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만 퍼왔습니다.
저는 캄보디아의 깝봉스프라는 지역에서 2년간 거주하며 봉사활동을 하고,
다음달 한국으로 출국을 앞두고 있습니다.
저와 저희 단원들 모두 2년 전에 한국에서의 직장생활을 접고 같이 들어와서
2년동안 활동을 하고 다시 귀국할 예정에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갈려고 생각을 해보니까 한국에서 새로이 취업을 해야 되고,
등록금으로 낸 남아있는 빚들도 갚아야 하고,
한국의 다른 친구들은 현재 대부분 취직하여 안정된 상태에 있다보니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이 생겨나면서 마음 속에 자꾸 두려움이 자라게 됩니다.
이 두려움의 실체가 무엇일까요? 어떻게 하면 극복해서 용기를 낼 수 있을까요?
한국에서의 생활이 더 열악해요? 질문자가 여기 봉사하는 곳의 생활이 더 열악해요?
사실 제 개인적인 생활은 열악하지는 않았어요.
여기서 너무 편하게 있어서 이런 우려가 생기는 거예요.
코이카(KOICA)에서 이거 문제네요. (청중들 웃음)
밥도 못 먹고 비도 새는 집에 모기가 물어 뜯는
그런 곳에서 생활을 시켜야 그것이 진정한 봉사이지요.
그런데 온갖 것을 다 해주니, 즉 돈도 주고, 생활비도 주고,
뭐도 주고 해가지고 이지역 사람들 보다 훨씬 더 좋은 사무실에
좋은 조건에 일하면서 생활을 했기 때문에 지금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쉽게 얘기하면, 여기 마을 사람들이 한국 사람보다 더 열악하죠?
그 마을 사람들과 질문자가 똑같이 살았다고 생각해봐요.
그러면 질문자에게 한국 생활보다 여기 생활이 더 열악하겠죠?
그리고 한국에서 어떤 직장을 구하든지 한국에서 받는 월급이 많아요?
여기에서 봉사하면서 받는 월급이 많아요?
한국에서 받는 게 많지요.
그러면 여기 생활보다 한국 생활이 더 편하고,
여기 월급보다 한국 월급이 더 많은데 걱정할 것이 뭐가 있어요?
아무 걱정할 것이 없잖아요. (청중들 웃음)
마음가짐이 좀 문제인 것 같아요.
안 좋은 부분일 수도 있지만, 말씀 하신대로 여기에서는 저보다 훨씬 교육의 기회도 적고
삶도 열악한 사람들 하고 같이 있다 보니까
내 삶에 대해서 만족할 수 있는 시야를 가지게 되는데,
한국에 있다 보면 자꾸 나보다 잘 되는 사람,
나보다 더 좋은 곳에 취업한 친구들을 자꾸 더 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요. 그것은 맞는 얘기예요. 그것을 상대적 열등감과 우월감이라고 합니다.
상대적 우월감을 갖고 본인이 행복을 구하려면 본인은 여기에 영원히 살면 돼요.
한국에 가지 말고요. 늘 상대적 우월감으로 살 수 있잖아요.
여기 현지에 있는 한국인 회사 있잖아요. 그런 곳에 월급을 많이 달라고 하지 말고요.
아까 들어보니까 이곳 사람들한테는 최저 임금이 80불, 100불 하다가
이제는 120불, 128불 한다고 그러더라구요.
그런데 한국 사람을 채용하면 적어도 3천불은 줘야 하니까 한국 직원을 적게 둔단 말이예요.
왜냐하면 120불, 130불만 하면 되는데 3천불을 줘야 되니까요.
그러니까 질문자가 여기 회사에다가 월급을 한 500불만 받겠다고 제출을 해서
신청을 하면 어느 회사든지 오라고 할 거예요.
500불만 받겠다고 입사원서 제출해도 질문자는
여기 현지에 있는 사람들보다 월급을 4배 더 많이 받잖아요.
그러면 늘 우월감을 가지고 살 수 있지요.
굳이 한국 가서 2백만원 받아도 3백만원, 4백만원 받는 친구들과
늘 비교해서 열등감을 갖고 살 필요가 없잖아요.
그러면 대학교 빚은 누가 갚아주나요?
대학교 빚요? 한국에 안 가면 안 갚아도 돼요. 그럼요. 안 가면 안 갚아도 돼요.
한국에 없는데 무슨 재주로 받는데요? 공항에 내리면 체포가 되겠지요. (청중들 웃음).
그래서 한국에 안 가면 된다니까요. 아예 한국에 안 가버리면 아무 문제가 없고요.
두번째, 여기서는 500불만 해도 4배 더 받는 것이니까 회사에 신청을 하면 돼요.
