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소식 올려봅니다.
스님의 업무를 하실 때에도 많은 지혜를 가지고 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 여서 가져와 봤습니다.
욕을 먹으면서도 선행을 이어오는 모습은 정말 천사와 같네요.
발우공양 후 아침 8시에는 두르가푸르 마을 리더인 ‘사르판지’와 잠깐 미팅을 가졌습니다.
그저께 수자타아카데미 개교기념식에서 만났을 때 두르가푸르 마을 어르신들이
스님을 찾아와 이렇게 요청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학교를 세울 수 있게 맨 처음 땅을 보시한 사람들이잖아요.
이제 우리는 늙었습니다. 일도 못 하겠고, 자식들도 우리를 잘 돌보지 않아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좀 도와주세요.”
이 분들은 22년 전에 스님이 둥게스와리에 처음 학교를 세울 때
마을에서 같이 의논했던 사람들입니다.
스님은 옛날의 공을 생각해서 그냥 듣고만 지나가기에는 마음이 많이 쓰였는지
사르판지와 이번 요청에 대해 의논을 했습니다.
“그저께 동네 노인들이 저한테 와서
‘우리는 늙어서 일도 못하고 있으니 좀 도와주세요’ 이런 하소연을 했잖아요.
그런데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노인들이 정부에서 한달에 500루피씩 지원금을 받아요.
그런 지원을 JTS에서도 좀 받고 싶어요.”
▲ 두르가푸르 마을 리더 사르판지
“정부에서 500루피나 받으면 됐지 왜 JTS에도 달라고 해요?” (웃음)
“스님이 정부보다 우리 마을을 더 많이 도와주고 계시잖아요.”
“그러면 우선 쌀을 25kg씩 노인들한테만 줄게요. 65세 이상만 드릴까요? 70세 이상만 드릴까요?”
“65세 이상은 모두 도움이 필요합니다.”
“65세 이상은 두르가푸르 마을에 총 19가구가 있네요.
제가 명단을 한 명씩 불러볼테니까 맞는지 보세요.
수나데비 71살, 방갈파스 67세, 바잔만지 65세...”
“네, 모두 맞아요.”
“그럼 9시 30분까지 학교로 오면 제가 쌀을 한 포대씩 드릴게요.
이건 이번에 특별히 주는 것이지 전체 마을 주민들에게 주는 구호품이 아니예요.
노인만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마을에 가서 노인들을 데려오세요.”
“감사합니다.”
사르판지는 아주 기쁜 표정을 지으며 노인들을 데리러 마을로 갔습니다.
스님은 곧바로 법당으로 올라가 어제에 이어 인도인 활동가들과
학교 운영에 대한 논의를 계속했습니다.
원래 중학교 1교시 수업을 해야 하는데 수업을 잠시 미루고 미팅 시간을 더 가졌습니다.
▲ 인도인 활동가들과 회의
먼저 최종 결정된 수자타아카데미의 운영 방향에 대해 스님이 정리를 해주었습니다.
“정부에서 앞으로 초등학교를 더 늘리고 잘 운영할 테니까
우리는 정부 학교와 서로 겹치지 않도록 교육하면 좋겠습니다.
이미 작년에 우리가 그렇게 하자고 결정했어요.
옛날에 초등학교를 통해 문맹퇴치하던 것은
이제 유치원을 잘 운영해서 문맹퇴치하는 것으로 대신하는 것이 이제 우리가 할 일이에요.
초등학교는 가능하면 정부 학교로 많이 보내도록 합시다.
그리고 우리가 운영하는 초등학교는 두 가지 성격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하나는 아예 공부 잘 하는 아이들에게 시내의 좋은 사립학교보다 더 잘 가르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예체능 방면과 체육 방면에서 특기를 키울 수 있도록 교육하면 좋겠습니다.
한 반은 공부를 지금보다 더 많이 가르치되, 그건 성적이 되는 사람만 하는 거예요.
나머지는 크게 둘로 나눠서 한 반은 어릴 때부터 예술을 가르칩니다.
오전에는 물론 공부를 하고요.
뭘 하든지 기초 학습은 해야 해요.
우선 힌디어를 읽고 쓸 줄 알아야 하고, 더하기, 빼기, 나누기, 곱하기 같은
기본 셈본을 할 줄 알아야 하고, 사회 상식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공부를 잘 못하는 학생에게 계속 공부만 가르친다면 별 도움이 안 됩니다.
그러니 노래를 잘 부르거나 춤을 잘 추는 사람은
아예 1학년 때부터 오후에는 계속 예능을 가르쳤으면 좋겠습니다.
