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스님. 저는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엄마가 저를 많이 미워하시는데요, 그 이유를 물어보면 ‘잘 모르겠다.
그냥 네 얼굴만 보면 짜증이 난다’고 말씀하십니다. (청중 웃음)
엄마는 제가 어릴 때 많이 때리셨고, 제가 스무 살이 넘어서도 때리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차츰 신경이 예민해지고 소화도 잘 안되고, 만성적으로 입도 바짝 마르곤 합니다.
요즘에는 눈 안쪽에도 이상이 생겨서 하던 공부도 포기했습니다.
아무래도 건강 문제가 있다 보니, 앞으로 뭘 하면서 먹고 살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고 제 삶에 대한 걱정이 많습니다.
뭘 먹고 살긴요, 밥 먹고 살죠. (청중 웃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리 가난해도 대한민국에서 먹고 살 밥은 있습니다.
제가 특히 눈이 안 좋다 보니 컴퓨터를 보는 직업은 구할 수가 없습니다.
요즘 웬만한 직업은 컴퓨터 화면을 보는 일이 일상적인데, 일단 그런 일자리는 저에게는 다 제외되어야 해서 속상합니다.
그렇다고 힘쓰는 일을 하자니 몸이 약해서 그것도 조건이 안 되고요.
근래에 손으로 만드는 것을 배우고 있는데 또 이쪽으로는 그리 재능이 없는 것 같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안과에 가보셨어요?
안과에 가봤는데 치료를 못한다고 그랬어요.
눈 안쪽에 소위 작은 구멍이 생기는 증상인데,
수술을 해도 후유증이 심한 병이어서 의사선생님의 소견은
수술보다는 앞으로 악화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지내라는 쪽이었어요.
그래요. 고민이 되는 건 이해가 돼요. 그런데 우리나라에 두 눈 다 안 보이는 시각장애인은 얼마나있을까요?
생각보다 많을 것 같습니다.
그분들은 눈이 안 보이지만 나름대로 다 살아갑니까, 죽는 방향을 택합니까?
살아갑니다.
질문자의 상황이 그분들보다 나아요, 못해요?
그분들보다 나아요.
그분들은 더 어려운 조건에서도 잘 살아가고 있는데, 질문자가 못살 이유가 없잖아요?
네. 그런데 저는 아직 젊은데 상황이 이렇다보니…
그러면 눈이 안 보이는 분들은 모두 나이가 많아서 그럴까요?
질문자보다 더 어린 아이들도 많아요.
지금 질문자가 원하는 만큼 상황이 좋지는 않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렇지만 질문자의 건강이 객관적으로 나쁘다고만 말할 수는 없어요.
저는 제 건강에 대해 하루 종일 걱정합니다.
스스로 자기 건강이 안 좋다고 생각하니까 자꾸 걱정이 되는 거예요. 질문자의 건강은 나쁜 편이 아니에요.
지금 원하는 만큼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쁘다고 말할 수도 없어요.
이해를 돕기 위해서 다른 부분들도 살펴봅시다. 질문자는 키가 큰가요, 작은가요?
작아요.
질문자가 원하는 만큼 크지 않다고는 할 수 있지만, 객관적으로 작다고는 할 수 없어요. 이 말 뜻은 이해하시겠어요?
네.
그래요. 여기 있는 이 물병에는 지금 물이 많아요, 적어요?
"…"
질문자가 원하는 만큼 물이 많지는 않을지 몰라도, 물이 적다고는 말할 수 없어요.
그런 것처럼 질문자의 건강도 질문자가 원하는 만큼은 좋지 않지만, 객관적으로 건강이 나쁜 건 아니에요.
질문자가 원하는 만큼 시력이 좋지 않은 것은 맞지만, 안 보이는 사람과 비교하면 시력이 좋잖아요.
그리고 질문자가 원하는 만큼 키가 크지는 않지만, 결코 작은 키라고 할 수는 없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질문자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 폭이 질문자가 원하는 만큼은 아니지만, 결코 폭이 좁은 것은 아니에요.
예를 들어, 우리 부모 세대는 농촌에서 태어나서 평생을 농촌에서 지내셨습니다.
그러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몇 가지일까요?
농사짓는 것 한 가지요.
한 가지밖에 없지요? 그래도 잘 살았습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그에 비하면 선택이 여러 가지가 있는 편이잖아요?
그러니 질문자가 결코 직업 선택의 폭이 좁은 것도 아니고, 건강이 나쁜 것도 아니에요.
