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1년 7월 덴마크 국왕 발데마르 4세는 한자동맹이 장악한 발트해의 해상무역을 차지하기 위해 고틀란드 섬의 상업도시 비스뷔를 침공했다.
고틀란드에 상륙한 덴마크군과 독일용병들은 비스뷔 민병대와 전투를 벌였고,
전쟁으로 단련된 정예병들 앞에 2천여명의 민병대는 전멸했다.
전투에서 패배한 비스뷔 시는 곧바로 덴마크에 항복하고 주민들의 재산을 바쳐서 약탈과 파괴를 면했다.
전투가 끝나면 전사한 시체에선 갑옷을 약탈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당시 북유럽엔 흑사병이 창궐했고, 한여름의 무더위로 인해 2천여구의 민병대 시신들은 갑옷을 입은 채로 서둘러 매장됐다.
20세기 초, 비스뷔 민병대의 무덤이 발굴되었고 현재는 고틀란드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비스뷔 민병대의 무덤은 중세시대의 전투 양상을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14세기 유럽의 갑옷은 사슬갑옷에서 판금갑옷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갑옷(트랜지셔널 아머)의 시대였지만,
비스뷔 전투 유적에서 발굴된 민병대원들의 갑옷은 그보다 수세기 전에 쓰였던 바이킹 시절 찰갑이 대부분이었다.
비스뷔 민병대 무덤에서 발굴된 수많은 유골들의 상처를 분석한 결과,
대부분의 전사자들은 갑옷과 투구로 보호된 머리와 몸통이 아니라 갑옷 밖으로 노출된 팔과 다리를 베어서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저런 고대유물 같은 갑옷만 걸쳐도 칼날을 막아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