예능 분야에서는 가야는 물론 비하르주에서도 제일 가는 학교를 만들면 어떻겠습니까? (웃음)
다른 한 반은 체육을 좀 많이 가르치면 좋겠습니다.
태권도, 풋볼, 크리켓 등을 어릴 때부터 가르쳐서 선수로 길러낼 필요가 있어요.
오전은 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2~3시간씩 매일 그렇게 특별수업을 하면 어떻겠어요?
대신에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을 앞으로 우리가 형편이 되면 아예 영어 수업으로 바꾸든지 하고요.
지금 당장 하자는 게 아니라 그런 방향으로 운영을 해가면 어떨까 싶습니다.
일단 큰 원칙을 이렇게 정하면 어떻겠어요? 다들 괜찮아요?”
“예스!”
“알겠어요. 그런데 이런 교육 방향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마을에 정부학교가 운영이 되고 있으니까 정부학교에 가도록 안내해 주세요.”
학교의 운영 방향이 크게 바뀌는 것에 대해 인도인 활동가들도 모두 동의를 표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많은 토론이 있었던 컴퓨터 도난 사건으로 인해 대학생인
주니어 교사들을 그만두게 한 문제에 대해서도 스님이 최종 결론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스님은 어제 미팅 이후 이 문제와 관련해 밤새 많은 생각을 한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런 방향으로 교육을 한다면 특수학교를 운영하는 데 선생님이 더 필요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외부에서 그 분야에 전문가를 시간 강사로 받는 게 나아요.
어제 우리가 의논해봤지만,
노트북 도난 사건으로 그만두게 한 주니어 교사를 그냥 다시 다 받아들이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몇 명만 받아들이기도 어려우니 아예 이대로 가면 어떨까 해요.
여러분들이 한 6개월만 고생하면 될 것 같은데, 한번 해볼 수 있겠어요?”
“할 수는 있는데 많이 힘들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 정도는 한 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오전에는 초등학생들 가르치고,
오후에는 초등학생들이 다 특별수업을 할 테니까 중학생을 가르치면 되고요.
우리가 특별히 하기 어려운 과목은 외부 전문 강사를 초청해 가르치면 되고요.
그래도 부족하다면 스텝을 한 두 명만 더 뽑으면 될 것 같아요.
어제 만장일치로 다시 복직을 시키자는 사람은 한 사람 밖에 없었잖아요.
우선 한 명은 더 뽑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 한 명만 다시 불러요? 부르면 다른 주니어 선생들이 뭐라고 할 겁니다.
전체가 다 다시 참여하면 좋겠습니다.” (인도인 스텝들 모두 웃음)
“어제 세 번이나 투표를 했지만 모두 좋다고 하는 사람이 한 명 밖에 없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다 받아들여요?
학교 운영에 당장 필요해서 한 명만 다시 부른다고 이야기하면 되죠.
눈치 볼 것 없어요.
이 학교는 아이들을 위한 학교지 선생님들을 위한 학교가 아니잖아요.
그런데 자신이 별로 없는 눈치네요.”
“자신 있어요.” (모두 웃음)
“나 혼자서라도 다 가르치겠다 이런 자신감이 필요해요.
주니어 교사들을 그만두게 한 문제는 아직 풀리지 않았으니
원칙적으로는 일단 안 받는 것으로 하되
학교 교육 담당자들과 교장 선생님이 의논해서 결정하면 좋겠습니다.”
스님의 결정에 인도인 활동가들도 모두 동의를 표했습니다.
그러나 표정은 담담해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주니어 교사들이 그만둔 후 시간제 교사들이 충원될 때까지
앞으로 최소 6개월은 인도인 스텝들이 본래 업무와 겸임해서
모든 수업을 도맡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스님은 그동안 수자타아카데미의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을 만한 중요한 발표를 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결정사항을 말씀드릴게요.
닥터 쁘리앙카가 인도로 돌아오면서
이제 전체 운영의 중심을 한국 사람에서 인도 사람으로 바꿀 계획입니다.
지금까지는 각 부문 책임을 한국 사람이 졌는데 앞으로는 인도 스텝이 맡으면 좋겠어요.
원래 계획은 내년에 바꾸려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 여러분들이 다들 건강하고 일도 잘 하니까
1년 당겨서 올해부터 해도 될 것 같아요. 자신 없어요?”
“자신 있어요.” (모두 웃음)
“일단은 기본 안을 내볼 테니 한번 들어보세요.
