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미국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은퇴한 후 집에 있으니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들어 고민인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34년 동안 미국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일주일 전에 은퇴를 했습니다.
은퇴를 하고 막상 집에 있으니 불안하고 초조하고 평화를 다 잃어버린 느낌입니다.
다시 회사에 들어가서 계약직으로 일할까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지금은 은퇴하고 싶은 마음과 계약직으로 다시 일하고 싶은 마음이 반반입니다.
어찌하면 좋을까요?
관성의 법칙 들어보셨어요?
움직이는 물체는 계속 움직이려고 하고 멈춰있는 물체는 계속 멈춰 있으려고 한다.
멈춰 있는 물체를 움직이게 하려면 힘을 가해야 합니다.
움직이는 물체를 멈추게 하려고 해도 힘을 가해야 합니다.
질문자는 34년 동안 매일 출근했잖아요. 직장 다니는 게 습관화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직장을 탁 그만두니까 계속 직장을 나가던 관성이 있는데
집에 있으려니까 기분이 이상한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낫느냐? 한 1년 정도 놀면 다 낫습니다.
지금은 일주일 밖에 안 되었으니까 어지러운데
한달까지는 어지러운 게 더 심해지다가 점점 약해집니다.
한 1년 정도 놀면 이제 노는 데에 관성이 붙습니다.
그러니 걱정할 것이 없어요. 다만 시간이 좀 걸릴 뿐이에요.
젊은 친구들이 애인과 헤어지고 울고 불고 하면 어른들이 주위에서 뭐라 그럽니까?
이해는 되지만 “세월이 약이다” 라고 그럽니다. 세월이 약입니다.
담배를 끊으면 첫날 이튿날 점점 저항력이 세지는데,
한 달쯤 안 피워버리면 세력이 약화되면서 담배 피우고 싶은 욕구가 내려갑니다.
그 문제라면 직장을 다시 다닐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냥 기다리면 해결이 됩니다.
교회를 다닌다면 교회에 가서 봉사를 하든지,
절에 다니면 절에 가서 봉사를 하든지,
다른 소일거리를 찾아서 일을 하면 불안한 마음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노력을 안 하셔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이 됩니다.
이것과 관계없이 나이가 60세 밖에 안 되었다면 아직 건강하잖아요?
내가 일을 좀 더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은 앞의 고민과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이것은 일을 더 하고 싶으면 선택해서 더 일을 하면 됩니다.
그런데 이 불안 심리 때문에 일을 더 하면 죽을 때까지 일하다가 죽어야 되요.
이것은 60세에 그만둬도 생기는 문제이고,
65세에 그만둬도 생기는 문제이고 70세에 그만둬도 생기는 문제예요.
그래서 이제 은퇴를 하셨으니까 이런 관성적으로 사는 삶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주체적으로 일을 하겠다고 생각하신다면 그냥 1년을 노셔야 합니다.
1년을 놀아서 이 까르마(습관)를 없애버리고
이 까르마에 안 끌려가는 상태 하에서 아직 건강하니까 일을 해야 되겠다고 한다면,
습관화된 상태가 아니라 주체적인 선택에 의해서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훨씬 좋다 싶어요.
이렇게 되면 일을 하다가 중간에 그만둬도 아무 문제가 없고,
언제든지 일을 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이제 자유입니다.
모든 삶은 습관입니다.
이 습관화 된 것을 “까르마”라고 부릅니다. 인간의 삶은 습관의 연속입니다.
습관이 나를 몰고 가는 것입니다.
담배 피우는 습관이 한번 들면, 담배 피우는 습관이 담배를 피우고 싶게 만드는 것입니다.
기계는 유용하니까 잘 쓰되 습관화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습관화되는 것을 막으려면 일주일에 하루든, 한 달에 이틀이든, 스마트폰 없이 살아보는 겁니다.
그랬을 때 계속 불안하면 ‘아, 내가 지금 중독되었구나’ 하고 자기를 점검하면 됩니다.
그 때 불안한 것을 견뎌내야 합니다.
