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겁으로 지은 업장, 한 생각에 없어져라. 죄도 없고 마음 없어 그 자리가 비었으니, 빈 마음 그 자리가 진정한 참회일세”

노란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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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글]] 즉문즉설 '카운셀링을 잘하는 법' (1) 2014/12/28 PM 09:23
오늘은 카운셀링을 전문으로 하고 계시는 의사선생님의 고민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카운셀링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가 스님께 카운셀링을 요청하는 흥미있는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반갑습니다.

스님의 즉문즉설을 유튜브로 보는데 너무나 통쾌하고 간결하면서

직설적으로 잘 말씀해 주셔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의사로서 일하고 있는데요.

카운셀링을 할 때가 많습니다.

우울증, 스트레스, 특히 자살 충동이 있는 환자들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저는 한국 사람이고 대부분의 환자들은 미국 사람이여서

카운셀링을 할 때 다른 접근이 좀 필요하거든요.

저는 한국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왔기 때문에 그 영향도 있고,

또 환자들이 다른 의사한테도 카운셀링을 받다가 저에게로 왔기 때문에,

똑같은 접근 방법을 사용하면 효과가 적지 않을까 생각해서 제 나름대로 연구를 합니다.

외국사람들 내지는 한국사람들에게 어떤 방법으로 카운셀링 하는 것이 좋겠는지

스님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제 경험을 토대로 봤을 때는 상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내가 상대를 변화시킬 수가 있다’ 는 생각이 가장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가 없다’ 이것이 먼저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변화가 안이루어지면 능력 부족이라는

자책감을 느끼게 되고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천적으로 인간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물질적인 것은 도움을 줄 수 있고, 다리가 부러진 것도 치료해줄 수가 있는데,

성격을 바꿔준다든지 삶의 습관을 바꿔준다든지 생각을 바꿔준다든지

이런 정신적인 영역은 누가 도와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스님의 법문을 듣고 사람들이 변했다고 많이들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그분들은 저에게 도움을 받았다고 얘기하거든요.

그런데 엄격하게 보면, 도움을 받은 건 맞는데 제가 도움을 준 건 없어요.

그것은 반드시 자기가 스스로 받아들일 때 도움이 됩니다.

제가 도와준 것은 아니에요.

만약 제가 상담을 해서 상대를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을 하면

저는 이 강의를 지속적으로 못합니다.

어떻게 하라고 말해주었는데 대부분 그렇게 하지 않거든요.

묻기만 하고 따라 하지는 않을 사람들이 많으니까 재미가 없어지죠.

그래서 강의를 할 때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사람에 대해 의심을 하게 되고, 들을 사람과 듣지 않을 사람을 분별하게 됩니다.

그런데 애초에 ‘나는 아무도 도와줄 수가 없다’ 이것이 전제가 되면

상담하기가 굉장히 쉽습니다.

내가 도와주겠다는 생각을 안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상대의 얘기를 먼저 듣습니다.

들어보고 그 사람의 얘기 따라 질문을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자꾸 내가 물어보는 겁니다.

‘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이건 왜 그런 거예요?’ 이렇게 물어보고 들어줍니다.

스트레스의 절반은 들어주면 풀립니다.

자살하려는 사람도 '어떻게든 설득을 해서 안 하도록 해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면 굉장히 풀기가 어려워져요.

그냥 들어주는 겁니다.

전화가 오면 “아, 죽겠다고요?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이렇게 질문을 하고 계속 들어줘야 합니다.

“당신이 죽으면 그럼 부모님은 어떡해요?” 이렇게 물어봐야지

“죽지 마라!” 이렇게 얘기하면 안 돼요.

이렇게 계속 물어줘서 자기 얘기를 자꾸 자꾸 하다가 보면

자기가 자기모순을 느껴서 깨닫거나,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나니까

죽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그 생각이 좀 풀려요.

그러면 그 고비를 넘기거든요.

제가 볼 때는 우울증의 원인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정신적인 상처의 문제이고, 하나는 몸에서 일어나는 분비물의 이상입니다.

현재까지 의학적으로 정확하게는 안 밝혀졌잖아요.

가벼운 것은 치료가 되지만,

제가 지켜봤을 때 심한 것은 대부분 치료가 되기보다는 자살로 종결하는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환자가 오면 대부분 가볍게 받으셔야 돼요.

자꾸 정신 질환자를 다루다보면 감염이 되거든요.

감염이 되는 이유는 상대를 도와주겠다는 마음을 내기 때문입니다.

도와주겠다는 생각을 내지 않으면 감염이 안 됩니다.

그냥 가볍게 들을 수 있거든요.

이 자세가 가장 중요합니다.

다음으로는 첫째, 들어주기입니다. 둘째는 공감해주기입니다.

“예, 그럴 수 있겠네요” 이렇게 공감해 주는 겁니다.

셋째는 내가 확실하게 경험한 것,

책에서 본 얘기 말고 내가 겪었거나 내가 경험한 것 얘기해 주기입니다.

“저도 그런 경우가 있었는데 저는 그 때 이렇게 극복했습니다” 라고만 얘기해 주는 겁니다.

“너도 그렇게 해라” 이렇게 말하면 기분 나쁘거든요.

“나는 법문을 듣고 도움이 되었다” 여기까지만 얘기하는 겁니다.

이런 정도로 법문에 인연을 맺어주는 역할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의사선생님과 저는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저는 돈을 안 받는다는 것입니다.(청중들 박장대소하며 웃음)









네, 맞습니다.








이것이 치료 효과에 굉장한 차이가 있습니다.

돈을 받기 때문에 손님이잖아요.

손님은 기분 나쁘게 하면 안되잖아요? 또 잘못 치료해도 안되잖아요?

