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시드니 외곽에서 20명의 직원들과 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직원들은 20대부터 60대까지 연령층이 다양하고요,
저는 직원들을 대할 때 때로는 고용주, 때로는 친구, 때로는 의료인이자 같은 동료로서 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직원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간혹 제가 호의로 베푼 행동들이 독이 되어 돌아올 때도 있어서 속상합니다.
이런 인간관계를 통해서 많이 배우고 있지만 회의감도 많이 느낍니다.
이 세상에는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동지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리더로서 자질이 부족한 것도 하나의 이유겠죠.
제가 어떤 자세로 직원들을 대해야 할지 조언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조금 막연한데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느냐는 질문은 좀 막연한 질문이에요.
막연한 질문에는 ‘뭐든지 상대가 하자는 대로 해 주면 좋아할 것이다.’
이렇게 막연한 대답밖에 해줄 게 없어요.(모두 웃음)
과연 그것을 질문자가 할 수 있겠느냐가 문제지요.
지금 질문자가 갈등하는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한 가지만 예를 들어서 얘기해 보세요.”
“같이 일하던 매니저가 병원 돈을 많이 가지고 나간 일이 있었고요.
또 저희 병원은 직원들에게 원래 임금보다 30%를 더 주고 있고,
또 직원들에게 필요한 치료는 무료로 해 주고 있으며
직원들이 필요하다고 하면 금전도 어느 정도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직원들은 자기네가 도움이 필요할 때는 도움을 요구하다가도
병원 측이 조금 도움이 필요하다거나 제가 조금만 실수를 해도 욕을 많이 하는,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저희 병원이 있는 동네가 작다 보니까 조금만 잘못해도 좋지 않은 소문이 금방 돌기도 합니다.
그래서 많이 속상했습니다.”
“좋게 말하면 질문자는 좀 착하고, 나쁘게 말하면 좀 어리석네요. 착하고 어리석은 게 문제예요.
질문자는 의사이니까 인간의 정신작용에 대해서 잘 아시겠지요?
예를 들어 제가 질문자한테 그냥 쓰라며 한 달에 100불을 줬다면 질문자는 처음에는 기쁘겠지요?
그리고 다음 달에도 또 100불을 주면 기쁘겠지요? 그 다음 달에도 또 100불을 주면 기쁘겠지요?
그런데 이렇게 열두 달을 계속 100불을 주었다면,
그래서 1년이 경과했다면 그 기쁨의 크기가 처음 받았을 때와 두 번째,
세 번째 받았을 때와 열두 번째 받았을 때가 같을까요? 점점 감퇴할까요?”
“감퇴하겠지요.”
“이게 우리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럼 100불 주는 일을 1년 넘게 계속하면 어떻게 될까요? 기쁨이 감퇴될 뿐만 아니라 이제는 불만이 생깁니다.
‘계속 100불이야?’, ‘또 100불이야? 이제 200불 줄 때도 되지 않았냐?’ 이렇게 불만이 생긴단 말이에요.
이것은 마약과 똑같습니다.
마약을 1그램 투약했을 때 기분이 좋았다면 매번 1그램만 투약하면 기분이 계속 좋아야 될 것 아니겠어요?
그러면 중독은 안 될 텐데, 1그램을 투약했을 때 100이라는 기분을 느꼈다면 다음에 1그램을 투약하면 95로 떨어집니다.
그래서 100을 유지하려면 투약하는 양을 자꾸 늘려야 해서 결국 심각한 장애를 유발하게 됩니다.
그것처럼 질문자가 직원들에게 그런 혜택을 주면 직원들이 처음에는 좋아하겠지요.
그런데 1년, 2년을 경과하면 직원들은 그런 혜택을 주는 거나 안 주는 거나 아무 차이를 못 느낍니다.
그렇지 않다면 선진국 국민들은 아무 불만이 없어야지요. 그런데 선진국 국민들이 더 불만이 많잖아요.