1000불 미만까지는 한국 회사에서도 아마 기꺼이 채용할 거예요.
3000불 주고는 채용을 못하더라도,
한 700~800불까지는 한국 사람이 어쨌든 훨씬 필요하니까요.
그 정도 채용을 하면 질문자는 500불까지만 본인의 우월감을 가지고 살고,
200불 내지 300불은 꾸준히 한국에다가 정기적으로 갚으면 되지요.
20년 목표를 세워서요. 계속 보내주면 되는 거예요.
그러다가 여기 현지인의 월급이 만약 200불 대로 오르면 자기도 700불로 올리면 되고,
또 300불로 오르면 질문자도 1000불로 올리면 돼요. 그 정도는 여기서 다 해 줄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상대적인 우월감으로 인간이 사는 존재인 것은 맞는데,
그것의 본질을 딱 꿰뚫어서 ‘여기서 500불을 받고 상대적 우월감을 갖고 사는니,
한국에 가서 2000불 받고 사는 게 낫겠다’ 해서
‘여기 500불보다 4배나 더 받지 않느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면
한국에 가는 것이 하나도 두렵지 않지요.
여기 있을 때도 질문자는 늘 남하고 비교하는 인생을 산다는 얘기 아니예요.
남하고 비교해서 살면 월급을 15000불을 받아도
또 30000불 받는 친구하고 비교하면 또 열등감을 가지게 돼요.
질문자가 직장에서 과장이 되어도 질문자는 부장이 된 친구하고 비교하면
또 열등감을 가져야 되고요.
질문자가 사장이 되어도 회장이 된 친구하고 비교하면 또 열등감을 가져야 되고요.
그래서 영원히 열등감 속에서 살아야 돼요.
그래서 저는 이것을 거꾸로 생각하라고 권유합니다.
여기와서 해외봉사를 안해 본 청년들은 불만과 불안 속에서 살지만
해외봉사를 나와 보니까 ‘내가 한국 시민권 가진 것만 해도 엄청난 이익이구나’ 알게 되잖아요.
여기 캄보디아 사람들이 현재 한국에 가서 일하면 여기 월급의 10배를 받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한국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잖아요.
한국에 가도 시민권이 안 주어지잖아요. 게다가 불법 체류자는 월급을 절반 밖에 못받잖아요.
그리고 두려움 속에 살아야 되는데, 나는 한국에 가면 시민권을 갖고 불법 체류를 안해도 되고요.
공장에 간다 해도 월급도 두배 받잖아요.
그래서 여기서 2년 봉사하다가 한국에 가면
‘내가 한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것만 해도 엄청난 기득권이고 재산이다’
하는 것을 자각할 수 있고, 여기서 열악하게 사는 사람들을 봤기 때문에
한국에 가서는 셋방에 살아도 여기서 개인 주택보다는 더 시설이 낫고,
공장에 가서 생활을 해도 훨씬 이 사람들 보다는 조건이 낫구나’ 하고 자각할 수 있죠.
그러면 이런 열악한 곳에서도 돈 안 받고 일할 수 있었는데,
한국에 가서 돈 받고 일하는데 뭐가 두려울 것이 있어요?
그러니까 ‘한국에 가서는 청소부를 하든, 가정부를 하든, 무엇을 해도 나는 할 수 있다’
이런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봉사를 보내는 거예요.
여기와서 도움을 준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별로 도움이 안됩니다. (청중들 웃음)
우리 젊은이들이 이것을 통해서 인생을 자각하고
건강한 한국 국민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훈련된 장소로서는 필요하지만,
이곳 사람들한테는 실제로 도움이 별로 안돼요.
질문자는 봉사하러 왔지만,
이 사람들이 볼 때는 한국에서 온 봉사자들이 호화판 생활을 하고 있는 거예요.
여기 사람들이 보기에는 꿈에도 못보던 것을 다 먹고 입고 그러면서 봉사한다고 와 있는 거예요.
그러니 여기 와 있는 것이 실제로는 도움이 별로 안돼요.
그러나 우리 한국 젊은이들에게는 굉장한 도움이 돼요.
여기에 와서 내가 대한민국에 대해서 정말 불평 불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래도 한국은 캄보디아나 라오스나 베트남에 비해서는 참 민주적이고 경제도 낫고,
사회보장제도도 낫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우리도 고칠 것이 많이 있지만 한국사회도 부정적으로만 보지않고
긍정적으로 보는 위에서 개선할 것을 생각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나는 한국에서 무엇을 해도 할 수 있겠다’ 라고 하는 가능성을 열어주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가능하면 미국이나 유럽에 보내지 말고,
저개발국(제3세계)으로 보내서 그곳에서 1,2년을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오면,
우리 젊은이들이 굉장히 건강해집니다.