그래야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자가용을 가진 사람도 한 달에 한번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다녀보세요.
그래서 자가용에 습관화된 것을 벗어나야 합니다.
자기를 온전하게 지키려면 습관화 되는 것을 방지해야 합니다.
기계를 쓰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지도록 해야 돼요.
질문자는 지금 직장 다니는 것이 습관화된 것입니다.
35년 동안 습관화된 것이니까 어떻게 하루아침에 없어지겠어요?
몸에 베인 습관이 빠지려면 한 1년은 걸릴 겁니다.
1년 간은 그런 증상이 나타나더라도 ‘아, 이건 습관 때문에 그렇다.
지금이 자유롭고 좋은거야’ 이렇게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던지,
조금 힘들면 봉사를 나가든지 하시고,
이런 습관이 빠진 뒤에 ‘아직 건강하니까 새로운 일을 하겠다’ 한다면
얼마든지 하셔도 괜찮습니다.
정부에서 오래 일했으면 퇴직 후에 3년은 봉사를 하라는 말씀을 스님 유튜브에서 들었습니다.
정부에서 35년 일했다면 그 때는 월급을 다 받고 일했잖아요.
그런데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 있어보면 허전하잖아요.
그 때는 월급 안 줘도 일하고 싶어져요.
그러니 35년이나 월급을 받고 일했으니
이제 한 3년 정도는 그동안 받아 먹은 것을 좀 나눠주라 이런 얘기입니다.
내 재능을 돈 받고만 팔지 말고 그냥 필요한 것에 쓸 줄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자원봉사라고 하죠. 자원봉사는 사랑과 같습니다.
전 생애를 사랑으로 보내면 더 좋죠.
예수님이나 부처님은 평생 동안 돈 받고 자신의 재능을 판 적이 없잖아요.
부처님은 지적소유권도 주장한 적이 없어요.
그러니 저도 이렇게 부처님의 말씀을 무단도용을 해서 쓰고 있지 않습니까(웃음).
그래서 저도 강의할 때 강사료를 안 받습니다.
그 이유는 강사료를 받고 강의를 하면 노동이 되지만,
안 받고 그냥 하면 봉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노동을 하고도 대가를 못 받고 신분에 묶여서 노예 생활을 했고,
조금 해방된 것이 중세의 농노입니다.
농노는 신분이 아니라 토지에 묶여 있었어요.
거기서 조금 발전한 것이 근대 자유시에서의 노동입니다.
돈을 주고 노동을 샀죠. 그러나 노동은 돈, 즉 임금에 묶인 것입니다.
이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요? 자원봉사입니다.
여러분들이 인간 해방의 길을 가려면 전 생애를 다 자원봉사는 못하더라도
일상생활 속에서 주말은 자원봉사를 한다든지,
은퇴하고 나서는 자원봉사를 한다든지,
이렇게 자유의 길 사랑의 길로 나아가는 게 필요합니다.
헌신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자기 삶을 더 복되게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GDP의 절대 액수를 갖고 선진국을 가늠할 것이 아니라,
자기 수입의 얼마를 도네이션 하느냐,
자기 시간의 얼마를 자원봉사 하느냐,가 자유와 해방으로 가는 길입니다.
부처님은 2,600년 전에 이미 그 길을 갔지만
우리는 아직 전체적으로는 그 길을 못 가고 있죠.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적 조건은 지금 그 길로 갈 수 있는 조건은 다 갖추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일하고 돈 받고 물건 사고 돈 줬잖아요.
지금은 사회가 카드 결재 시스템으로 바뀌었잖아요.
그래서 월급도 현금으로 받은 적도 없고 물건 사고도 돈을 준 적도 없잖습니까.
뭐만 오고 갑니까? 내 머리 속에서 ‘월급 얼마 받았다’, ‘운동화값 얼마 줬다’ 하는
이것만 사실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이 머리 속에서 오고 가는 계산을 지워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여러분들 다 봉사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저는 돈을 안 받고 일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여러분들처럼 밥 먹고 차 타고 살잖아요.