후진국 국민들이 보기에는 ‘사회보장제도가 잘되어 있어
엄청난 혜택을 받으면서 도대체 뭐가 불만이냐?’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정작 선진국 국민들은 안 그런 거예요.
거기에 기초해서 또 다른 기대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질문자가 그렇게 직원들을 배려하려면 처음부터 이런 사람의 마음을 미리 알고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질문자는
‘내가 혜택을 베풀어주면 저들은 나에게 고마워 할 거다’ 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 갈등에 빠진 거예요.
질문자는 인간의 마음 작용의 원리를 몰랐던 거예요.
어리석었던 거죠.
예를 들어 볼께요. 저는 가난한 인도 마을에 가서 초등학교도 못 가는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지어서 공부를 시켰습니다.
학교까지 지었을 뿐만 아니라 집집마다 찾아가서 ‘학교에 오너라’ 말해도 안 오는 애들한테
사탕까지 줘가면서 온갖 노력을 다해서 아이들을 학교에 다니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마을주민들이 무척 고마워했어요.
그런데 이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안 다녔을 때는 아무런 불평이 없었는데,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니까 중학교도 가고 싶어진 겁니다.
만약 이 때 제가 중학교를 안 보내주면 아이들은
‘그래도 초등학교라도 다닐 수 있게 해 줘서 참 고마웠다’ 라고 생각할까요? 중학교를 안 보내주는 불만이 생길까요?”
“불만이 생기겠지요.”
“예. 그래서 중학교를 보내줬더니 고등학교도 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생겼어요.
그 아이들을 지원해 주지 않으면 또 어떻게 될까요? 중학교에 안 보내주는 불만이 클까요?
고등학교에 안 보내주는 불만이 클까요?”
“고등학교에 안 보내주는 불만이 더 크죠.”
“예. 또 고등학교 졸업 후에 대학을 안 보내주면 대학을 안 보내주는 불만이 고등학교 안 보내주는 불만보다 훨씬 큽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고등학교 졸업까지 할 정도면 이미 여태껏 도움을 줬던 사람을 오히려 해칠 수 있는 역량이 생길 나이입니다.
그래서 ‘인도에 와서 학교까지 지어놓고 좋은 일 한 것 같던데,
사실 좋은 일 한 게 뭐가 있어? 우리 고등학교, 대학교도 안 보내줬으면서.
그리고 한국에서 가져온 돈, 그거 다 우리한테 제대로 썼나? 자기네가 먹은 건 없어?’ 라고 고발할 수도 있게 되는 겁니다.
우리가 그 아이들을 가르쳐놓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자선 사업가들은 자기네가 좋은 일을 하기 때문에
결과가 칭찬으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고 일을 하다가 결국 실망해서 떠납니다.
그런데 저는 아이들을 공부시키면 시킬수록 저하고 더 큰 원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일을 시작해요.
저는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질 때 저 사람을 건져내면 틀림없이 제 보따리 내놓으라고 할 걸 알고 건져줘요.
인간의 의식구조가 그렇게 되어있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국 ‘내 보따리 내놔라’ 할 걸 알아도 물에 빠진 사람은 건져야 돼요? 안 건져야 돼요?”
“건져야 됩니다.”
“예. 보따리를 물어내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물에 빠진 사람은 건져야 됩니다.
구호활등은 그런 관점에서 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질문자더러 어리석다고 하는 이유는,
질문자가 직원들을 도와주려는 한 건 착한 마음이었으나
그것이 불만이 되어서 돌아올 거라는 예측은 못 했기 때문입니다.
직원들이 불만을 갖는 걸 당연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럼 아예 안 도와줘야 할까요? 보통 사람들은 그러면 ‘안 도와주겠다’ 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가 나의 원수가 되더라도 배우지 못한 아이는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저항을 할망정 그렇게라도 해서 제 밥그릇을 찾아먹을 수 있도록 가르쳐야 돼요.
