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황금연휴를 맞아 고향으로 내려왔지만 올라갈 때가 되면 항상 내려온 것을 후회하곤 한다. 특히 지금처럼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가 다 매진이 된 상태에서는 더더욱!
보통 시외버스를 이용해서 서울을 왕래하지만 저렴하고 배차가 짧은 버스는 항상 인기가 많았고 오늘같은 황금연휴에는 어김없이 매진사태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고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한다. 보통 시외버스가 만천원 정도에 서울을 간다면 고속버스는 그의 1.5배정도 되는 금액을 지불해야만 탑승할 수가 있다. 우등이라는 말로 포장하지만 내 생각에는 상술일 뿐이다.
고속버스로 발길을 돌려 걷고 있으니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이 보였다.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티켓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바로 옆에 있던 고속버스 터미널로 뛰는 것이다. 나도 할 수 없이 뛸 수밖에 없었는데 황금휴일을 하루 남기고 서울을 올라가야 서울에서 하루를 편히 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힐을 신었음에도 불구하고 뜀박질을 하고 있다.
“아 발아프다.”
얼마 뛰지도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나온다. 다행히 아직 행운이 함께하는지 겨우겨우 서울행 티켓을 구할 수 있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창가쪽을 원했지만 복도쪽밖에 자리가 없었던 것. 버스가 이리 만석이라면 서울 올라가는 길도 거북이 행진이 틀림없기에 화장실로 향했다. 이맘때면 항상 느끼는 거지만 사람이 몰릴 때의 여자 화장실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남성과 여성의 특수한 차이 때문인지 사이클이 남다른 남성과 비교해서 여성 화장실은 항상 만원. 어쩔 수 없이 줄을 서곤 있지만 이럴 때는 남자로 태어났으면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버스시간이 다 되어서 버스에 올랐는데 내 지정석 옆자리로 보이는 곳에 3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앉아있었다. 아마 저 사람이 얼마가 걸릴지 모르는 서울행을 함께 해야 하는 사람일테지. 이왕이면 다홍지마라고 꽃미남까지는 아니더라도 준수한 사람이 옆자리였으면 좋겠는데 옆사람은 그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꽝이다. 머리를 감은지도 의심스러운 곱슬머리하며 면도는 했지만 대충했는지 옆에 삐쭉삐쭉 솟아있는 턱수염이며 약간 늘어진 듯한 반팔티 사이에 보이는 가슴에 난 털이 불쾌하다. 그리고 백팩을 가슴에 끌어안고 있었는데 그 정도 큰 짐이라면 천장에 올려놓을 것이지 그걸 들고있는건 뭐람?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맘에 안들어.
버스가 출발했지만 전주 시내를 벗어나기도 전에 막혔다. 보통이라면 서울까지 3시간이면 갈 테지만 이런 상황이면 얼마가 걸릴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버스가 사거리를 지나는 순간 옆에 앉아있던 털복숭이(생긴게 맘에 안들어!)는 가방에서 뭔가 주섬주섬 꺼내고 있었다. 회색의 후트집업이었는데 그걸 꺼내더니 창문에 연결되어 있는 쇠막대기 사이에 묶더니 펑퍼짐하게 펴는 것이다. 저걸 베고 자려고 그러나?
“후아암”
살짝 불쾌하게 하품을 크게 한번 하더니 자리를 잡듯 후드집업에 머리를 비비적댄다. 그러더니 잠이 들었는지 이내 잠잠해졌다. 사실 털복숭이처럼 잠드는 게 현명할지도 몰라. 슬쩍 보니 백팩은 등산용인 것 마냥 이것저것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약간 색이 바랜듯한 우산부터 가방끈에 달려있는 손전등까지 자세히 보니 나침판도 걸려있다. 복장은 그냥 청바지에 반팔티인데 이런걸 들고 다니는 거 보니 등산 애호가거나 밀리터리 오타쿠겠지? 사실 나도 바쁜 일정(고향 및 친척방문등)을 마쳤더니 피곤함에 취했지만 자리가 애매해서 쉽게 잠들지 못했다. 괜히 문자도 오지않는 핸드폰을 만지작대며 시간을 때우다가 자기위해 슬쩍 좌석에 등을 기대본다.
