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틀어 놓고 멍하니 세 번이나 반복될 때까지 보고 있었다.
재밌었냐고 물어본다면, 재미있게 봤던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반복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에 전혀 신경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서너 평 남짓한 공간에 자신을 가둬 놓고 사람 냄새로부터 격리한다는 것은
육체적으로는 가장 쉽지만 정신적으로는 그렇게 쉬운 일이 못된다.
3주째 머리의 묵직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마치 두통 직전의 상태와 같은 이 묵직함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면 가라앉지만,
그것도 한 순간의 처방에 불과하다.
오늘은 혼자서라도 술 한잔 기울여야겠다.
이럴 때마다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맛있게 먹던 탄산 음료보다 술을 찾게 될 때마다.
어릴 때는 술이 기분을 풀어준다는 말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더 맛있는 쪽이 기분을 좋게 해줄 거라는 생각은 지금도 틀리지 않았지만,
어쩌면 그 맛 뒤편에 있는 씁쓸함과, 취할 때에 오는 몸의 무게감의 부재가 부르는
잠시간의 해방감에 가식적으로나마 자신을 맡겨서, 억지로라도 고통을 회피하여 비록
일시적이지만 자신을 가짜로라도 위로할 수 있기 때문에 술을 찾는 것이 아닌가 싶다.
슬퍼할 기운조차 빼 버리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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