이렇게 바꾸려면 시간이 좀 걸리니까, 올해는 1년간 연습 삼아 한번 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그래도 당분간 전체 총괄은 보광 법사님이 하실 겁니다. 한국과 연락을 해야 하니까요.
그러나 현장에서의 전체 책임은 닥터 쁘리앙카가 맡을 거예요.
학교 교장뿐 아니라 인도 JTS 책임자로서의 역할도 함께 합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더 내서 같이 연구해봅시다.
우선 1년 이상은 훈련을 계속 더 해야 해요. 꾸준히 훈련하면서 같이 해봅시다.”
이제부터는 인도JTS와 수자타아카데미가 인도 현지 스텝들이 책임자가 되어 운영하기로 된 것입니다.
물론 보광법사님이 한국 연락 업무와 관련해 당분간 총괄 역할을 할 수 밖에 없겠지만
이제 명실 상부하게 닥터 쁘리앙카 교장 선생님의 진두지휘 하에
인도인 스텝들이 각 분야의 팀장으로 임명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한국에서 파견되어 온 봉사자들은 인도인 스텝들을 돕는 보조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학교 운영에 대해 큰 틀에서 중요한 결정을 한 후
스님은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인도인 스텝들은 주로 학교 운영에 필요한 일들을 스님에게 요청했습니다.
먼저 마을개발 파트를 담당하는 바브랄지가 트랙터가 필요하다며 구입을 건의했습니다.
“트랙터가 없어서 자재들을 운반하는데 돈이 많이 들고 있습니다. 트랙터를 구입하면 어떻겠습니까?”
“아직은 공사가 많지 않아서 트랙터가 지금 필요한지 잘 모르겠어요.
우선은 트랙터보다 트럭이 한 대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지금 같은 오토바이 트럭 말고 정식 트럭으로요.
마을 개발을 하려면 벽돌이며 시멘트며 뭘 좀 싣고 다닐 일이 많으니까요.
트랙터는 빌려서 쓰고, 여기 공사가 좀 더 많아졌을 때 트랙터를 구입하면 좋겠습니다.
그 때까지는 트랙터를 빌려서 써보면서 한 달에 몇 번 빌리는지 조사를 해보세요.
예컨대 한 달에 1주일이나 10일을 빌리는데
이게 우리가 구입하는 것보다 더 비싸다고 하면 구입하는 게 낫겠지요.
그런데 한 달에 5번 이하로 쓴다면 빌리는 게 더 쌀 수도 있고요.
이런 식으로 계산해서 해야 합니다.
사무지가 헤?(이해하셨어요?)”
“예.”
“그런데 이런 문제도 있어요. 우리 학교가 이렇게 커지는 건 좋은 일이지만,
우리 주위의 마을은 아직 가난하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차를 비롯해 이것저것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으면 학교와 마을이 자꾸 멀어집니다.
스님이 여기에 좋은 승용차를 타고 보드가야 사람처럼 다니면 어떻겠어요?
그래서 스님은 항상 오토릭샤를 타고 다니잖아요.
어제도 나레스지가 자기 차를 준다고 했지만 안 탔잖아요.
우리한테는 오토릭샤라는 좋은 자가용이 있잖아요. (모두 웃음)
그래서 우리 수행자는 조금 사는 방식이 달라야 해요.
검소하게 살아야 합니다.
마을 주민들을 가난하고 무식하다고 무시하지 않고 항상 함께하려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마을 사람이라도 경우에 없이 막 떼쓰는 것은 받아주면 안 돼요.
예를 들어 노동자들을 무시하지 않고 잘 대우해줘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안 하는 것은 정확하게 지적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경우에 맞지 않는데도 막 항의한다고 겁을 내서 그냥 내버려두면 나중에 문제가 생깁니다.
그렇다고 마을 사람들을 무시해버리면 마을 사람들과 오해가 빚어져서 또 불만이 생깁니다.
우리는 이 마을을 도와주기 위해서 일하는 것인데 마을 사람들과 싸우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 어떤 불만을 제기하면 합리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는 원칙에 맞게 해야 해요.
나이가 많다고 원칙을 무시해도 안 되고, 한국 사람이라고 원칙을 무시해도 안 되고,
계급이나 직책이 높다고 원칙을 무시해도 안 돼요.
