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린이집을25년 간 운영한 가정 어린이집 원장입니다.
이번에 경남에서 공공형 어린이집을 국가수준의 우수한 보육시설로 선정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전 선정과정에서는 어느 정도 이상의 점수가 되어야 신청을 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점수와는 상관없이 신청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9월 말에 선정 결과 발표가 있을 거라던 당초 일정과는 달리
10월로 넘겨서 발표가 됐는데, 결국 제가 운영하는 곳은 선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실 조금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시(市)에서도 제게 가능성이 있다는 희망을 줬었고, 저도 내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정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선정 기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났고,
선정된 곳들을 다 검색해 봐도 그 공공형 선정 기준에 다 들어맞는 게 아니어서
제게 여러모로 용납 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관계 기관에 전화를 했더니 ‘보건복지부 지침대로 한 것이다, 선정 점수대로 결과를 선정했다’고만 했습니다.
물론 저는 거기에 따를 수밖에 없지만 제가 피상적으로 결과만을 봤을 때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들이 너무 많아서
관계자한테 다시 전화를 했더니 시·군·구와 농어촌에 가산점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성상구에서 어린이집을 하고 있는데,
사실 가정 어린이집은 민간과는 달리 선정 기준에서는 점수를 잘 내기가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도 이번에는 점수와 상관없다고 하여 신청을 했고,
성상구의 네 군데에서 모두 제가 유일하게 될 거라고 예상했는데 저마저도 안 되고 나니 허탈합니다.
여전히 용납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현재 보건복지부에 질의를 해 둔 상황인데,
전화를 해도 ‘네, 네’라는 대답만 합니다.
상투적인 얘기 밖에 할 수 없어서 그런다는 것을 알지만,
동시에 공적인 일에 공정함이 없었다는 점에 대해서 자꾸 분노가 올라옵니다.
그리고 제 자신도 이런 일에 부딪치면 요목조목 따져가면서 조리 있게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저도 제 안에 억눌린 분노가 자꾸 올라와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그만 싸움으로 번지곤 합니다.
그런 저를 바라보고 있자면, 그래도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름대로 불교를 믿으면서 수행도 해왔는데
이런 일에 부딪쳐 분노는 분노대로 올라오고 그 분노에 놀아나는 저를 발견할 때마다 한심합니다.
한심한 저를 바라보면 또 우울해지고, 그래서 오늘 스님을 뵙고 이 문제에 대해 꼭 여쭈어보고 싶었습니다.”
“네. 우선 기대를 많이 했는데 선정이 안 되어서 많이 마음이 상했겠다 싶어요.
그런데 그것 당첨되는 것보다 오늘 질문에 당첨되는 게 훨씬 더 나은 거예요. (모두 웃음과 박수)
우선 질문자가 기대를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특히나 실망이 크고, 분노까지 겹쳐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점수가 되어야 된다, 뭐가 되어야 된다는 등 조건이 까다로웠거나,
주변에서 ‘현재 가지고 있는 시설로는 안 될거야’ 등 그리 희망적이지 않은 반응들이었다면 떨어져도 기분은 안 좋았겠지만
그래도 그걸로 끝이었을 것이고 만약 되었다면 오히려 기분이 아주 좋았을 텐데,
이번에는 기존에 있던 신청 자격도 폐지를 한데다가 주변에서도 가능성이 있다는 말들을 하니까
질문자 혼자서는 속으로 거의 되는 줄 알았는데 막상 안 되니까 기분이 더 나쁜 거예요.
이 점은 충분히 이해가 돼요.
사실 우리 주변의 많은 일들을 보면 늘 기대와 현실 사이의 차이로 인해 우리에게 실망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남편의 능력이 100인데 내가 이 사람을 잘 몰라서 50밖에 안 되는 줄 알았다고 해봅시다.
그래서 결혼할 때는 그다지 기대도 하지 않은 채 결혼했는데, 막상 살아보니까 남편의 능력이 100인 거예요.