그런데 얼마나 여기서 호화판으로 살았길래 지금 한국가는 것이 걱정이라고 할 정도예요?
네, 제가 호화판으로 산 것 같네요. (청중들 웃음)
여기서 호화판으로 살아봤자 얼마나 호화판으로 살았겠어요? 어떻게 살았는지 이해는 하는데요.
그러나 지금 여기 있으면서 너무 안일하게 살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상대적인 우월감으로 편안하게 살다가
‘한국 가서 또 그런 경쟁사회에서 어떻게 사나?’ 그런 걱정이 있다는 것을 이해는 해요.
그러나 객관적으로 봐서 ‘여기서도 살았는데 한국에서 왜 못살겠느냐’
이렇게 생각하면 하등 두려울 것이 없어요.
‘돈을 조금 받고도 일했는데 한국가서 큰 돈을 받는데 왜 못하겠느냐?’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그래서 여기 한번 살다가면 한국 사는 게 걱정이 하나도 안되어야 해요.
강남 고속버스 터니널에 가서 이렇게 돈통 하나 놓고 앉아 있어도
여기 노동자보다 수입이 많을 거예요.
그런데 뭐가 걱정이예요? 안 되면 그냥 지하철에서 손을 벌려도,
고속터미널 앞에 앉아서 돈통을 놓고 절해도 돼요.
꼭 구걸하라는 것이 아니라 돈통을 놓고 입다물고 그냥 앉아 있어도 돈을 줘요.
그런데 그때 그냥 앉아있는 것 보다 머리 깎고 먹물 옷 입고 앉아 있으면
수입이 10배나 더 나요. (청중들 둣음)
보시함 통하나 놓고 ‘불’자라고 써놓고 거기에 질문자도 승복 비슷한 옷 하나 입고
계속 절만 하고 있으면 두 시간에 10만원 들어와요. (청중들 웃음).
제가 그 사람한테 수입이 얼마 들어오는지 직접 물어봤어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살다가 한국 가서 살면 걱정이 하나도 없어야 돼요.
여기서 봉사활동을 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야 한국에서 걱정이 많지만,
여기서 경험을 딱 해봤으면 ‘아이고, 내가 대한민국에 가서 무엇을 한들 못살겠어’
이런 생각이 딱 들어야 돼요.
네. 감사합니다.
고생을 한번 해보면 안일해졌던 삶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거든요.
그래서 옛날부터 ‘젊어서 고생은 사서한다’ 이런 말이 있잖아요.
젊어서 고생은 돈을 주고 사서라도 할만하다.
왜냐하면 이렇게 고생을 한 번 겪어야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생기고 적응력이 생겨요.
무보수로도 했던 일을 더 쉬운 일에 돈을 주는데 못할 게 뭐가 있어요?
전에는 ‘이 정도는 되어야 취직을 한다’ 이렇게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뭐든지 한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게 되면, 이제 일자리가 널려 있는 거예요.
이런 자세로 일을 하면 직장을 두세번만 바꾸면 금방 정상적으로 돌아가요.
그러니 여기서의 생활이 조금 고생스러운게 사실은 이익이예요.
그런데 이제 한국도 좀 살만 하니까 이 KOICA에서도 해외파견자에게 재정적 지원을 해주잖아요.
우리 JTS에서 해외파견을 보낼 때는 일체 지원비를 안 줍니다. 무료로 봉사해야 돼요.
먹고, 자고 하는 생활은 보장해 주지요.
첫번째 파견자는 비행기표도 본인이 끊어 가야 해요.
그런데 정부에서 지원을 해서 한달에 500불씩 주면 나중에 훨씬 성실도가 떨어져요.
일에 집중도 안하고 불평도 많고요. 이런 방식은 사람을 더 많이 보낼 수는 있지만,
훈련은 잘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 온 김에 고생 좀 하셔야 돼요.
편하게 살수록 오히려 도움이 안 돼요.
젊을 때는 오지에 가서 고생도 엄청나게 해보고 위험도 감수해보고
이렇게 해야 삶이라는게 정말 생기가 돕니다.
사람이 위험에 처하면 살고자 하는 욕구가 일어난다는 거 알아요? 더 악착같이 살려고 그래요.
여기 목 메어서 죽을려고 하다가 호랑이가 나타나면 죽어라고 도망을 가요. (청중들 웃음)
혹시 제 얘기를 잘못 알아듣고 “스님이 봉사단원들에게 돈 주지 말라고 하더라”
이렇게 받아들이시면 안 돼요. 고생이라고 하는 것이 꼭 나쁜게 아니다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이 의식은 상대적인 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행복도 상대적인 행복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이것이 높아져도 상대적으로 더 높은 것과 비교하면 열등감이 생기거든요.
