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李 鍝, 1912년 11월 15일 ~ 1945년 8월 7일)는 조선 황실 황족이다.
의친왕의 둘째 아들.[1] 유약한 성격이었고 일제에 순종적이었던 형 이건과 달리[2], 이우는 일제에 반항적이었고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웠기 때문에 의친왕은 그를 총애했다. 일제는 이런 그를 두고 "호랑이 같은 조선 황족의 핵심"이라고까지 칭했다고 한다.
이후 일제가 그를 일본의 황족과 결혼시키려 하자, 아버지 의친왕의 뜻에 따라 박영효의 서녀인 박찬주와 결혼한다.[3] 박찬주와의 사이에서 아들 이청을 두었다.
그당시 모든 대한제국의 황족들이 그랬듯이 일본 육군 학교를 졸업하고 장교가 되었다. 태평양 전쟁당시 중국 산서성 태원에서 근무하며 독립군에게 정보를 넘기는 등 독립 운동에 관여하기 시작하였으나 이런 낌새를 눈치 챈 일제에 의해 일본 본토로 소환되었다. 히로시마에 머물던 중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사망하였다.[4]
(1945년 8월 9일자, 매일신보에 이우 사망 소식이 1면에 보도되었다.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