그러면 결혼 생활이 아주 좋아집니다.
애초에 기대가 낮았던 반면 능력이 좋으니까 살면 살수록 남편이 더 좋아져요.
반대로 남편의 능력은 똑같은 100인데,
연애를 하거나 중매를 할 때 성격도 숨기고 옷도 잘 입고 서비스도 잘해서 내가 기대를 200을 하게 되면,
막상 살아보면 능력이 100밖에 안 되니까 이번에는 완전히 속은 것 같고 결혼을 잘못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 사람은 똑같은 100인데, 이처럼 기대가 크면 실망이 커지고
기대가 작으면 만족이 커진다는 것은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진리입니다.
그래서 제가 가끔 즉문즉설에서도 ‘남이라고 생각 하세요’라고 할 때가 있잖아요?
남처럼 생각하라는 게 무슨 의미일까요? 바로 기대를 버리라는 거예요.
기대를 가지고 있으면 못난 사람같이 느껴지지만 기대를 버리고 보면 사람이 괜찮아 보입니다.
그러니 그런 경우에는 꼭 법적으로 이혼하지 말고
마음에서만 이혼을 하고 같이 살면 여러 가지로 이익이 생깁니다.(모두 웃음)
그런데 내 남편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속에 ‘당신은 이래야 돼’하는 기대가 여전히 있으니까 결국 같이 못살게 돼요.
그러니 남편이라고 생각할 때 이익이 있겠는지 남이라고 생각할 때 이익이 있겠는지를 잘 따져봐야 해요.
즉, 남이라고 생각하면 기대를 전혀 하지 않으니 50이라는 이익이 있는 사람도
내가 남편이라고 100을 기대하면 50이 부족한 사람이 되는 거예요.
한국 사람들은 경제 발전에 비해 행복도가 많이 떨어지는 편입니다.
그 이유로 국민성의 측면에서는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어요.
첫째, 성격이 급하다. 성격이 급하기 때문에 짜증이 많아요. 둘째, 욕심이 많아요.
이 세상에 욕심 없는 사람이 없지만, 주변에 있는 나라인
일본과 중국과만 비교해도 또 서양인들과 비교해도 욕심이 많은 편입니다.
그래서 불만이 많습니다.
셋째, 자기 고집이 센 편이에요. 그래서 갈등이 많아요.
물론 개인별로 차이가 나겠지만 세계를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보면 평균적으로 이런 경향을 보입니다.
성격이 급하다보니 화가 많이나고 , 그러다 보니 짜증을 많이 내요.
또 욕심이 많다보니 자기 기대만큼 잘 되지 않고 그러다보면 불만이 많이 생깁니다.
또 자기 견해를 고집하는 게 강하니까 갈등이 많이 생겨요.
우리 한국 사회는 동남아시아의 나라들에 비해서 경제적으로도 풍요롭고 민주주의도 발전되어 있는 괜찮은 나라예요.
외국에서 여행 와서 보면 살만한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정작 그 속에 살고 있는 국민들의 행복도는 동남아시아 국가들보다 많이 떨어집니다.
동남아시가 국가들은 보통 6, 70위에 위치하고, 더 앞선 나라들은 20위권에 있기도 해요.
그런데 우리는 현재 117위입니다.
이 중 많은 부분들이 우리의 성격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물론 성격만이 원인인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는 사회적인 요인들도 있는데, 우선 우리 사회가 경제적으로 성장을 해서 전체적으로는 풍요로운 편인데,
여전히 빈부 격차가 심합니다.
즉, 절대적 빈곤은 해소가 되었지만 그 속에 상대적 빈곤이 여전히 크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는 말 들어보셨어요? (모두 웃음)
혹은 ‘헝그리는 참을 수 있어도, 앵그리는 못 참는다’는 말도 있어요. (모두 웃음)
우리 사회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 빈부 격차가 큰 편에 속합니다.
