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여친을 사귄건 군 제대후 대학생 2학년때였는데, 혼자 쓸쓸히 와우만 해대던 주변 선배나 친구들이 안쓰럽게 생각해서 소개팅을 주선해줬던 결과물이었다. 루리웹을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한 거겠지만 난 게임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콘솔과 PC 가리지 않고 장르도 가리지 않고 왠만하면 한번씩은 다 하는편인데 안타깝게도 내 주위에는 게임을 좋아하는 친구나 선배 또는 후배가 없었다.
그런 이유에선지 주변사람들은 게임하는사람을 자꾸 나무란다. 겜좀 그만하라고. 사실 많이했던 시절이긴한데 게임을 하느니 밖에 나가서 사람을 만나라고 핀잔주기 일쑤였다. 게임 그게 재밌냐고. 그래서 소개팅을 주선해주던 사람들이 하는얘기가 소개팅 나가면 겜얘기는 절대로 하지말라고 신신당부를 했고, 첫여친 사귀기 전까지는 나도 모르게 겜얘기를 했던거 같다.
나는 공대 출신이었고 기계를 좋아하며 컴퓨터도 좋아하기때문에, 이런저런 잡다한 지식이 있는편이다. 물론 그게 깊은건 아니지만 같은과에 있던 또래에서는 제법 깊은축이었나보다. 그래서 친구들이나 선배들이 컴퓨터 조립, 포토샵이나 영상편집이라던가 그런걸 할때면 나에게 도움을 많이 요청했다. 그리고 나도 그걸 꽤나 즐겼다.(지금생각해보면 얼마나 호구짓인지 라는 생각이 든다)
첫 여친을 사귈때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과에서 제법 친한친구 A가 있었는데 그녀석이 입담이 좋은편이라 주변에 여자가 많았고 여친도 있었다. 당시에 A의 여친은 어떤 회사에입사지원을 하고 있었는데 무슨 포스터 형식으로 만들고 싶다고 해서 내가 도와주게 된것이다. 약속장소인 컴퓨터실에 가보니 A와 그의 여친 그리고 분홍색의 모자가 인상적인 첨보는 여자사람이 있었다. 당시에 A와 그의 여친은 자주 보던터라 완전 후리하게 입고 나갔었는데 아마 내 생각인데 보기 좋은 차림은 아니었던거 같다.
나는 내향적이고 소심한성격이라 낯을 많이 가리는데 당연히 첨보는 여자사람은 나에게 꽤나 부담이었다. 그래서 포스터 작업하고있는데 옆에 앉아있던 여자사람을 가급적 쳐다보지 않았다. 내 생각에는 아예 그쪽은 쳐다도 안봤던거 같다. 친구놈은 여친과 뒤에서 인터넷 하고있고 나는 부담감을 가지면서 포스터 작업하고있는데 그때 그런생각이 들었다. 나 지금 뭐하니?
여차저차해서 포스터가 완성되었고 A의여친도 꽤나 마음에 들어했던거 같다. 그리고 A의 여친이 저녁 사준대서 넷이 저녁을 먹으러 갔다. 대충 자리를 잡고 밥을 먹으려고 주문을 할때 A와 그의 여친은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 자리를 떠났다. 그래서 나와 그 여자사람만 남게됐는데 너무나 어색했다. 말 주고받은거라고는 처음에 인사한거 말고는 딱히 생각 나지도 않았고 그냥 밥 언제나오나만 기다리고 있었다. 근데 여자사람은 뭔가 할말이 있는 눈치였다. 그래서 그래 소개팅이라고 생각하고 말문을 터주자 나도 갑갑한데 저사람은 얼마나 갑갑하겠어? 라는 책임감 비스무리한거를 가지고 말문을 열고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호구조사부터 시작해서 취미 뭐 그런 기타등등 잡다한얘기 손금봐준다는 얘기 지금 생각하면 손발이 다 오그라들지만 생각외로 편했나보다. 그런 와중에 그 여자가 물었다.
왜 포스터 작업을 도와주느냐고 좋아서 하는건지? 당시에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안나는데 그냥 새로운 기술이나 지식을 얻는게 좋아서라고 대답했던거 같다. 여튼 그런저런 얘기들을 하고 밥을먹고 헤어졌다.
집에 가는길에 친구에게 전화했다 무슨급한일이길래 나랑 그 여자사람 무안하게 떼놓고 갔냐고.
"어 그거 너 소개팅시켜준거야 ㅋㅋ"
난 한동한 멍하니 버스에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