 느낌이었어요. 오히려 사이드킥 자리를 내준 루이지만 손해본 느낌이죠.
5. 닌텐도 IP를 활용한 시퀀스들이 줄줄이 나오는데 역시 서사적으로 실망스럽습니다. 디즈니 어트렉션을 활용한
디즈니 실사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어요. 시각적인 만족감을 주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전 무의미한 롤러코스터를 본
느낌이었습니다. 액션에서도 서사라는 게 있어야 하는데 전반적으로 그냥 원작의 재료들을 그냥 저냥 배치해서
진행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정도로 뻔할지 모르겠어요. 보는 내내 지루하더군요. 그냥 게임 방송을 보는 것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더라고요.
물론 영화니까 카메라 트래킹이나 동선은 시원시원스럽지만, 편집이라는게 결국 호흡 조절인데 그냥 달리기만
하는 것도 별로였습니다. 픽사가 왜 훌륭한 작품 위주로 만들어내는지 다시금 깨닫게 되더라고요.
6. 그래도 팬들을 만족하니까 좋은 영화 아니냐 라고 묻는다면 제 고개는 갸우뚱거려집니다.
나는 마리오와 닌텐도 팬이 아닌가? 전 게임보이도 있었고 닌텐도 DS, DSLITE, 3DS, WII, 스위치 전부 샀었고
심지어 생전 처음 플레이해본 게임이 마리오입니다. 마리오 3도 지겹게 했고 뉴 슈마 시리즈도 재밌게 했고
슈퍼 마리오 갤럭시는 인생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딧세이도 당연히 재밌게 깼죠.
당장 제 작업실 책장에는 마리오 피규어가 5개, 요시와 피치도 하나씩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40년 좀 안되는 인생으로 마리오와 함께 자란 세대인데 전 작품 자체가 좀 고민없이 만들어진 느낌이
들었어요. 그건 제가 시네필이고 픽사와 지브리의 열렬한 지지자라서 애니메이션 영화의 기준이 높아서
그런건진 몰라도 상당히 실망스러웠습니다.
보고나서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충분히 더 잘 만들 수 있었을 겁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은 느낌이 들더군요.
7. 완성도 측면에서 슈퍼 소닉 1편보다는 나은 수준으로 느껴졌습니다. 기존의 악몽 같던 게임 영상화에 비하면 이정도면
준수한 건 아니냐는 의견에는 동의합니다. 적어도 원작 이상으로 시작적 쾌감은 제공해주니까요.
8. 잭 블랙을 기용한 건 굿 캐스팅이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를 데려온 것 치고 인상적인 장면이 피아노 치는 장면 밖에 없더군요.
이건 배우의 잘못이라기 보다 각본의 문제라고 느껴졌어요. 캐릭터가 그냥 대충 그런 캐릭터들이 할만한 대사를
지극히 뻔하게 말하는 게 다니까 뭘 할 게 없죠. 문제는 이게 모든 캐릭터들이 다 그래요.
디즈니의 주토피아나 픽사의 소울처럼 감탄하게 만드는 각본을 바랐던 건 아니지만, 적어도 역대급 IP를 가져왔으면
그에 맞는 고민을 보여줬으면 어땠을까요.
9. 불만이 많아서 이래저래 떠들었지만, 흔히 말하는 망작이나 졸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정도면 괜찮은 영화죠.
꼭 모든 영화가 걸작, 수작이라 불릴 필요는 없죠. 텐트폴 작품은 흥행 성적이 가장 중요하고 그 목적은 준수하게 이루어냈습니다.
사실 대다수의 영화는 수작 망작이 아니고 평범한 영화들입니다. 요즘 극단적인 사회 분위기나 더 극단적으로 가야 팔리는
유튜버들 때문에 평이 극단으로 갈리는 경향이 점점 심해지는데 사실 세상은 회색지대가 가장 많고 마리오는 딱 중간에서
약간 나은 정도의 영화라고 봅니다. 후속작이 나온다면 이제 좀 더 질 좋은 각본과 내러티브로 돌아왔으면 좋겠네요.
사실 슈퍼 소닉1도 실망스러운 영화였지만, 슈퍼 소닉2는 훨씬 나은 영화로 돌아왔거든요.
씽1,2편 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