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동래법당에서 왔습니다.
저는 불교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 길 가다가 전단지 받고,
인터넷 한 번 들어갔다가 우연히 정토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수행을 하고, 법문을 들었는데, ‘화’에 대한 얘기가 정말 많더라고요.
자기를 돌아보고,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서 화를 다스리라는 게 요지인 것 같던데,
저는 인간감정 중에서 화도 해결이 어려운 부분이지만 슬픔도 어려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별 등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슬픔을 겪는 경우가 대단히 많은데, 이 슬픔을 다스리는 법도 저는 좀 알고 싶습니다.
“슬픔이라는 것은 상실감에서 오는 심리현상입니다.
뭘 잃어버렸을 때 오는 상실감. 예를 들어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자식이 죽었다, 재물을 잃었다, 친구를 잃었다, 애인이 갔다, 이럴 때 오는 심리현상.
분노는 제 마음대로 안 돼서 생기는 문제라면 슬픔은 상실감에서 오는 문제예요.
그런데 이건 본래 내 것이 아닌 줄을 알아야 됩니다. 이 세상에 천하 만물,
그 무엇도 본래 내 거라고 할 게 없기 때문에 잃었다고 할 게 없는 거예요.
예를 들어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면, 물론 안 돌아가시면 더 좋겠지만, 돌아가셨을 때는 놓아줘야 돼요.
그러니까 ‘안녕히 가세요’ 해야지요. 애인이 간다고 그럴 때도 ‘가지 마라’ 그럴 게 아닙니다.
애인이 안 갔으면 좋겠는데 가니까 슬픈 건 그때도 ‘안녕.’ 이러면서 놓아주고
‘그동안 감사했다’는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 조금 치유가 되지요.
예를 들어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제가 그 상갓집에 갔더니 부인이 저를 붙들고 이렇게 말해요.
‘아이고, 스님.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요. 남편 죽고 나 혼자 어떻게 살아요.’ 다 그렇게 말하잖아요?
그때 죽은 남편 걱정하는 거예요? 자기 걱정하는 거예요?”
“(대중들) 자기 걱정.”(모두 웃음)
“이게 인간이에요. 죽은 사람 걱정하는 게 아니고 지금 내 걱정한다, 이 말이에요.
‘아이고, 애가 둘인데 저걸 내가 어떻게 키워요?’ 이렇게 말할 때 애들 걱정해요? 키울 자기 걱정해요?”
“(대중들) 자기 걱정.”(모두 웃음)
“예. ‘인간이 너무 이기적인 것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는데 원래 인간이 이렇습니다.
아시겠어요? 원래 인간이 이렇게 이기적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부모 생각해서 괴롭다, 남편 생각해서 괴롭다, 자식 생각해서 괴롭다,
자식을 위해서 희생한다.’ 이런 말을 하는데, 사실은 아니에요.
인간존재 자체가 남을 위할 줄 모르게 돼있어요.(모두 웃음)
그럼 그게 나쁜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전화 오면 ‘저건 꼭 자기 필요할 때만 전화한다’고 할 때가 있지요?”
“(대중들) 예.”
“그런데 필요할 때 하는 게 전화예요. 필요할 때 하라고 생긴 게 전화예요.
그러니까 그렇게 말할 필요가 없어요.
필요 없으면 전화할 일이 없고, 필요할 때는 그걸 쉽게 전하는 게 전화이기 때문에 전화는 원래 그럴 때 하는 거예요.
그래서 필요도 없는데 전화하면 오히려 ‘쓸데없이 전화한다’는 소리를 듣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사람들이 너무나 보편적으로 하는 행위를 자꾸 비난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건 비난할 일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돌아가셨다. 그게 지금 나의 현실이에요.
그랬을 때 이 남편이 잘해 준 남편일수록 슬픔이 큽니다.
잘 해준 남편일수록 가면 나한테 불이익이 돌아오니까 슬픔이 큰 거예요.(모두 웃음)
그런데 남편이 술 먹고, 돈도 안 벌고, 애먹이다가 죽었을 때,
예를 들어 어제도 술 마시지 말라고 싸우다가 오늘 죽었다면,
이때는 제가 상갓집을 찾았을 때 부인이 저한테 뭐라고 할까요?
‘그렇게 좋아하던 술, 실컷 마시도록 내버려둘 걸 그랬어요.’ 이건 자기 걱정이에요? 죽은 남편 걱정이에요?”
“(대중들) 죽은 남편 걱정.”
“예. 부부끼리는 애를 좀 먹여야 걱정을 좀 받습니다.(모두 웃음)
대신에 죽은 걸 시원해 하지요.(모두 웃음) 다 장단점이 있어요. 이게 우리 인간존재입니다.
그래서 즉문즉설할 때 제가 이런 걸 자꾸 여러분께 깨우치니까
여러분들이 어떤 때에는 이 깨달음을 얻고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말하자면 굉장히 기분이 나쁜 거예요.
자기가 좀 숨기고 싶은 걸 스님이 자꾸 ‘까발리게’ 만드니까요.
그러니까 기분이 나쁜 거예요. 그런데 그게 우리 인간존재예요.
좋고 나쁜 걸 따질 것 없이, 인간이라는 게 원래 그래요.
자기 필요할 때 전화하는 것도 인간존재가 본래 그렇다고 이해하시면 돼요.
그러니까 죽은 남편을 조금 걱정해 주면 이게 해결이 돼요.
남편이 죽었든지, 말든지 내 걱정만 하면 슬프지만,
예를 들어 ‘그 사람이 더 살아서 나한테 좀 더 잘 해주고 가야 되는데,
일찍 죽어서 내가 지금 어려움에 처했다.
왜 그렇게 일찍 죽었느냐?’ 이런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만약 남편이 천국에 간다면,
내가 자꾸 울고불고 하면 갈 수 없으니까 ‘그동안에 당신 만나서 정말 기뻤습니다.’
내가 덕 많이 봤다, 이 말이에요.
‘기뻤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제 당신을 위해서 천국으로, 극락으로 얼른 가세요.
안녕히 가세요.’ 하고 놔줘야 됩니다. 그러면 뭐가 없어질까요? 슬픔이 없어집니다.
지난 시기에 대해서는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앞으로는 당신 좋은 데로 가라는 거예요.
자기 좋은 것만 생각하지 말고, ‘당신 좋은 데로 가라.’ 이렇게 놓아주어야 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하고 놓아주는 게 천도예요.
천도라는 게 다른 게 아니고 놓아주는 거예요.
그러면 슬픔이 가십니다.
애인이 가버렸다 하더라도 ‘그동안 당신 만나 기뻤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이렇게 놓아줘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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