OECD가입국 중에 2, 3위에 들어갑니다.
그러다보니 상대적 빈곤으로 인한 불만이 많습니다.
빈부 격차가 커질수록 사회에 대한 불만이 많이 생겨요.
그리고 이 상대적 빈곤, 빈부 격차가 바로 배 아프게 만드는 요인이에요.
그러니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것은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되 동시에
그 속에서 빈부 격차가 심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 지금부터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입니다.
둘째, 우리 사회는 상당히 민주화된 사회입니다.
사실 산업화와 민주화가 거의 기적이라고 할 만큼 짧은 시간에 이루어졌습니다.
내부적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국회의원을 선출하거나 시장을 선출하는 과정 자체만 보면 민주화는 선진국 수준에 와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선출된 사람이 그 권한을 집행하는 차원에서 보면 거의 후진국 수준입니다.
그래서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런 측면에서는 아직 민주화가 사회에 완전히 뿌리 내리지는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회 여기저기에서 갑질 문화가 심합니다.
지금 질문자의 고민도 결국 갑질에 대한 질문 같아요.
이런 갑질을 사회적 용어로 ‘불공정’이라고 표현합니다.
즉, 사회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거예요.
사회가 공정하지 못하면 패자가 승복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다보면 불만이 많아져요.
그러니 질문자는 개인 심리적으로는 기대를 너무 많이 했다가 결과에 실망한 경우이고,
사회적으로는 공정성에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사회 불공정은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도 불공정에 속하는 일이었고,
대기업이 하청을 주는 중소기업에 갑질을 하는 것도 불공정에 속합니다.
게다가 이러한 과정이 민주적 절차에 의해서 명령이 내려오는 게 아니라 중간에 누가 끼어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요.
최근에는 국회의원 아들이 취직할 때 누구에게 부탁해서 취직시켜서 언론에 많이 보도되고 있잖아요.
그런데 새삼스럽게 이런 일이 많아진 게 아니라 이미 있어온 불공정에 대해서 이제 국민들이 문제제기를 하기 시작한 겁니다.
옛날에는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걸 불공정이라고 하고 문제제기를 하는 거예요.
그러니 사회 불공정은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셋째, 안전 불감증이 있습니다. 일반 치안 면에서는,
예를 들어 도둑, 강도와 같은 일반 치안에서는 우리나라가 잘 되어있는 편에 속합니다.
해외여행을 하더라도 관광지에 들러서 구경만 하고 오는 경우에는 알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여성이 밤에 혼자서 택시를 타고 다니는 게 가능한 나라가 세계에 몇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여성 둘이서 야간 산행도 하는 나라예요.
우리나라에서 이런 생활을 하다 보니 인도 같은 나라에 가서도 여성 혼자서 배낭여행을 합니다.
그러다보니 희생이 생기기도 해요.
우리나라는 이런 치안이 아주 잘 갖추어진 나라이고, 다른 나라들이 모두 이와 같지 않다는 것을 아셔야 해요.
우리나라에서만 살면 잘 갖추어졌다는 것을 잘 못 느끼니까
내부에서는 또 나름의 불만도 생기지만 세계적으로 아주 안전한 편에 속합니다.
심지어 남북한이 정전상태에 있는 나라인데도 테러 사태가 거의 없잖아요?
이 점에서는 이웃나라인 일본도 안전한 편에 속하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교통사고나 세월호와 같은 대형사고등 안전사고 면에서는 후진국 수준입니다.
과적을 하거나 소홀히 할 수 있는 부분들이 아직 시정이 잘 되지 않고 있어요.
제도는 개선이 되었지만 관습적으로 해오던 일들이 해결되지 않고 있는 거예요.
이 중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전쟁의 가능성입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전쟁이 일어날 위험이 높은 나라예요.
전 세계에서 지금 대형전쟁이 유발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나라 중 하나에 속합니다.
중동이 가장 위험하다고 할 수 있고 그 다음으로는 바로 한반도예요.