환자에 대해서 고려를 많이 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까 직설적으로 얘기를 못하게 되는 겁니다.

잘못하면 상처 입을 수도 있고, 잘못하면 반발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스님은 돈도 안 받고, 그 분야에 대해 전문가라는 것도 내세우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그냥 푹 찔러버립니다.

부작용이 조금 생겨도 돈을 안 받기 때문에 별로 시비를 안 해요.

그런데 의사선생님은 저처럼 푹 찌르면 병원이 망할 수가 있어요.(청중들 웃음)

그리고 스님이 치료 효과가 높다고 칭찬이 자자하다고 하는데 반드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저는 무료로 치료해주기 때문에

열 명의 환자 중에 한 명만 치료가 되었는데도

나머지 아홉 명의 환자가 아무런 불평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치료가 된 그 한 명은 굉장히 선전을 합니다.

그런데 병원은 돈을 받기 때문에 아홉 명이 치료되고

한 명이 치료가 안 되어도 치료가 된 사람은 아무도 칭찬을 안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돈 줬으니까 당연하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이 치료가 안 된 한명은 계속 나쁘게 말하고 다니거든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돈을 받은 만큼 명성이 없어져요.

그러나 저는 돈을 안 받는 만큼 명성이 올라가는 거예요.(청중들 웃음)

여러 요소가 있습니다.

무료 진료이기 때문에 스님은 바로 직설적으로 얘기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과 친할 생각도 없고 그 사람을 헤칠 생각도 없고 고려할 필요도 없고

제가 본 대로 그냥 얘기해버리지요.

직설적으로 얘기해도 부작용이 조금 적습니다.

이런 장점이 있지만,

그래도 가장 기본은 상대를 고치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사는 고쳐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잖아요.

그 생각을 내려놓아야 스트레스를 안 받아요.

'내가 가진 의술이라는 것은 굉장히 작은 것이다',

'이건 인간의 병을 치료하는데 모르는 것보다는 조금 낫지만 굉장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이렇게 마음을 가볍게 내어야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살 수 있고

행복하게 의사 생활을 할 수 있고 환자가 왔을 때 스트레스를 안 받습니다.

그런데 자꾸 치료를 해야 한다는 것에 집착을 하게 되면

자기가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돈은 벌지 모르지만 인생이 피곤해집니다.

건강한 사람만 매일 만나도 스트레스 받는데, 맨날 아픈 사람만 만나잖아요.

돈이 벌리니까 참으면서도 하지 얼마나 스트레스 받겠어요?

그러니까 먼저 자기를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환자 생명도 소중하지만 그보다 항상 자기를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를 먼저 지켜내야 해요.

자기를 지켜내야 환자도 도울 수 있고 세상에도 희망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가진 재능은 작다’, ‘내가 저 사람에게 큰 도움은 줄 수가 없다’,

‘그러나 성실히 너의 얘기를 들어줄 수는 있다’,

이렇게 출발해서 조금씩 해나가면 됩니다.

기대치를 내가 스스로 낮추는 거죠.

그러면 환자 치료하는 것도 재미가 있어지고,

‘이 사람은 어떤 얘기를 할까?’ 이렇게 연구를 할 수 있어요.

‘내가 치료하겠다’고 하면 내 생각에 빠지거든요.

이 사람의 얘기를 들어주면서 이 사람은 어떤 이유로 죽겠다고 하는지

저 사람은 어떤 이유로 죽겠다고 하는지,

또 어떻게 얘기를 해주니 스스로 안정을 찾는지 내가 통계를 내어볼 수 있잖아요.

이렇게 계속 해보면 환자를 많이 만나면 만날수록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아니라

내 경험이 자꾸 자꾸 늘어나게 되고 결과적으로 전문가가 되는 겁니다.

그런 관점을 견지하시고 하면 좋겠습니다.








청중들에게 물었으나 잠잠하자

사랑을 할 때는 계산을 하지 말아야 함을 강조하시면서

이렇게 정리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행복하게 해야지 누가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건 없습니다.

부처님도 하나님도 남편도 아내도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습니다.

산이 나를 즐겁게 해주는 게 아니에요.

내가 산을 보고 좋아하면 내가 기쁜 거예요.

내가 바다를 보고 좋아하면 내가 기쁜 거예요. 내가 좋아하면 내가 좋은 거예요.

그런데 우리의 문제는 내가 좋아할 때 ‘너도 나를 좋아해라’ 이런 거래를 한다는 것입니다.

산을 보고 우리가 거래하지 않잖아요.

바다한테도 거래는 하지 않는데 사람한테는 꼭 거래를 해요.

‘나는 이만큼 했줬는데 너는 왜 요만큼 밖에 안 해주냐?’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장삿속입니다.

우리는 장삿속으로 살기 때문에 사랑이 미움의 씨앗이 되는 겁니다.

사랑 자체에는 아무런 부작용이 없습니다.

계산을 하기 때문에 부작용이 일어나는 겁니다.

내가 사랑하면 내가 좋고, 내가 이해하면 내가 좋고, 내가 남을 도우면 나한테 좋습니다.

그런데 왜 도와주고 욕도 얻어먹느냐?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계산하는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외국에 사니까 계산을 하는 것이 한국에서 살 때보다 더 심할 거예요.

왜냐하면 살기가 불안하니까요.

그러나 이 계산하는 마음을 내려놓으면 삶이 지금보다 훨씬 더 자유로워집니다.

자기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가는 것이 자기를 위한 길이고 또 세계를 위한 길이에요.

세계를 위한다고 자기를 괴롭히면 그건 바보입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 남을 괴롭히는 것은 나쁜 사람이고요.

바보가 되거나 나쁜 사람이 되면 안 됩니다.

나도 이롭고 남도 이로운 그런 삶을 우리가 살아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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