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을은 나발로푸르 풀레이아마을로 주변 전체가 다 석가족인 마을입니다.
이 마을에 절을 지은 사람은 60세가 넘은 시각장애인입니다.
혼자 살면서 자기 땅에 절을 지었습니다.
3년간 꾸준히 지은 절에 오늘 드디어 부처님을 모시고 점안식을 하게 된 것입니다.
깨끗하게 차려 입고 스님 옆에 앉아 점안식에 참가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참 뿌듯하겠다 싶었습니다.
동네에 이렇게 절을 지어 마을사람들이 언제나 부처님을 참배할 수 있고,
법문도 들을 수 있는 공간도 만들었으니, 참 감사한 일이다 싶었습니다.
이 곳에서도 불상 점안식을 한국식, 인도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점안식 이후에는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불상에 참배를 했습니다.
점안식 이후에는 법회가 이어졌습니다.
동네 유지들이 스님께 꽃공양을 올리고, 인사말 하는 시간을 가진 후, 스님 법문을 들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이 마을에 절을 지어 보시하신 분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여러분, 이 보드비하르를 지으신 스리라칸신 샤키야 님께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모두 박수)
절을 지은 큰 공덕으로 비록 육신의 눈은 어둡지만
마음의 눈이 열려서 해탈과 열반을 증득하실 것입니다.(모두 박수)
이어서 점안의 의미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참가하신 내외빈분들께도 환영의 인사를 하였습니다.
“또 오늘 법당에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셨는데요,
처음 가져왔을 때는 그냥 조각에 불과했지만 오늘 우리 담마빨 스님과 상가가 함께 점안함으로써
이제 살아계신 부처님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게 점안식의 의미입니다.
여러분께서 앞으로 이곳에서 수행하고, 기도하시면 부처님의 가피를 많이 입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점안식을 해 주신 담마빨 스님과 비구 상가들께 감사의 박수를 부탁드립니다.(모두 박수)
그리고 오늘 바쁘신 중에도 많은 내빈들이 참여해 주셨습니다.
닥터 나왈 께서르 사키야는 의사로서 정말 바쁘신데 이렇게 오셔서
여러분들을 위해 축하인사를 해 주셨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의 박수를 부탁드립니다.(모두 박수)
또 함께 해 주신 많은 내빈들께도 박수를 드리겠습니다.(모두 박수)
저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여러분은 한국을 아십니까?”
“(한 대중) 네.”
“한국은 중국을 지나서 더 동쪽에 있습니다. 여기서 아주 멉니다.
그런데 불교가 인도에서 시작된 것은 2600년 전이고, 한국에 그 불교가 전래된 것은 2000년 전입니다.
한국에는 불교가 전래된 이후로 불교국가가 됐습니다.
그래서 한국 문화재의 대부분은 불교문화재입니다.
또 지금으로부터 1300년 내지 1500년 전에는 한국의 많은 스님들이 인도 날란다대학으로 유학도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은 인도불교에 많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인도에 불교가 많이 쇠퇴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인도에 불교가 쇠퇴하다 보니까 불교가 아주 작은 종교,
소수의 종교인 줄 잘못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도 밖으로 나가보세요.
불교 믿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중국, 한국, 일본 그리고 미얀마, 태국, 스리랑카,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몽골등이 있습니다.
아시아지역의 동쪽은 대부분 불교국가입니다.
게다가 지금은 유럽과 미국에도 불교가 아주 많이 전파되어 환영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소수자가 아닙니다.
담마빨 스님이 아까 ‘불교는 마이너리티(minority, 소수)’라고 하셨는데 세계적으로는 불교가 마이너리티가 아닙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은 세 가지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첫째는, 인도가 크게 부흥할 것이라는 겁니다.
19세기에는 세계의 중심이 영국이었습니다.
20세기에는 미국이었고요, 지금은 중국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다음은 그 흐름이 어디로 갈까요? 바로 인도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인도는 굉장히 부흥할 것입니다.
두 번째는, 불교가 인도에서 시작됐지만 현재 인도에는 불교가 많이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부처님 열반 이후 2500년이
지나면 불교가 다시 인도로 들어와서 부흥한다고 했습니다.
이미 부처님이 열반하신지 2500년이 지났고, 이제 인도에는 불교가 다시 시작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부처님이 태어나신 룸비니, 도를 이루신 보드가야,
부처님이 처음 설법하신 사르나트,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쿠시나가르에 가보셨습니까?”
“(대중들) 예.”
“그곳에는 외국 불교인들이 많이 찾아오고 있고, 여러 나라에서 절도 많이 짓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도불교가 다시 일어날 징조입니다.
그러나 아직 인도사람들은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 인도불교가 다시 일어나기 위해서는 누가 시작을 해야 되겠습니까?
제가 볼 때는 이 상카시아의 석가족이 시작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그럴 요의가 있으십니까?(모두 박수)
그래서 지금 이렇게 마을마다 절이 조금씩 생기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계속 늘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그래서 우리는 상카시아에 모든 불자들이 담마를 공부하고
명상도 할 수 있는 담마센터를 지으려고 합니다.(모두 박수) 또 상카시아 스투파도 다시 세우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집회할 수 있는 강당도 만들려고 합니다.
그 시설들은 외국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도인, 인도 불자를 위한 것이 될 겁니다.
그러니 외국의 도움을 받을 게 아니라 여러분들께서 직접 하루라도 와서 일하고,
벽돌 한 장이라도 쌓는 등 여러분들 손으로 직접 하셔야 합니다.
내가 만들어야 진정한 내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하겠습니다!(함 까렝게!)’ 하는 정신이 필요합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나서주신다면 저는 여러분들을 후원하겠습니다.(모두 박수)
여러분들이 1락(인도의 돈 단위)을 모으면 제가 1락을 지원할 것이고,
여러분들이 1 까르(인도의 돈 단위)를 모으면 제가 1 까르를 지원할 것입니다.(모두 박수)
여러분들이 하는 만큼 제가 지원하겠습니다.
대신에 여러분들이 일단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해야 자기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인도는 조금 어렵게 살아도 외부의 지원을 별로 원하지 않는 전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도는 ‘세계 문명의 중심’이라는 자부심 때문에
‘좀 어려워도 우리 손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인도불교를 부흥시키는데 부디 여러분들이 앞장서 주시기 바랍니다.
한국에 불교를 전한 분들은 다 인도 분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도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 이곳을 지원할 생각입니다.(모두 박수)
제가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려면 중간에 통역이 필요해서 서로 직접 소통하기가 어려운데,
여기 이렇게 담마빨 스님이 계십니다.
앞으로는 담마빨 스님이 여러분들에게 좋은 법문을 많이 해 주실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들 마을에 절을 지으면 불상은 후원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절 10개를 지으면 제가 불상 10개를 지원할 것이고,
절 100개를 지으면 불상 100개를 지원할 것입니다.(모두 박수)
여러분들, 저와 반반씩 나눠서 할 자신이 있으십니까?”
“(대중들) 네.”
“그렇게 해서 우리 함께 인도불교를 다시 한 번 일으켜봅시다. 감사합니다.”(모두 박수)