그래서 미국이 세계의 전략을 세울 때 중동과 한반도 이 양쪽으로 계획을 세웁니다.
최근의 동향을 보면 중동은 차츰 가라앉고 있는 반면 우리는 오히려 긴장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가 지난 50년 동안 쌓아온 모든 재산이 파괴되고, 엄청난 인명이 살상되고,
우리는 난민이 되어 세계를 떠돌게 됩니다.
시리아 난민들이 유럽에 가서 괄시받는 모습 보셨지요?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들이 지금 거의 턱밑에 와있는데도 우리 국민의 위대함은 라면 하나 사재기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에요.
이건 좋게 말하면 위대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불난 집 안에서 어린애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과 똑같습니다.
지금 이 정도 되면 전 국민들이 나서서 ‘전쟁은 무조건 안 된다’고 전쟁 반대 데모를 해야 합니다.
‘박근혜 적폐’ 보다 100배 더한 위험이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도 거기에 대해서는 거의 무감각한 수준이에요.
밖에서 보면 우리 정부도 나름대로 애를 쓰고 있지만 충분한 긴장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 정도 되면 대통령도 여야 대표들을 불러서 회의를 주재하고,
최대한 합의를 이끌어내서 최대한 안전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정치인들도 정쟁은 우선 미뤄두고, 모두 한 뜻을 모아야 해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온다고 하면 여야, 진보보수의 문제를 떠나서 우선 절대로 한반도에 전쟁은 안 된다,
한반도에 전쟁을 유발할 수 있는 군사적 선제공격은 안 된다는 관점이 분명히 잡혀 있어야 합니다.
물론 북한이 핵 개발하는 것, 미사일이나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반대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전쟁을 유발할 수 있는 선제공격을 준비하고 유사시에
미국 자국민들을 철수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국민은 ‘전쟁만큼은 절대 안 된다, 선제공격만큼은 절대 안 된다’고 말해야 해요.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 너무 무감각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오늘 장관을 지낸 전문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불안을 못 느끼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는 불안을 느끼는데 겉으로는 아직 표현을 하지 않는 내재적 불안입니다’라고 해요.
여러분들은 내재적 불안을 느끼나요, 아니면 아예 무감각한 건가요?”
“(청중) 내재적 불안입니다.”
“속으로는 좀 불안해합니까?”
“(청중) 예.”
“안 불안해하는 것 같은데요? (모두 웃음)
요즘 언론이나 신문을 봐도 국가의 어떤 기관도 ‘이 전쟁 위험을 우리는 어떻게 줄일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있어요.
이와 관련된 토론은 어디에도 없고, 성명서도 한 장 보이지 않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언론 기사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모두 전쟁나면 무용지물이 될지도 모르는 훨씬 덜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만 따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핵문제, 적폐 청산 문제 모두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전쟁 문제에 비하면 덜 시급한 과제에 속합니다.
정작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무감각한 상태예요.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면 우리의 경제나 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미사일 한방 서로 주고받아서 전쟁이 터지면 모든 게 일시에 사라질 소위 모래 위의 성 쌓기 같은 사회예요.
이것이 우리를 행복하지 못하게 하는 큰 원인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지만 여전히 불평등이 크고,
불공정도가 심각하고, 불안전도가 너무 높습니다.
이처럼 우리 국민의 행복도가 낮은 이유는 국민성과도 관계가 있고, 사회의 시스템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행복도를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주 옛날에는 인생을 살면서 권력을 추구했어요. 왕이 되고 싶었어요.
그러다가 산업사회에 들어오면서 돈을 추구했습니다.
부자가 되고 싶어해요. 그런데 앞으로 다가올 미래사회, 정보화 사회의 핵심적인 가치는 행복입니다.
내가 연봉이 3천만 원이지만 행복하지 않다면, 연봉 2천만 원 만원 받으면서 행복한 사람보다 더 좋을까요?