주변 사람들과 비교해서 ‘시력이 좋지 않다, 컴퓨터를 잘 못쓴다, 키가 작다’라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그런 생각은 질문자가 질문자보다 좋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하고만 자꾸 비교를 해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이럴 때 좋은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이곳 부산에서 가까운 데 거제라는 곳이 있어요.
그곳에 가면 ‘애광원’이라고 하는 지체부자유아 시설이 있습니다.
그곳에 가서 질문자가 6개월만 자원봉사를 하면,
만약 질문자가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하게 되고,
절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부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게 되고, 절에도 교회도 안 다닌다면 조상님께 진심으로 감사하게 됩니다.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이 정도의 건강, 이 정도의 키, 이 정도의 지능, 이 정도의 외모를 갖는 것이
정말 고마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자원봉사를 하면 그런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와요.
봉사를 통해 그런 마음을 체험하게 되면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들이 점점 덜 신경 쓰이게 될 거예요.
지금 주어진 것에 대해 항상 감사하게 되기 때문이에요.
엄마와 아빠는 사이가 어땠어요?
사이가 나빴어요.
엄마하고 누구하고 사이가 제일 나빴어요?
엄마와 아빠, 그리고 엄마와 저 이렇게 사이가 안 좋았어요.
질문자는 엄마를 더 닮았어요, 아빠를 더 닮았어요?
엄마는 제가 아빠를 똑 닮아서 둘 다 싫다고 말씀하세요. (청중 웃음)
이제 스님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아시겠어요? 엄마 입장에서는 아빠가 미운데,
질문자 하는 행동이 아빠와 비슷하니까 질문자도 미워하는 거예요.”
네, 저는 스님의 동영상이나 법문도 듣고 또 개인상담사 분들께도 비슷한 이야기 들어서
전혀 모르는 것도 아니고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입장이 진정으로 이해가 되는 건 아니에요.
엄마는 본인의 인생이 불행해진 것이 남편 때문이라고 생각하니까 남편만 보면 짜증이 나고 미워지는 거예요.
그런데 질문자는 그 남편의 딸이란 말이에요.
그러니 엄마 입장에서는 ‘그 미운 사람’의 딸이니까 질문자도 보기가 싫어지고 미워지는 거예요.
그러니 왜 거기에 태어났어요, 다른 데 태어났으면 됐잖아요. (질문자와 청중 웃음)
그리고 질문자가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도 엄마한테는 남편과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거예요.
그러니 엄마는 성질이 나는 거예요.
그런데 남편한테 욕하거나 남편을 때릴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 대신 질문자한테 욕을 하고 질문자를 때린 거예요.
그러니 질문자는 엄마가 욕하거나 때릴 때마다 항상 아빠를 대신해서 엄마에게 ‘아빠 같이 생겨서 죄송합니다,
아빠 같이 행동해서 죄송합니다, 아빠 피를 받아서 죄송합니다’하고 사과해야 합니다. (질문자와 청중 웃음)
엄마가 짜증낼 때마다 ‘왜 나를 미워하느냐?’라고 따지지 말고, ‘아빠 같아서 미안합니다’하고
엄마의 심정을 이해해서 엄마한테 반성을 하면 우선 질문자의 응어리가 풀어집니다.
그리고 항상 마음속으로 ‘엄마, 아빠랑 같이 사느라 힘들었지?’하고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기도를 하면 좋아질 거예요.
굳이 엄마 앞에서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아도 돼요.
그런데 마음을 그렇게 먹고, 엄마가 짜증낼 때마다 엄마의 심정을 헤아리며 그렇게 기도하면 차츰 좋아질 거예요.
오늘 두 가지 이야기했지요?
첫 번째는 내가 원하는 만큼은 아닐지라도 내가 결코 작은 사람도 아니고,
나의 건강이 결코 나쁜 것도 아니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 선택의 폭이 좁은 것도 아니다.
비록 원하는 만큼은 아닐지라도 나보다 작은 사람에 비해서는 키가 크고,
나보다 눈이 안 보이는 사람에 비해서는 시력이 좋고, 옛날 사람에 비해서는 직업 선택의 자유가 많아요.
그러니 나는 우선 괜찮은 사람이지요?
네.