예를 들어 내가 팀장이라면 나이가 적거나 경험이 짧아도
어쨌든 내가 이 일을 행정적으로 처리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그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나이 많은 사람은 항상 존경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걸 잘못 이해하면 자기 책임을 다 못 할 수도 있고,
반대로 자기 책임을 다 한답시고 막 해버릴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병원에 나이도 많고 경험도 많은 까미스와르지가 있지만
삼부가 책임을 맡게 되면 행정적인 책임은 삼부가 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까미스와르지도 행정적인 것은 삼부의 방침을 따라야 합니다.
카필데오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삼부는 까미스와르지를 어른으로써 존중해 주면서 일을 해야 합니다.
인드라짓도 마찬가지로 나이도 많고 경험도 많은 카필데오지를 어른으로써 존중해야 합니다.
사무지가 헤?(이해하셨어요?)”
“예스.”
“우리가 살다 보면 이런 게 잘 안 돼요.
연방 수상이나 주 수상이 나이가 젊어도
그 사람이 책임을 맡게 되면 행정적인 건 그 사람을 따라야 해요.
그렇다고 그 사람도 자기가 잘난 척 하면 또 안 돼요.
그건 다만 자기 업무상의 책임이고 직책이기 때문입니다.”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과 어른을 공경하되
책임을 다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말씀에
인도인 활동가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했습니다.
다음은 이번에 새로 마을개발 파트 총괄을 맡게 된 파완이 새로운 제안을 했습니다.
오늘 노인들에게만 쌀을 나눠주기로 했는데,
학교 급식 때 가끔씩 남는 밥을 노인들에게 나눠주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었습니다.
“스님께서 아까 마을 사람에게 쌀을 나누어 준다고 이야기하셨는데,
쌀을 줘도 한 달 치 식량밖에 되지 않으니
이 사람들이 한 달 뒤에는 다시 먹는 형편이 어려워질 것 같아요.
학교에서 우리가 밥 지어서 남는 걸 이 사람들에게 주면 어떨까요?
남는 밥은 지금 학생들한테 한 번 더 주고 있는데,
그 두 번째로 주는 밥을 학생들 대신 이 노인들에게 주면 어떻겠습니까?”
“아주 좋은 생각이에요. 그러나 그것은 좀 신중히 결정해야 할 문제입니다.
노인들은 지금 정부에서 500루피씩 지원금을 받는다고 해요.
그러니 그건 조금 더 검토해 봅시다.
한 번 시작하면 계속 해야 하기 때문에 그래요.
주는 게 문제가 아니라, 계속 줘야 한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러면 처음부터 그 사람들까지 계산해서 밥을 더 해야 해요.
밥이 남을 때만 주면 어떤 날은 주고 어떤 날은 안 주게 되어서 오히려 문제가 있어요.
그러니 이건 조금 더 의논해보세요. 어쨌든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오늘 제가 쌀을 주는 것은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게 아니라
홀리(설 명절)도 있고 하니까 동네 어르신들에게만 한번 선물을 주는 것입니다.
곧 홀리니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는 따로 구호활동이 있지 않아요?”
“1, 2분기 극빈자 지원이 홀리 전에 있습니다.”
“그래요. 극빈자들은 홀리 전에 이것과 관계없이 전체적으로 지원을 해야 할 거예요.
그리고 마을 개발 부문에서 올해 농사가 잘 안 됐다고 하니까,
마을에 쉬람단을 하면서 식량을 좀 공급하는 방안도 생각해 보세요.
‘빠완’이 이제 마을개발 책임을 맡았으니까 잘 해봐요. (모두 웃으며 큰 박수)
우리가 어려운 사람을 돕는 건 좋지만 그게 구걸처럼 되면 문제입니다.
어쨌든 그렇게 되지 않도록만 한다면 저는 어떤 것도 오케이입니다.
둥게스와리에서 자가디스푸르,
두르가푸르 사람들을 우리가 제일 많이 도와주는데도 불구하고
제일 불만이 많은 게 두르가푸르와 자가디스푸르입니다.
기대가 크기 때문이에요.
도와주는 건 좋지만, 그게 기대를 자꾸 높여버리면 나중에는 이게 오히려 갈등의 씨앗이 됩니다.
그러니 그걸 잘 생각해서 해야 해요.
사무지가 헤?(이해하셨어요?)”
“예스.”
“자기가 이제 책임자니까 맡아서 한번 해보세요.
처음에는 도와주면 좋다고 인사하지만 나중에는 막 욕합니다.
이제 욕 잔뜩 얻어먹게 생겼어요.
이런 걸 어떻게 할 건지가 굉장히 어려운 문제예요.