세계적으로도 물질적인 생산량이 얼마인가를 따지는 GDP 보다
국민의 행복도를 평가하는 GNH 쪽으로 추세가 점점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는 시대 그리고 지식정보사회에서는 인간이 추구하는 핵심적인 가치가 행복이에요.
그렇다면 행복한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개인적으로 그리고 국민운동 차원에서 노력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조금 천천히 하자, 죽기 살기로 하지 말자. 너무 욕심내지 말자.
이제는 먹고 살만하니 조금 욕심을 낮추자.
국민의 의견도 다양한데 너무 선악개념으로 접근하지 말자. 서로의 의견이 다를 뿐이다.
욕심을 완전히 버리라는 게 아니에요.
다만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욕심은 낮추자는 겁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의견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 다른 주장, 다른 사상, 다른 종교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게 필요합니다.
요즘은 다양성의 사회입니다.
그러니 이런 국민운동이 필요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요즘 저도 불교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행복학교’로 바꾸었습니다.
이러한 행복 추구 운동이 국민운동으로 전 국민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그러니 특정 종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불교를 믿든, 기독교를 믿든, 무엇을 믿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
네가 지금 행복하니?’ 이게 중요해요.
하느님이나 부처님을 믿는지 안 믿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고, 믿어서 행복하면 오케이, 안 믿어서 행복해도 오케이입니다.
믿고 안 믿고는 사실 중요한 게 아닙니다.
돈이 얼마나 많은지도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그보다 ‘네가 행복한가?’ 이게 더 중요한 것입니다.
사회적으로도 무조건 국가GDP가 얼마인지,
1인당 GNP가 얼마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빈부격차가 얼마나 줄었는지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제 먹고 살만해졌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앞으로 빈부격차를 줄일수록 행복도가 높아집니다.
그 격차가 벌어질수록 행복도는 낮아져요.
그리고 사회가 어느 정도 민주화가 된 건 사실이지만 더 성숙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권력이 중앙에 집중되어 있으니 지방 분권화를 통해 권력을 분산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삶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결정들은 가장 아래 단위인 주민자치센터에서 결정을 하도록 해야 해요.
우리 동네에 쓰레기 처리장이나 화장터가 들어온다면 누가 결정해야 됩니까?
이런 문제는 동네 주민들의 투표로 결정해야 합니다.
주민들이 안하겠다고 하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로 인센티브가 있어야 되겠지요.
그러면 인센티브를 계산해서 주민들이 결정을 해야지 그걸 왜 시장 혼자서 결정합니까?
공무원은 결정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공무원의 본분은 주민들이 결정할 수 있도록 업무를 해주는 것이에요.
그런데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다, 시민이 나라의 주인이다’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공무원들은 시민하고 싸우는 게 일입니다.
이런 것들이 바뀌어야 해요.
중앙 권력이 지방으로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까지는 대통령에게 권한이 너무 집중되어서 제왕적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권한들이 내각으로 옮겨가서 각 부처 장관이 자기 책임하에 운영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시스템에서는 정작 장관인데도 청와대 비서관보다도 못한 신세예요.
그러다보니 모든 책임도 대통령에게 돌아갑니다.
그러다보니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성공한 대통령이 나올 수 없는 거예요.
지금은 대통령이 인기가 높습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중앙 집권적인 구조를 이어나가면 끝까지 인기가 높은 상태로 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무슨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이 다 대통령에게 향하는 구조니까
5년 동안 아무 문제가 없으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서는 이 구조적 문제를 피해갈 수가 없습니다.
이제 민주주의가 성숙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회 곳곳의 불공정이 개선되어야 합니다.
중소기업과 재벌 기업 사이에 생기는 갑질로 인한 피해는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중소기업에서 쉽게 입을 열지 못해요. 그나마 거기에 붙어있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기 때문이에요.
이런 것들이 차츰 개선되어야 국민의 행복도가 높아집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남북문제를 평화적으로 풀어서 전쟁의 위험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것들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습니다.
