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이글은 "한국형 힙합’, 눈물겨운 양해와 포용 그리고 정신승리"(http://board.rhythmer.net/src/go.php?n=11965&m=view&s=feature) ‘한국형 힙합’ 유감, 옳고 그름이 아닌 맞고 틀리고의 문제"(http://board.rhythmer.net/src/go.php?n=10665&m=view&s=feature&c=22) 같은 리드머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된 소위 한국형 힙합에 대한 비난글에 대한 반박 혹은 문제제기라고 할 수 있다.
이글에는 개인적인 연구가 포함되어 있고 내가 음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며 사실 그렇게 헤비리스너도 아니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해 두었으면 한다.(그리고 글재주도 없다...죄송)
@발라드 랩에 관하여
*발라드란 무엇인가.
발라드의 사전적 정의는 음유시인들이 부르는 서정시다. 하지만 한국에서 발라드는 굉장히 모호한 장르적 특성을 보여 주며 연구자들의 의견도 각기 상이하다. 이지리스닝의 전통에서 포크가 더해지고 언더그라운락의 인재들이 수혈되면서 이루어졌다는 연구자도 있고(이명미, 한국 대중가요사) 트로트가 느려지면서 서구의 스탠더드 팝의 영향이 더해져 이루어 졌다는 의견도 있다(임진모) 어찌 보면 한국에 발라드가 의미하는 바는 음악장르의 특성이 아니라 느리면서도 서정적인, 정서적인 의미로 쓰이는 형태가 많다고 할 수 있다.
한국 발라드의 특질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모호함 속에서 발라드는 유재하와 이형훈을 위시한 천재들의 등장 이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큰 발전을 했고 아직까지 한국 대중음악계에 큰 헤게모니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음악적 풍부함과 대중에 대한 호소력은 아직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발라드 랩-발라드를 통한 랩의 이해-
하나를 새로운 무언가를 이해하려고 할 때 기존의 비슷한 무언가를 통해 이해하는 것은 사회문화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손실회피에 기반을 둔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힙합과 랩이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기성 뮤지션들도 이러한 메커니즘을 통해 랩을 이해하려 했다.
발라드 랩도 이러한 시도 중의 하나이다. 당시 가요계의 헤게모니의 주축 이였던 발라드 계열의 창작자들은 랩을 자신들에게 익숙한 작법을 통해 적용하고 이해하고 실험했다.
랩의 배치에는 기존 곡의 벌스 브릿지 후렴의 배치를 이용하고 나레이션의 쓰임을 랩으로 대체해 보는 등의 실험은 지금 보면 유치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초창기의 실험치고는 꽤 괜찮은 상업적인 성과를 보였다.
이 같은 현상은 딱히 상업적은 목적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어쩔 수가 없었다고 보는 편이 맞다. 당시는 힙합을 권위 있게 해석해줄 사람이 국내엔 아무도 없을 때다(솔직히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보지만...) 즉 과도기적 상황, 한문화가 다른 문화로 이식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발라드 랩의 성장
초창기 발라드랩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것은 랩보다는 발라드쪽 인재들의 공이 크다. 하지만 차츰 힙합씬이 성장하면서 랩이 주인공인 발라드랩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향은 남성훈씨의 칼럼에서 언급되었듯이 언더힙합쪽의 사람들이 이판에 올라오면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이후서정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발라드 랩과 정서를 공유하지만, 서구의 랩과 보컬의 협업처럼 발라드를 벗어난 R&B 소울 등의 흑인 음악장르와 교류하는 힙합 음악가들이 많아 졌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발라드랩의 성공원인
남성훈씨가 한마디로 정의한 발라드랩의 성공원인은 “지속적으로 대중이 반응하고 익숙한 정서와 결합”했기 때문이다. 이 말은 맞는 말이지만 한편으로는 평론가로서는 상당히 무책임한 말이다.
왜냐하면 성공한 대중음악은 모두 지속적으로 대중과 반응하고 그들의 정서에 호응해준 결과다. 비틀즈도 투팍도 모두 이러했기 때문에 잘팔린거다.
-발라드의 힘
이영훈과 유재하 이후에 한국의 발라드는 양적인 면에서나 질적인 면에서나 높은 수준에 있었다. 초기 대부분의 발라드 랩의 노래를 이끌어나가는 힘은 보컬 파트에 있었다. 발라드의 작사가들은 라임은 없지만 호소력 짙은 가사를 쓸 수 있었고 보컬들의 가창력도 높았다.