이제 자기도 한번 해보고 욕을 얻어먹어야 해요. 주고도 욕 얻어먹습니다. (모두 웃음)
그러면 이번에는 주기 싫다는 마음이 들 거예요.
한국 사람들도 전에 병원에 근무하는 사람들 중에 무상으로 지원해줬는데
오히려 와서 막 항의하니까 ‘도와주고 욕 먹는 짓을 왜 하느냐?’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돈 주고 물건을 사는 것은 자기가 돈 있으면 사고 없으면 안 사면 되지만,
구호라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그저께 마을 개발 건으로 마을 리더들이 왔는데,
지난 1년 간 44회 열린 회의에 40번 나온 사람도 있고 4번 나온 사람도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40번 나온 사람은 1,000루피를 주고,
나온 회수에 따라 금액을 조금씩 낮춰서 4번 나온 사람은 500루피를 줬어요.
그냥 500루피를 줬으면 ‘감사합니다’ 했을 텐데
나중에 다른 사람들에게 ‘너 얼마 받았어?’ 하고 물어보니까 ‘나는 600루피 받았다’ 한 거예요.
그래서 ‘어, 나는 왜 500루피예요? 다음부터는 안 나올래요’
이러는 일이 생겼습니다. (모두 웃음)
이처럼 균등하게 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오늘도 쌀을 주면 또 문제가 생길 거예요.
한 집에 한 포대씩 주면 혼자 사는 할머니도 한 포대 받고 부부가 있는 집도 한 포대 받으니까
‘우리 집에는 두 개 줘야 하지 않느냐’ 하면서 따져요.
그래서 사람마다 한 포대씩 주면 ‘왜 저 집에는 두 포대고 우리 집은 한 포대냐’ 이렇게 나와요.
파완은 이제 그런 책임을 맡았으니 고생 좀 하게 생겼어요. (모두 웃음)
이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베풀어주고도 칭찬 들으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욕 얻어먹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사무지가 헤?(이해하셨어요?)”
“예스!”
스님이 그동안 어떤 관점에서 구호 활동을 해왔는지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인도인 활동가들은 스님의 지혜로운 말씀에 모두 감탄을 하며 합장을 하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렇게 질의응답까지 모두 마치니 출발해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마지막으로 주니어 교사들이 부재한 가운데
수고가 많았던 인도인 활동가들을 격려하면서 모두에게 용돈을 주었습니다.
“보광 법사님한테 들으니까 주니어 교사들이 그만둔 후에
여러분들이 수업도 많이 하고,
마을 개발팀은 성지 순례객 맞는다고 일을 많이 맡아 고생했다고 들었습니다.
이건 JTS에서 주는 게 아니고 스님이 감사의 마음을 담아 주는 거예요.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스님지, 단야바드!”
10시가 다 되어 바쁘게 법당을 나와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두르가푸르 마을 노인들에게 쌀 25kg 씩을 나눠주었습니다.
노인들은 스님께 감사 인사를 한 후 머리에 쌀자루를 이고 아주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교문을 나갔습니다.
▲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쌀 선물
스님이 오토릭샤에 타고 학교를 떠날 채비를 하자
운동장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 중학생들이 교문 앞으로 뛰어 나왔습니다.
오토릭샤가 시동을 걸고 출발하자 스님은 “잘 지내요” 하고 웃으며 손을 흔들었습니다.
▲ 수자타아카데미를 출발하는 스님
교사들과 학생들, 한국인 스텝들도 손을 흔들며 반갑게 스님을 배웅했습니다.
몇몇 학생들이 눈물을 보이자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수자타아카데미를 출발한 오토릭샤는
먼지를 풀풀 날리며 보드가야에 있는 쁘리야팔 스님의 절에 도착했습니다.
쁘리야팔 스님은 인도JTS의 이사장으로 수자타아카데미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계신 분입니다.
스님은 쁘리야팔 스님에게 이번에 새롭게 결정된 학교 운영 방향에 대해 보고하고
쁘리야팔 스님의 더 많은 관심과 지도 편달을 부탁했습니다.
▲ 인도JTS 이사장 쁘리야팔 스님
“학교 운영의 전체 책임을 인도 사람들에게 넘기기로 했어요.
쁘리앙카가 전체 책임을 맡고, 그 밑에 인도 사람들이 팀장을 하고,
한국 사람들은 이제 서포트 하는 역할을 하기로 했습니다.
회계와 재정은 아직 한국 사람들이 맡기로 했고요.
보광 법사님은 행정적인 업무 보다는 수행 지도를 중심으로 하게 될 것 같아요.