이것이 늘 모래 위의 성 쌓기, 언제 불이 붙을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로 있으니까
우리 인생도 단기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거예요.
이런 부분들을 개선하자는 겁니다.
행복으로 가는 길은 우리의 관점을 바꾸는 것도 필요하고 삶의 자세도 바꾸어야 하지만,
사회를 바꾸기도 해야 합니다.
옛날처럼 누조건 성장만 이야기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그러니 사회운동을 하더라도 이런 관점을 지니고,
사회적인 조건들이 개선되는 방향으로 추진하면 우리 국민 모두가 지금보다는 행복해지는 나라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 누구나 대한민국에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 거예요.
미국 사람이 대한민국에 살고 싶어야 되는데, 우리는 지금 무슨 일이 생기면 자꾸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하잖아요.
오죽하면 젊은이들은 ‘헬조선’이라고 합니다.
노인분들은 ‘젊은 사람들도 옛날처럼 한 번 굶어봐야 해. 지금 대한민국이 얼마나 살기 좋아졌는데 그런 소리들을 하는거야?’하는데,
그분들은 50년 전을 기준으로 삼으니까 지금의 대한민국이 좋게 느껴지고 사회가 좋아졌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젊은이들은 발전된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기준이 높습니다.
그런 높은 기준을 가지고 미래를 내다보면 대한민국은 비전이 없어 보여요.
일자리도 없고, 성장 가능성도 별로 없고, 이제는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면서 빈부 격차는 심해지고 있어요.
그러니 젊은이들이 볼 때는 현재는 먹고 살만하지만 미래의 희망이 없는 거예요.
어른들이 자랄 때는 당장은 먹고 살기가 어려웠지만 조금만 노력하면 집도 사고 승진도 하고 미래의 희망이 있었습니다.
인간에게는 희망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국민행복도 높이기 운동을 하려고 합니다. 정부에게만 맡겨서는 안 되고 국민운동으로 벌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로 행복학교를 국민운동으로 추진해가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조금 길어졌는데,
지금 질문자 개인이 개선해야 하는 것은 우선 기대를 너무 크게 가졌기 때문에 화가 많이 난다는 것을 알고 이 부분을 고쳐야 합니다.
‘될 것 같다’는 기대에 너무 집중을 해버려서 불만이 그만큼 세진 거예요.
그리고 실제로 불공정의 문제가 있다면 이건 혼자서 수행하고 화를 다스린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불공정의 문제는 우리 모두가 시정해야 되는 부분이니까 항의를 해서 자기 것만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자기 문제는 이제 끝났으니까
내버려 두더라도 이 일을 계기로 심사가 보다 공정하게 되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심사가 어떻게 되었는지 화 내지 말고, 차근차근 그 과정을 따져보고 ‘이 기준은 현실과 맞지 않다,
이런 건 이렇게 개선이 되면 좋겠다’는 식으로 실질적인 개선을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질문자는 개선을 위해서 노력도 하지 않고 자기 성질만 내고 있는데,
이건 건강만 해치지 상황 개선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기대가 높았기 때문에 실망도 컸다, 이건 내가 오늘부터 편안해지자고 마음을 내시면 돼요.
선정이 안 되어도 지금까지 운영을 잘 해왔는데 왜 쓸데없이 기대를 해서 스스로를 불안하게 만들어요?
게다가 어린이집 원장이 불안하면 아이들도 불안정해집니다.
그리고 꼭 질문자 개인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발전과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제기해야 하는 문제는
차근차근 자료를 구해서 알아보고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연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질문자의 전화를 받는 사람이 심사를 해서 결정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심사를 한 사람이 전화를 받았으면 질문자가 항의를 할 때 뭐라고 대답을 할 수 있겠지만,
전화를 받은 사람은 민원담당 부서의 사람이거나 그냥 공무원인데
그 사람한테 심사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면 그 사람이 뭐라고 말 할 수 있겠어요?