그래서 고생을 해서 비교 대상이 낮아져 버리면 삶의 만족도가 확 높아져 버린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GDP 순위하고 행복지수 순위가 다르다는 것 아시죠?
빈부 격차가 심하면 상대적 빈곤감이 커요.
우리 사회가 살만 한데도 행복도가 떨어진다는 것은 구조적으로는 빈부격차가 크다는 거예요.
그래서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는 이 상대적인 빈곤,
소위양극화를 좀 줄여주어야 국민 행복도가 높아지고요.
개인적으로는 자기 기대 수준을 낮춰주면 만족도가 좀 높아지는 거예요.
이 나라 사람들이 우리가 보기에는 불쌍해 보이지만
자기들은 다 웃으면서 행복하게 사는 이유는 기대가 낮기 때문에 그래요.
같이 가난하기 때문에 열등감이 적은 거예요.
수행이라는 것은 이렇게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고, 우리의 기분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 원리를 알아서 내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가는 방법이예요.
그래서 이번에 한국에 복귀하시거든 그런 마음을 가져요.
‘캄보디아에서 살았는데 한국에서 왜 못살겠나?’ 이렇게요.
그리고 나보다 잘된 사람과 자꾸 비교해서 따지지 마세요.
내가 보기에 좋게 보이지, 실제로 그 사람이 좋은지 안좋은지는 몰라요.
혼자 사는 여자나 남자가 공원을 산책하면 약간 외롭잖아요.
그런데 남자 여자 둘이 걸어가면서 얘기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너무 다정해 보이거든요.
그런데 그 둘은 지금 이혼하는 논의를 하고 있는 거예요. (청중들 웃음)
그러니까 내가 보기에 결혼한 사람들이 좋아보이고, 취직해 있는 사람들이 좋아보이고,
지위가 높은 사람이 좋아보이는 것이지, 그 사람이 실제로 좋은지 그것은 전혀 다른 문제예요.
내가 이렇게 2년 봉사한 것이 한국에서 2년 먼저 취직한 사람보다 못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돈과 지위만 가지고 계산하기 때문이예요.
행복도를 따지면 외국에 봉사한 경험이 없는 그는 나보다 월급이 한 100만원 많거나
지위가 조금 높아도 그는 불만족 속에서 살고,
나는 그보다 월급이 작고 지위가 낮아도 늘 만족하여 살기 때문에 행복도는 누가 더 높아요?
내가 더 높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봉사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소중한 자산으로 여겨야지,
‘괜히 봉사 2년 했다가 취직도 늦어지고, 결혼도 늦어지고, 나만 손해봤잖아’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던 질문자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져 있었습니다.
한층 밝아진 질문자의 목소리에 청중들도 큰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붓다의 고뇌와 말로
현대인들의 고통을 치유하는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해 주시면서
이렇게 닫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오늘날 근본불교가 우리의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저는 예측합니다.
그 이유는 현대사회가 먹고 살만해졌다는 것입니다.
먹고 살만해졌는데도 우리의 고뇌가 지금 해결되지 않잖아요.
우리는 지금 어쩌면 부처님 당시의 왕궁에 살았던 사람들과 비슷한 상황인지 몰라요.
지금 아무리 가난하다고 해도 그때와 비교하면 다 왕자들이고 공주들이예요.
붓다는 이 문제를 추구해 들어갔기 때문에 제가 생각할 때는
특정한 종교로서의 불교가 아니고 붓다가 가졌던 문제의식은 현대인이
갖는 고뇌를 해결하는데 굉장히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직접 경험해봤구요.
그래서 이 붓다의 가르침은 불교니 기독교니 하는 종교를 뛰어넘는 얘기이지
불교가 낫니 기독교가 낫니 하는 상대적 개념의 종교는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
여러분들이 기독교인이라 하더라도 이 마음 공부를 하면
더 깊이 하나님의 음성을 자각할 수 있고 신앙이 더 깊어질 수 있어요.
불교를 공부하니까 기독교 신앙이 옅어지는 게 아니고,
불교를 공부하면 기독교 신앙이 더 깊어져요.
왜냐하면 이것은 특정한 종교가 아니고 깨달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깨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의 대화는 한 종교로서의 불교가 아니고
그보다는 한 차원 높은 진실을 추구하는 관점에서의 불교입니다.
그러면 진실을 추구하는 기독교의 관점과도 일치합니다.
이런 말씀을 들리면서 마치겠습니다.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