당연히 발라드 히트곡 넘버를 가지고 있는 작곡가들의 만든 멜로디는 완성도가 높았고...
-서사의 힘
발라드의 서정성에는 멜로디 못지않게 가사도 중요하다 많은 발라드곡들의 인기 요인에는 호소력 짙은 가사의 몫이 크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흔한 주제에서 서정성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탄탄한 서사전개를 가진 작사가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힙합 또한 서사에 상당한 장점을 가진 장르이다. 단순하게 본다면 기본적으로 랩은 많은 말을 담을 수 있는 음악 장르이다.
발라드랩은 발라드의 서사에 힙합의 장점이 부가되어 기존의 것보다 많은 디테일과 내러티브를 부가할 수 있게 되었다. 대부분의 주제가 사랑 이야기에 머문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서사의 호소력은 충분히 입증된 셈이다.
-유행
이건 뭐 그 시대 살아본 사람이라면 다들 알듯...
@발라드 랩과 그에 대한 비난
*상업성과 대중영합
대중과 반응하고 그들의 수요를 충족시켜야 하는 것은 대중음악의 숙명이다. 그리고
상업성과 그의 반대급부라 할 수 있는 예술성과의 문제는 비단 발라드 랩에 치우친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음악장르에서 발생하는 문제이다 이것은 소위 리얼 힙합에도 충분히 대입 가능한 문제들이다.
*사랑 타령
발라드와 발라드 랩이 천편일율적으로 사랑타령에 치우친 것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사랑이 대중의 공감과 서정성을 이끌어 내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지만 발라드 랩의 가지고 있는 서사의 가능성이 한곳에 묶여 있는 점은 매우 아쉽다.
*형평성
이것이 힙합쪽 사람들로부터 가장 까일 수밖에 없는 부분일 것이다. 위에 적었듯 발라드 랩은 발라드가 갑의 위치에 있던 음악이다. 하지만 역시 위에 적은 것 같이 발라드는 성숙했고 힙합은 미숙했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발라드랩은 힙합이 도입되던 시기에 당시 주류의 음악을 통한 새로운 장르를 이해해 보자는 과도기적 시도였고 실험이였으며 그리고 그 댓가로 시장의 호응을 얻었다. 이게 전부다 다른 여타의 음악장르와 다르지 않다.
@한국형힙합≠발라드 랩
소위 한국형 힙합의 문제는 사실상 장르의 문제가 아니라 음악생산과 소비패턴의 문제 즉 대중음악시장의 문제이다. 이 세상에는 그 이름표 때문에 저열하다고 손가락질 받아야할 음악 장르는 없다.
내가 남성훈의 칼럼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소위 한국형 힙합이라는 어떠한 유의미한 의미설정의 논의를 거치지 않은 이 임의적인 단어를 오용하고 이것을 특정 장르(혹은 특정 아티스트)와 결부시키며 비하했기 때문이다.
한국형 힙합이라는 단어 자체는 리드머에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타 언론에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이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에 대해서 리드머와 그 필진들은 권위를 가진 위치에 있다. (이 권위는 사실 희소성 때문에 생긴 거지만.) 그러기 때문에 신중해야 된다.
소위 한국형 힙합의 문제는 지나치게 갑에 위치에 있는 방송사와 대형기획사 그리고 현재 음원유통과정의 문제점과 지나친 유행의 휩쓸림, 같은 한국의 대중음악 시장 전반의 문제와 맞물려 있으며 비단 한국힙합만의 문제는 아니다.
또한 한국형이라는 단어는 신조어가 아니라 이미 있어왔던 말이다 이것에는 분명 지역화(localization)의 의미를 포함 하고 있다.
따라서 이 같은 단어를 오용할 경우 거시적인 시장의 문제가 단순한 장르의 문제로 호도 될 수 있으며 외부 의 문화를 받아들여 자기화 하려는 시도의 의미를 평가절하 시킬 우려가 있다.
p.s-패닉의 1,2,3집을 보면 정반합이라는 헤겔 변증법이 생각난다. 그리고 발라드는 이적 힙합은 김진표라고 본다면 그들의 변화 과정은 위에서 말한 발라드랩의 변화 과정과 비슷하고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김진표의 랩을 무척 좋아한다 랩퍼가 랩만으로도 멋있어 보일 수 있다는 걸 처음 보여준 랩퍼가 나에게는 김진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