그런데 저는 머리 속에 오고 가는 계산이 없어진 것이고,
여러분들은 카드로 결재해서 생활은 저와 똑같지만
머릿속으로 얼마 나가고 들어오는지 계속 계산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사는 환경은
자원봉사로 갈 수 있는 세상으로 시스템 상으로는 이미 변해 있어요.
그런데 우리들은 아직 자유인이 되기에는 사유재산적 사고 방식이 아직 정리가 덜 되어 있습니다.
아직 네 꺼 내 꺼를 따지는 사유체계를 갖고 있거든요.
그래서 자유로 가려면 이러한 상을 놓아버려야 돼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이 삶 속에서 바로 성인의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전 재산을 다 내어놓으라는 얘기가 아니라 원래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 수입이라는것이 다 분배과정에 맡겨진 것일 뿐이기 때문에
일부를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도네이션 하고,
또 살고 난 뒤에는 재산을 사회로 환원해 줘야 합니다.
돈과 재물은 우리가 사는 데 필요합니다.
그러나 누가 주인인지 분명하게 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소한 3년은 봉사를 하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돈을 받고 일하면 남의 일이 되지만,
돈을 안 받고 일하면 완전히 자기 일이 되어버립니다.
자기가 좋아서 놀이로 하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인류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렇게 가야 됩니다.
우리는 그런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초기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자원봉사로 가는 것이 노동의 해방입니다.
노동의 해방은 노동 시간이 적어지고 월급이 많아지는 게 아니라 노동이 놀이화 되는 것입니다.
노동이 놀이화 되는 것이 노동의 해방입니다.
놀이화되기 위해서는 돈 내고 하면 됩니다.
돈 받기 위해서 노래 부르면 노동이고, 돈을 내고 노래 부르면 노는 것이 됩니다.
디스코텍에서 춤을 춰도 무대 위에서 돈 받고 추는 사람은 일하고 있는 중이고,
무대 밑에서 돈 내고 추는 사람들은 다 노는 중입니다.
똑같이 움직이면서도 돈 내고 골프 치는 사람은 노는 중이고,
돈 받고 따라다니는 캐디는 일하는 중입니다.
노동이냐 놀이냐 하는 것은 결국 돈 받고 일하느냐 돈 주고 일하느냐 하는 차이 밖에 없습니다.
돈 주고 일한다는 것은 일이 목적이지 돈이 목적이 아니거든요.
노동이 자기의 주체적 행위가 됩니다.
그러나 노동은 돈을 받기 위해서 일하잖아요.
돈이 목적이 되고 노동은 수단이 됩니다.
자신의 노동이 수단이 되니까 자유가 속박을 받고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결국 인류의 궁극적인 해방의 문제입니다.
그러니 질문자는 그 동안은 돈 받고 많이 일했으니까
이제는 일이 자기실현이 되는 사랑의 행위를 최소한 3년은 좀 해보시라 이런 말씀입니다.
스님께서는 '자원봉사는 주인이 되는 삶'이라며 다시 한 번 봉사하는 삶을 강조해 주셨습니다.
재미있었습니까?
제가 얘기한 놀이와 노동의 문제는 철학적으로도 굉장히 깊은 내용입니다.
제가 쉽게 얘기해서 별거 아닌 것 같으셨겠지만,
인간의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얘기한 것입니다.
일이 놀이가 되면 우리의 삶이 그대로 수행입니다.
어려운 용어로 얘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삶을 어떤 관점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서 삶이 봉사가 되기도 하고,
삶이 자기 노동을 파는 행위가 되기도 합니다.
관점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노동이 되기도 하고, 놀이가 되기도 합니다.
항상 삶을 놀이화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놀이화 한다는 것은 자기 삶을 자기가 주체화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속박 받고 삽니다.
사랑을 받으려고 하면 상대에게 속박 받게 됩니다.
사랑하는 자가 주인입니다.
베푸는 자가 주인이고, 이해하는 자가 주인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그 누구도 인종과 민족,
과거의 경험에 관계없이 자유롭고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렇게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