그래요, 우선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하고 스스로 알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두 번째는 엄마와 관계에서 엄마가 짜증낼 때마다 덩달아 짜증내거나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아빠 같이 생겨서 미안해, 아빠 같이 행동해서 미안해’하고 참회하면서
‘엄마, 아빠랑 같이 사느라 고생했지, 많이 힘들었지? 엄마가 얼마나 힘들면 저러실까’하고
엄마를 이해하는 마음을 내면 우선 질문자의 마음부터 편안해집니다.
마음이 편안해지면 예민한 신경이 차츰 가라앉게 됩니다.
그러면 눈도 조금씩 나아질 거예요.
감사합니다. (청중 박수)
가느다란 목소리로 질문을 했던 여자 분의 얼굴이 밝아져서 인사했습니다.
스님과 꽤 긴 대화를 이어나가면서도
차분히 대화에 집중하던 얼굴이 ‘감사합니다’ 인사하는 얼굴에 가볍고 편안한 기색이 느껴졌습니다.
스님은 청중을 향해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젊은이의 고민이 이해는 되시죠?(청중을 향하여)
네! (청중)
네, 우리가 원하는 만큼 되지 않는 건 맞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우리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에요.
‘지금 주어진 조건에서 내가 어떻게 주인이 되는가’가 핵심입니다.
눈이 안 좋다고 하지만 그래도 전혀 보이지 않는 사람에 비하면 좋은 눈이고,
건강이 안 좋은 편이라고 하지만 지체부자유자보다는 굉장히 유리한 조건입니다.
지체부자유 시설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다보면 지금 나에게 주어진 건강은 정말 하늘이 내려준 복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될 거예요.
그렇게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에 대해 자신감이 생깁니다.
그것을 봉사의 공덕이라고 해요.
그리고 엄마와의 갈등에서도 내 입장만 생각하니 어머니에 대한 미움이 생겨나지만,
어머니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삶이 얼마나 피곤하셨겠습니까? 엄마를 사랑한다면 이제 엄마를 좀 생각해드려야죠.
‘저런 아빠를 만나서 참 살기가 힘들었겠다.
아빠한테는 악도 못 쓰고 주먹질도 못했을 텐데 그나마 나한테는 할 수 있으니,
나한테 분이라도 풀고 사세요’라고 생각을 탁 바꾸어 버리면 어머니가 왼뺨을 때려도 오른뺨을 내줄 수 있게 됩니다.
‘어머니, 한 대 때려서 분이 풀립니까, 두 대는 때리셔야죠’하면서요. (청중 웃음)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스님, 보통 사람이 그걸 어떻게 합니까?’라고 되묻는 사람들이 있어요.
누구든지 이렇게 하면 성인(聖人)이 될 수 있는데, ‘그걸 어떻게 합니까?’라고 묻는 것은
곧 ‘성인이 되기 싫어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본인 스스로 성인이 되기 싫어서 중생으로 사는 것은 본인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나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나’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그 분들도 하셨는데 나라고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내가 주인이 되는 생각을 하고 그렇게 행동하면 바로 성인이 되어버립니다.
왜 눈앞에 성인, 부처의 길이 있는데 굳이 중생의 길을 가려고 해요?
그렇게 늘 우리가 처한 삶의 현실을 어떠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그 관점을 어떻게 주인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을 두고도 주변 강대국인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탓을 하면 그 입장이 초라해집니다.
그런데 이런 조건 속에서도 ‘식민지 시대보다는 낫다,
독립운동은 목숨을 걸고 했어야 됐는데 통일운동은 목숨까지는 안 걸어도 된다.
군사정부 때보다는 낫다.
민주화운동은 자칫 감옥에 가기 일쑤였는데
통일운동은 감옥에는 안 가도 된다’라고 현재의 유리한 조건에 초점을 맞추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그리고 1980년대의 민주화운동은 대개 20대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이끌었는데,
학생들이 군사정권을 민주사회로 바꾸는 게 쉽겠어요,
아니면 사회에 자리 잡은 어른들이 통일운동해서 통일을 해내는 게 쉽겠어요? 왜 대답을 안 해요? (청중 웃음)
그러니 ‘안 된다’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뭐든지 안 될 조건이지만,
‘된다’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되고도 남는 조건입니다.
이런 강연에서도 개인 질문과 사회 질문을 함께 이야기하는 이유는
개인 문제와 사회 문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개인의 문제 속에서도 세상사는 지혜를 찾을 수 있고,
세상의 문제를 가지고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내 삶의 지혜를 찾을 수 있습니다.
마무리 말씀 참 좋네요
가정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하게되는 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