가벼운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한 시간 30분가량 시간이 흐른 상태였고 옆의 털복숭이는 아직도 편안한 자세를 취하며 잠을 자고 있었다. 예상대로 길은 많이 막히고 있었고 조만간 휴게소에 들릴 거라는 버스기사의 안내방송이 울려 퍼진다. 방송을 들었는지 털복숭이는 부스스 일어났는데 꼴이 말이 아니다. 침을 흘렸는지 손등으로 입가를 훔치는것도 그렇고 옆으로 기대어 있었던 탓에 왼쪽 머리가 눌려있었고 안경도 벗어둔 탓에 헛손질을 하는 게 영 광대 같다. 그는 간신히 안경을 쓰고 핸드폰으로 현재위치를 확인하더니 실망하는 표정을 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는 죽암휴게소에 들어섰고 나는 다시 화장실을 가기위해 전쟁을 치러야 했다. 배가 출출해서 차에 오르기 전에 평소에 즐겨먹던 감자칩을 한봉지 사서 버스에 올랐다. 자리에 돌아올 때까지 털복숭이는 자리에 없었고 그도 나처럼 배를 채우려고 돌아다니는 거겠지? 잠시후에 털복숭이가 돌아왔는데 예상외로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가 자리에 앉으려면 어쩔 수 없이 내가 자리를 비켜줘야 했는데 그는 비켜달라는 말도 하지 않고 물끄럼이 바라만 보고 있다.
‘어휴 답답해! 말을 하라고 말을!’
당연히 속으로 외치며 그냥 눈치껏 자리를 비켜줬다. 버스는 이내 출발하였고 그는 이번엔 자려고 하지 않고 버스 전방에 자리하고 있는 TV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털복숭이도 뭔가 사와서 먹고있으면 나도 과자를 꺼내서 자연스레 먹을 수 있는데 그는 아무것도 사오지 않아 과자 까먹기가 약간 눈치가 보였다. 하지만 내가 내돈주고 사먹는다는데 누가 뭐라고 할까 생각하며 그냥 당당히 과자를 까먹었다. 버스가 서울에 다가갈수록 점차 속도는 느려졌는데 배도 부르고 단조로운 지루함에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내가 눈을 뜬 건 버스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았는지 앞으로 쏠려지는 몸을 추스르려고 할 때였다. 흐릿한 정신을 애써 가다듬으며 주위를 둘러봤는데 나도 모르게 털복숭이의 어깨에 기대로 있었는지 왼쪽 볼에 온기가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차오르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이고 그를 힐끔 쳐다봤는데 그의 표정이 사뭇 심각해보였다. 순간 앞으로 기우뚱하는 것을 느끼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갑자기 털복숭이가 몸을 내 쪽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이봐요! 무슨짓이에요!”
나의 작은 외침은 소란스러운 주변에 뭍혔고 내가 의아함을 느끼고 두리번거렸을때 털복숭이가 잽싸게 내 엉덩이에 깔려있는 안전벨트를 집더니 재빠르게 체결했다. 내가 어리둥절 하는 사이 앞으로 쏠림이 더 심해졌고 나도 그제야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간다는 걸 느꼈다. 털복숭이는 창가에 묶여있던 후드집업을 풀더니 재빠르게 둥글게 말아 내 머리앞에 놓고는 고개를 숙이라고 했다. 내가 뭐라고 말하는 순간 그가 내 머리를 잡고 힘으로 찍어 눌렀고 그 직후에 머리위로 뭔가가 포개지는걸 느꼈다. 그리고 귀에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몸에 힘을 빼세요. 힘주고 있으면 크게 다칠지도 모릅니다.”
어처구니가 없어 뭐라 하려고 할 때 자이로드롭에서나 느낄법한 중력을 몸으로 느끼며 의식을 잃었다.
