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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림 연습 (2)
2013/01/11 PM 01:26 |
두서없이 그린 스피드 페인팅 입니다..
각기 한시간 정도 걸린듯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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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옜날글들] + 블레이드러너에 대한 소고 (0)
2012/12/20 AM 03:53 |
블레이드 러너를 처음 본 것은 정치경제학 시간 이였다.
굉장히 급진적이며 본질적인(radical)사고를 지닌 학문인 정치경제학시간에 이러한 공상과학물을 본다는 것은 상당히 이채로운 경험이었다. 영화는 레플리컨트라 불리우는 안드로이드의 수명연장을 위한 여정과 이들을 잡으려는 주인공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이들 레플리컨트의 여정은 다분히 신화적이며 은유적이다. 한정된 수명을 늘리기 위한 여정은 창조주의 살해로 이어지고 이들은 예고된 죽음 앞에서 주인공에게 하나씩 제거된다. .
특이한 것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조인간은 안드로이드(android)라는 용어 대신에 리플리컨트(replicant)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영화를 볼 당시에는 이것에 대해 그리 큰 의미를 두지 않다가 최근에서야 이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리플리컨트는 복제된 것, 즉 인간의 복제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복제된 인간은 개인성(individuality)상실된 완전한 개체화(individuation)된 오로지 수행성만을 위해 목적에 맞는 스펙, 그리고 수명마저 결정되어버린 존재로 공장에서 만들어진다. 벤야민이 대량 복제된 예술품을 이루어 말하길 아우라가 제거된 예술이라 하듯이 어찌 보면 이들은 인간의 아우라가 제거된 인간인 것이다.
벤야민의 복제된 예술의 아우라의 부재를 논하기 위해서는 예술의 아우라는 어디에서 오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가 전제되어야 하지만 벤야민 자신도 여기에 대한 확답을 내놓지는 못한 것 같다. 그렇다면 예술의 아우라는 그렇다치고 인간의 아우라는 어디에서 오는가? 영화의 라스트씬에서 최후의 레플리컨트는 주인공을 구해주고 의미심장한 대사를 날린다.
“I've seen things you people wouldn't believe. Attack ships on fire off the shoulder of Orion, I watched C-beams glitter in the dark near the Tanhauger gate. All the moments will be lost in time, like tears in rain. Time to die. -나는 너희 인간들이 상상도 하지 못할 것들을 보았어. 오리온 전투에서 불타오르던 우주전함들, 그리고 탄호이저 기지에서 어둠 속에 반짝이던 씨-빔의 물결도 보았어... 이 모든 기억들이 곧 사라지겠지. 빗속의 눈물처럼... 죽을 시간이야."
한인간의 유언같은 그의 대사는 그들의 실존했음을, 그들이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았다는 것을 웅변한다.
물론 그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그 장면에서 ‘너는 사람이 아니다’ 라고는 말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 느낀 그 어떤 것이 바로 인간의 아우라가 아닐까? 인간의 아우라는 존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어미 ~다로 정의 될수 없는 우리네 인생처럼 모호한 그 무엇만이 내머리속을 맴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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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옜날글들] 바람의 검심을 보다 (0)
2012/12/20 AM 03:47 |
케이블 애니메이션 채널에서 바람의 검심을 보여주었다. 내 고교시절을 추억함에 있어 빠질 수 없는 만화이기에 오랜만에 재미나게 보고 있다. 특히 시시오 일파와의 전투는 이만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훌룡하다.
시시오 일파는 서구열강에 대항하기 위해 일본은 강해져야 한다는 부국강병과 약육강식의 논리를 들어 봉기한다. 이들의 이론은 다분히 사회진화론에 기이한 것 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본은 동양3국중 가장 적극적으로 사회진화론을 받아들인 국가로 우리가 쓰고 있는 진화론을 대표하는 개념인 우승열패, 약육강식, 적자생존 은 일본에서 번역된 개념들이다. 그리고 다들 알다 십이 이러한 개념은 일본의 아시아침략을 정당화 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흔히 아는 사실과 다르게 다윈은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이 라는 단어를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적자생존이라는 단어를 만든 사람은 사회 진화론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허버트 스팬서 였다. 다윈이 만든 개념은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이였다.
적자생존과 그 유사개념인 약육강식, 우승열패는 매우 쉽게 이해되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모호한 개념이다. 왜냐하면 아무도 누가 적자, 약자, 강자, 우자, 열자, 인지 명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연유로 위와 같은 개념을 들먹이는 작자들은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해서 자신과 자신의 소속집단을 강자로 그 외의 집단은 열자로 구분해서 자신들의 침략행위들을 자연의 섭리로 둔갑시켰다.
만화속의 시시오도 이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였다. 그리고 이러한 부류의 인간들이 그러하듯 결과론적으로 그 또한 적(適),강(强),우(優)자는 아니였다.
위와같은 연유로 적자생존이라는 개념이 보편타당한 법칙이라는 것에 대해 나는 매우 회의적이다. 차라리 다윈의 개념이 그 과학적인 진위여부를 제체 두고서라도 논리적, 역사적으로 타당한 개념이라고 사료된다.
중국의 학자 엔후(嚴復)는 natual selection을 천택(天澤)이라고 번역 했다. 그리고 바람의 검심의 시시오와 의 마지막 결투를 다루는 부분의 소제목이 내 기억으로는 '시대가 선택한 자' 였던 것으로 기억 된다. 자연, 하늘, 시대 이것들은 모두 인간의 이성밖에 존재 한다. 물론 인간이 이것이 이성의 영향력 안에 있다고 착각한 적은 있었었다. 그렇다면 초이성적인 존재 앞에서 미약한 생명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만화의 주인공 켄신은 비천어검류의 마지막 비기인 천상룡섬을 얻기 위해 사부와 대결하는 장면에서 결사의 마음을 버리고 본질적인 생에 대한 집착으로 돌아서서야 천상룡섬을 완성할 수 있었다. 시시오와의 마지막 결투에서도 켄신의 생에 대한 본능이 그를 시대가 선택한 자로 만들었다.
아무리 미약하고 보잘것없는 삶이라도 살아가는 것, 죽을 때까지 살아가는 것, 어찌 보면 생명체로서는 당연한 이 명제가 생명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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