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가 개인 사정으로 어제 3-4시간 밖에 잠을 자지 못해서 상당히 피곤한 몸으로 극장에 들어갔습니다.
초반 1시간은 너무 졸리더라고요. 영화가 생각보다 1막이 길고, 봉준호 치고는 중반까지 톤이 차분하고
담백한 편입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봉준호 치고)
이 양반 영화에서 완성도를 논하는 건 의미가 없죠. 비교 대상이란 게 없는 유일무이한 스타일인지라....
결국 자기 영화와의 싸움인데 살인의 추억이나 기생충보다는 설국열차나 옥자에 가까운 톤이긴 합니다.
다만 좀 더 풍자적이에요. 연기나 캐릭터도 기생충과 달리 다소 연극적이라고요.
전반부는 한국에서는 재미있게 여기지 않거나 다수 취향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재미와 취향은 개인적인 영역인데 영화 초중반은 좀 더 시네필스러워요.
2. 언제나 그렇든 전개를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중반 넘어서 부터 뭔가 사건들이 터지기 시작하면 봉준호 월드답게 흥미진진해집니다.
그런데 뭔가 웃프고 처연하고 우스꽝스럽게 기이하고. 진짜 봉준호는 봉준호에요. 비교 대상이 없어요.
박찬욱이나 팀버튼, 델 토로처럼 아름답게 기이하거나, 피터잭슨이나 샘 레이미, 제임스 건처럼 B급 하거나
그런 게 아니라 뭔가 강아지 꼬순내가 난다니까요.
3. 사실 이야기의 플롯이나 내용 전반은 새로운 건 없습니다. 제가 원작 소설을 안 읽어봐서
뭐가 어떻게 바뀌었는 지는 모르겠지만,
던칸 존스의 <더 문>, 드뇌 빌뢰브의 <컨택트(Arrival)>,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 지브리의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등 다양한 영화들이 떠오르더라고요. 사실 많은 영화들이 이미 다룬 이야기들을 조합한 느낌이 들어요.
근데 '스타일'이 너무나도 다른 거죠. 기상천외하면서도 평범한 인간이 실제 일상의 찌질함이 담긴듯한
결국 봉준호 장르 그 자체에요.
4. 설국열차와 옥자랑 많이 비교하겠지만, 사실 두 영화와도 조금 톤이 다릅니다.
설국 열차는 사실 사회 혁명에 관한 우화고, 옥자는 채식주의를 다룬 봉준호판 지브리라면
<미키17>는 좀 더 보편적인 휴머니즘, 인간 찬가에 가깝습니다. 엔딩이 기존의 씁쓸했던 봉준호 영화와는 많이 다르더라고요.
5. 배우들이 진짜 신나서 연기한 느낌이 들어요.
로버트 패틴슨은 진짜 한 영화에서 송강호가 됐다가 배트맨이 됐다가 합니다.
연기톤이 우리나라처럼 리얼한 계열은 아니라서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겠습니다.
6. 봉준호는 신기가 있는게 분명한게 2022년에 촬영이 끝난 작품인데 실제 벌어진 정치적인 사건들과
흡사한 장면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방송쟁이 출신 미국 대통령이 당연히 연상되는 데
그 대통령이 작년에 겪은 어떤 사건과 똑같은 장면도 있어서.... 뭐야 무서워.
독재자를 꿈꾸고 특정 종교와 함께하는 용산의 어떤 부부의 모습과도 너무 흡사합니다.
열심히 계몽도 하시고요.
게다가 이민 문제로 시끄러운 미국인들이 보면 보고 제발 저릴 내용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미국에서는 상당히 불편한 영화가 될 거에요. 이건 봉 감독이 미국인이 아니라 가능한 거죠.
7. 쉬운 영화입니다. 굳이 따지자면 <괴물>과 <옥자>를 합치고 반으로 나눈 것 같아요.
솔직히 흥행은 모르겠습니다. 이게 저는 후반부가 참 재밌었는데 저도 좀 많이 시네필이고
컬트 애호가라서 제가 재밌는게 다수의 대중에게도 재밌을 지는 모르겠어요.
다만, <설국열차>나 <기생충>에게 있었던 비판, 가르치려 든다. 그런 메시지가 강한 느낌은 아닙니다.
오히려 반미 영화라고 하면 그건 뭐 아니라고는 할 수 없을 지도요. (아닙니다)
<기생충>, <마더>, <살인의 추억>과 같은 수준이라고는 그 누구도 여기지 않을 거고,
좀 더 대중적인 <설국열차>나 <괴물> 정도의 영화인것 같습니다.
이 영화에 가장 열광할 사람들은 필름 메이커들일 거 같아요. 세상에 이런 식으로 SF영화를 만들 수 있다니?
한 줄 평 - 봉준호라는 장르로 볶아낸 처연하고 웃픈, 소시민의 잡탕 SF. 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