그냥 ‘예예, 예예’ 할 뿐이지요. 그러면 나중에 그런 공무원이 강연장에 와서 즉문즉설을 요청합니다. (모두 웃음)
그런 사람들이 강연장에 찾아와서 ‘민원인이 전화를 해서 받자마자 화부터 내고 고함지르는데, 제가 도저히 못하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런 질문을 해요. 그러면 제가 뭐라고 하겠어요?
‘공무원하려고 뒤에 줄 선 사람들 많으니까 그만 두세요’라고 이야기하지요. (모두 웃음)
그러니까 결정권자가 아닌 사람에게 항의를 해봐야 그 사람이 어떻게 하겠어요?
그 사람한테 항의할 게 아니라 이건 자료를 수집해서 꼼꼼하게 체크를 하고
문제가 있으면 그걸 담당하는 부서를 찾아가서 우선 행정적으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시의원, 도의원 등의 의회를 통해서 문제제기를 할 수도 있고,
마지막으로 행정소송을 걸어서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할 수 있어요.
그렇게 하면 시간도 들고 돈도 들게 되는데,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해요.
질문자가 실망한 것은 이해가 되지만 화는 오늘로써 끝내고 내일부터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그리고 대한민국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서 꾸준히 연구하면 어떨까 싶어요.
꾸준히 문제제기를 하고 시정이 필요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시정되지 않으면 시의원한테도 이야기를 해보고, 전담하는 부서에도 계속 이야기를 해보고, 두세 번 해서 안 되면 10번 해보고,
도의원한테도 10번 하고, 그 다음 관청에도 10번 찾아가 보는 거예요.
그럴 때 화를 내면 안 됩니다.
그저 웃으면서, 차 한 잔 사줘가면서 꾸준히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창원에 있는 봉림사라고 알아요?”
“네.”
“봉림사는 단순히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하나라는 것을 넘어서서 가야 불교의 첫 절이 세워진 곳입니다.
즉, 그곳이 가야 정사터예요.
옛날에는 이곳이 다 가야 땅이었다는 거잖아요? 그럼 이곳이 역사성이 있는 곳입니다.
허황후가 이곳 합포만으로 들어왔다는 것 아세요?”
"(청중) …”
“역사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네요. (모두 웃음)
이곳이 아주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이에요. 그러면 이런 곳은 잘 복원해서 보존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복원사업은 국가가 해야 합니다. 이건 우리 문화, 우리 역사의 유적지예요.
그러니 절이라고 해서 특정 종교에 대한 것이라고 인식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도 이런 문제를 자꾸 종교에 국한해서 말하는데 그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 오래된 성당을 보수한다면 이건 기독교의 것이니 불교인들은 반대한다고 하면 될까요?
그건 기독교, 불교를 떠나서 역사를 복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옛날에는 정부의 재정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저희가 돈을 모아서 땅도 확보해두고 발굴 조사도 해두었는데,
복원하자고 해도 꼼짝도 안 한다면 제가 찾아가서 화를 내야 될까요,
오늘처럼 시의원, 도의원 분들에게 아주 부드럽게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면서 그 가치를 알려야 될까요?
앞으로 저는 이 중요성을 100번쯤은 설명할 생각이에요.
그렇게 해서 중요성을 서로 알아가면서 뜻을 모으는 것이지, 전화해서 ‘너희는 역사도 모르느냐,
이곳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가치가 있는 곳인데 그것도 모르느냐’고 대뜸 화부터 내면 상대방도 기분 나빠합니다.
이런 것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잖아요. 제 개인 절을 짓기 위함이 아니잖아요.
그런 것처럼 질문자도 이제 자기가 운영하는 어린이집 이야기는 그만하고,
심사과정을 직접 겪어보니 불공정한 것 같았다면 앞으로 어떻게 하면 심사가 보다 공정해질 수 있겠는지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서 내가 이 문제는 해결 해야겠다’는 관점을 가지시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