그 화살이 설령 저한테 오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에요.
그러니 구호사업은 오래하면 오래할수록 칭찬이 커질까요? 비난이 거세질까요? 비난이 거세지고 저항이 따릅니다.
그렇다는 걸 처음부터 예측하면 ‘저항이 더 셀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덜 세네?’ 싶어서 오히려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어지간한 저항에는 눈도 깜짝 안 하는 거예요.
마을에서 주민들이 와서 저한테 뭐라 뭐라 해도 저는 ‘그래, 그래. 알았다. 그런 불만이 있다는 건 알겠다.
그래도 나는 당신들의 불만을 다 들어줄 순 없다. 어쩔래?’ 이런 식입니다. (모두 웃음)
여러분들이 열심히 자녀를 키우고 공부를 가르쳐도 아이가
고등학교 때 ‘유학 가겠다’ 할 때 안 보내주면 아이는 부모한테 항의합니다.
여태까지 밥 먹여준 건 온 데 간 데 없이 유학 안 보내준다고 항의하는데,
그럴 때 여러분들은 그걸 당연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웃으면서 ‘유학 가고 싶다고? 그거 참 좋은 생각이다. 잘 가’ 이러면 되는 거예요.
‘돈은요?’ ‘없다.’ 이러면 되는 거고요.
그럴 때 아이하고 싸우면 안돼요.
아이하고는 싸울 필요가 없어요.
‘그래, 잘 갔다 와’ 이러면 되는 거예요. (모두 웃음)
‘나는 돈이 없으니까 부모가 좀 도와줘야 되는 거 아니에요?’
‘맞아. 그런데 부모는 자식한테 기본적인 먹을 것과 기본적인 교육만 제공하면 되지 유학까지 보내줄 의무는 없는 거야.’
‘다른 부모들은 유학도 보내주던데요?’
‘그래, 나는 그럴 형편이 안되는데 어떡하니?’
‘그럼 나를 왜 낳았어요?’
‘그럼 너는 그 집에 태어나지 왜 우리 집에 태어났니?’
이런 식으로 대화하면 돼요.
해 줄 건 해 주되 안 해 줄 건 ‘알았다. 너 좋은 대로 해라’ 이렇게 딱 선을 그으면 되지 그걸로 싸우면 안 됩니다.
질문자가 베푼 건 베푼 거고, 직원들이 저항할 권리가 있는 건 또 그것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비리를 캐고 저항할 권리가 있는 거예요.
그런 것을 알고 인생을 살아야 되는데, 질문자는 환자만 치료할 줄 알았지 세상 물정은 잘 모르셨네요.(모두 웃음)
질문자가 고민이라고 말하는 그런 문제는 사실 아무 일도 아니에요.
그런 경우에는 웃으면서 ‘그래, 그래’ 이러면서 그냥 당연하게 받아들이세요.
‘모든 인간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 투쟁할 권리가 있다’ 이렇게 생각하시면서요.
내가 베풀었기 때문에 너는 영원히 나에게 복종해야 된다, 이런 건 없어요.
많이 베푼다고 반드시 보답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도 안돼요.
부모가 자식한테 투자하는 것보다 더한 베풂이 어디 있습니까? 없지요.
그런데 부모는 주로 누구한테 욕을 얻어먹습니까?”
“자식들이요.”
“그래서 스님은 현명하기 때문에 자식을 안 키우는 거예요.(모두 박장대소)
자식은 죽어라고 키워봤자 나중에 욕 얻어먹을 일밖에 없다는 걸 알거든요.
여러분들도 그런 이치를 아셔야 돼요. 하하하. (모두웃음)
여러분들은 그걸 모르고 자식을 키우니까 ‘죽어라 키웠더니 원수가 따로 없다’ 라고 하는 거예요.
옛말에 ‘집안 재산을 파괴하는 오적(五賊) 가운데 하나가 아들’이라는 말이 있듯이 베풀수록 적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예. 잘 이해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