오른쪽 어깨가 너무 아팠다. 소리를 내고 싶었는데 어떻게 소리를 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고통에 몸부림 칠 때 그제야 머리위에 포개졌던 털복숭이가 생각났다. 그도 의식을 차린 건지 머리 위를 짓누르던 갑갑함이 사라졌다. 고개를 들고 아까부터 너무 아파오던 오른쪽 어깨에 손을 가져가려고했는데 누군가의 손길이 내 손을 붙잡았다. 아마 털복숭이겠지. 손을 붙잡힌 채 주변을 둘러보려는데 분명 눈을 떴는데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왜 아무것도 안보이지? 손에 느껴지던 압박이 풀리고 잠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난후 엄청난 밝기가 내 옆자리에서 뿜어져 나왔다. 아마 백팩에 메여있던 손전등을 사용한 것이리라. 너무 밝은 광원에 내가 눈을 찌푸렸을 때 그가 손전등을 잠시 만지더니 광량이 조금씩 어두워 졌다. 눈이 주변 사물에 익숙해질 무렵 그가 손전등을 입에 물고 다시 가방을 뒤적이더니 하얀 셔츠를 꺼냈다. 그러더니 셔츠를 찢어서 내 어깨를 가리킨다. 그제야 그가 내 어깨에 덧대려고 함을 알았고 나는 허리를 틀어 통증이 느껴지는 오른쪽 어깨를 내밀었다. 그가 어깨에 손댔을 때 너무 아파서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겨우 참고 있었다. 그제야 다른 승객들도 정신을 차린 모양인지 분주해 졌다.
“지금 무슨 일이에요?”
나의 상황설명을 요구하는 물음에 그가 잠시 목소리를 낮춰서 짧게 대답한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버스가 미끄러져서 도로 아래로 추락했습니다. 얼마나 내려왔는지는 모르겠는데 차량소리가 안 들리는걸 보니 꽤나 깊이 내려왔겠지요.”
그제야 나는 중력이 아래가 아닌 오른쪽에서부터 느껴졌음을 깨달았다. 아마 오른쪽으로 전복 됐나보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안전벨트를 풀려고 하니 그가 손을 들어 제지하며 고개를 저었다. 버스 안은 이미 다른 승객들의 고통소리와 비명으로 채워졌고 울음소리마저 더해지더니 이제는 옆에서 무슨 말을 해도 들리지 않을 정도가 됐다.
털복숭이는 상체를 살짝 일으키더니 백팩을 등에 메고 두 다리를 앞뒤로 벌려서 좌석에 몸을 고정시키더니 내 무릅위에 놓여있던 후드집업을 집었다. 그리고는 오른손에 둘둘 말더니 손전등을 오른손에 쥔 채 나에게 고개를 돌리고 유리에 다치지 않게 웅크리라고 했다. 내가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려했는데 그는 들을 채도 않하더니 오른손으로 버스 유리를 두들겼다. 그도 유리가 살짝 두려운 듯 처음에는 힘을 주지 못했지만 생각보다 유리가 단단함을 느꼇는지 입술을 깨물고 크게 휘둘렀다. 다행히 유리파편은 나와 털복숭이를 지나 반대편 창 쪽으로 떨어져내렸고 아까부터 조용하던 그쪽은 유리파편이 떨어졌음에도 조용했다. 털복숭이는 오른손에 말린 후드집업을 풀더니 파편이 남아있는 창들에 세차게 휘둘러 남아있는 파편을 제거 했다. 그는 이내 안전벨트를 풀더니 창문바깥으로 몸을 날렸다. 잠시 뒤에 나도 구해주겠거니 하며 통증을 참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는 보이지 않았다.
“저기요! 나도 구해줘야지! 이렇게 버릴 거면 왜 어깨를 치료해준거야!”
버려졌다는 서러움과 이대로는 죽을 수도 있겠다는 불안함이 마음을 잠식해왔고 그제야 눈물이 터져 나왔다. 한참을 훌쩍이며 그 자식을 저주하고 있었는데 아까 느꼈던 빛이 내게 쏟아졌다. 아 왔구나. 버려진 게 아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