인도인 스텝들이 아직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지만,
조금씩 훈련시키고 교육시켜 나가겠습니다.
학교는 쁘리앙카가 책임지지만 인드라짓이 교감이 되어서 사실상 교육을 책임지고,
유치원은 반제이지가, 초등학교는 아제이가, 산넘어 분교는 카필데오지가,
기획과 대외활동은 아미타부가 맡기로 했어요.
병원은 삼부가 팀장을 맡고,
까미스와르지는 선배이지만 행정 업무가 어려워서 의사로서 역할만 하기로 했어요.
마을 개발은 빠완이 책임을 맡고,
그 밑에 건축 파트는 바브랄지가, 마을 개발은 아룬지가 맡았습니다.
이렇게 임명을 마쳤습니다.
물론 초기에는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들끼리 좀 갈등이 있지 않겠나 싶어요.
그러나 그런 과정 속에서 어쨌든 업무를 익혀야 합니다.
그리고 학교 운영에 대한 원칙도 전에는 초등학교 중심으로 운영했는데
초등학교는 이제 정부학교에 역할을 대부분 넘기고,
전체 둥게스와리 마을 사람들을 위해서는 유치원을 집중적으로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현재 15개 마을에서 14개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조금 더 지원도 하고 운영도 잘 하겠습니다.
정부학교가 있는 곳은 모두 정부학교로 보내고,
정부학교가 없는 곳만 수자타아카데미에서 받기로 했어요.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은 집중적으로 공부를 시키고,
나머지는 공부를 많이 시킬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하나는 예술 학교로 운영해서 오전에는 수업하고
오후에는 외부에서 강사를 데려와서 예술을 배우는 겁니다.
그래서 가야나 비하르주에서 공연을 가장 잘 하게 되면
프라이드가 좀 생기기 않겠습니까.
다른 하나는 체육 교육을 강화하려고 해요.
태권도, 축구, 크리켓을 많이 연습해서 대회에 나가 상도 받으면
자존심을 키워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중학교에 들어갈 때도 공부할 아이들은 계속 공부를 시키고,
예술이나 체육을 할 아이들은 그 쪽으로 계속 재능을 개발할 수 있게 진로를 열어주는 겁니다.
그리고 취직을 시켜주기 위해서는 기술을 가르쳐주면 좋겠어요.
중학교부터는 컴퓨터를 가르치는 교실을 운영하고,
학교 안에 예술이나 체육활동을 할 수 있는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요.
큰 방향은 이렇게 잡았습니다.”
“스님이 생각하시는 방향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쁘리야팔 스님이 두 달에 한번씩은 학교에 오셔서
사업 보고도 받으시고 지도도 해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스님이 바쁘셔서 못 오시면 팀장들이 스님께 찾아와서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스님의 요청에 쁘리야팔 스님은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스님이 안 계시는 동안 쁘리야팔 스님이 그 역할을 대신해 주실 것을 기대하니
무척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스님은 쁘리야팔 스님에게 보시금을 전달한 후 합장으로 인사를 하고 절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나레스지가 점심 식사를 대접해 주어서 감사히 먹은 후
나레스지와의 오랜 인연에 대해 잠시 담소를 나누다가 보드가야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보드가야 공항에는 보광 법사님과
닥터 쁘리앙카 교장선생님이 마지막까지 스님을 배웅해 주었습니다.
스님이 게이트로 들어가려고 하자 갑자기 닥터 쁘리앙카지가 눈문을 보였습니다.
옆에서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가보다” 라고 하자
스님은 “고생은 무슨! 얼마나 재미있어” 하고 웃으며 닥터 쁘리앙카지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습니다.
▲ 울먹이는 쁘리앙카지를 격려해주는 스님
오후 2시 45분에 보드가야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바라나시 공항에 잠시 머물렀다가
약 4시간을 비행하여 방콕 공항에 도착했고,
방콕 공항에서 2시간을 보낸 후 밤 11시 10분에 다시 인천행 비행기에 올라탔습니다.
새벽 6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한 스님은 곧바로 서울 정토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하자 공동체 상주 대중들이 마당까지 나와 스님을 마중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법당에서 스님께 삼배로 새해 인사를 올렸습니다.
스님은 "잘 다녀왔어요" 하고 인사를 한 후
곧바로 9시부터 스님을 뵙고자 찾아온 손님들이 있어 연이어 미팅 일정을 가졌습니다.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는 인도 불가촉 천민 마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수자타아카데미를 설립하고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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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복 많이 지으십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